오는 11월부터 재무상태가 나쁜 130여개 상장사가 금융당국이 강제로 지정한 회계법인을 통해 외부감사를 받게 된다. 또 외부감사 대상 주식회사 범위가 현행 ‘자산총액 100억원 이상’에서 ‘자산총액 120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돼 2000여개 비상장기업이 외부감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익으로 이자 못갚는 기업, 11월부터 외부감사인 강제 지정
금융위원회는 25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시행령 및 규정 개정안을 마련, 입법예고 등을 거쳐 11월29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본지 8월7일 A1, 10면 참조

금융위는 외부감사인 강제 지정 대상으로 △부채비율 200% 초과 △동종업계 평균 부채비율 1.5배 초과 △이자보상배율 1 미만 등 세 가지 요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상장사로 규정했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1에 못 미칠 경우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위는 1650여개 상장사 중 8%가량인 130여개가 이 기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금융위는 또 한진 금호아시아나 등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은 14개 그룹 소속사에 대해서도 채권단이 요청할 경우 지정감사를 받도록 했다. 횡령·배임 사건이 발생했거나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기업도 강제 지정 대상에 포함된다.

정부와 국회가 감사인 강제 지정 대상을 대폭 확대한 것은 기업과 회계법인 사이에 형성된 ‘갑을관계’가 STX, 동양 등 대규모 분식사태를 부른 원인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재무상태가 나쁜 기업도 감사인 자율 선임권을 갖다 보니 ‘을’(회계법인)이 일감을 주는 ‘갑’(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지금은 관리 종목에 편입되거나 회계 분식이 적발된 회사를 제외한 모든 상장사가 외부감사인을 자율로 정하고 있다. 외부감사인이 강제 지정되면 기업 눈치를 보지 않고 깐깐하게 감사를 진행할 수 있는 만큼 분식회계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금융위는 기대하고 있다.

반면 기업은 자율 선임 때보다 감사비용이 평균 54%(2013년 기준) 확대되는 데다 감사 기간도 늘어난다며 반발하고 있다. 금융위는 이런 점을 고려해 강제 지정받은 기업에 1회에 한 해 지정 감사인 거부권을 주기로 했다.

금융위가 외감 대상 기준을 끌어올린 것은 외감 대상 기업 수가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2009년 1만5441개였던 외감 대상 비상장 기업 수가 5년 만에 2만개 이상(2013년)으로 늘어난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금융위가 외감 대상 기준을 조정한 것은 2009년(70억원→100억원) 이후 5년 만이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