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기술이 인간의 뇌를 대체하는 시대…스마트 세상은 생각 가두는 '유리감옥'
내비게이션이 인도해주는 대로 길을 찾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가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찾아가 본 적이 있다. 복잡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러 차례 갔던 길인데,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이전엔 내비게이션 없이도 잘 찾아다녔는데 이제는 항상 다니는 길도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힘들어진 것이다.

내비게이션이 아니더라도 이런 유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상황은 많다.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서는 심심함을 달랠 방법이 없어 괴롭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데 익숙한 터라 손글씨로 뭔가 작성해야 할 땐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당황하기 일쑤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아, 내가 너무 기술에만 의존하고 살아왔구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잠시뿐. 현대인의 삶에서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 등으로 대표되는 기술 개발과 자동화의 편리함에 취해 다시 기술 발전을 찬양하는 삶으로 돌아가 버린다.

[책마을] 기술이 인간의 뇌를 대체하는 시대…스마트 세상은 생각 가두는 '유리감옥'
《유리감옥》의 저자 니콜라스 카는 이처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종종 느끼는 막연한 걱정이 전혀 근거 없는 두려움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편집장을 지냈고, 전작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빅 스위치》 등을 통해 국내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저자는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일관되게 파고든다.

책의 도입부에서부터 저자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급격한 기술 발전의 시대에 인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그저 스크린의 피조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과거의 기계는 인간의 근육을 대체했지만, 오늘날 기계는 인간의 뇌를 대체했다”는 그의 주장은 전작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맥상통한다. 《유리감옥》에서는 이보다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발전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우선 그는 일자리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 예전에는 기계의 등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하지만 오히려 기계는 경제적 안정을 주고 부를 늘리며 인류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것이 확인됐고 이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념으로 통했다.

저자는 오늘날 이 두려움이 현실이 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성장과 고용에 대한 통계지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등 저명 인사의 발언을 증거로 제시한다. 제조업과 물류에서 일상적인 육체 노동을 기계와 로봇이 대체하는 현상이 점점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보처리 분야에서는 컴퓨터들로 이뤄진 네트워크가 일반 화이트칼라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카는 “사라진 일자리들은 대부분 고임금 산업에 있던 것인 반면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들은 대부분 저임금 산업에 속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동화에 대한 의존이 인간의 능력을 감퇴시킨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따분한 일상의 일을 기계에 많이 맡길수록 인간이 창조적인 행위를 하고 사유를 하게 된다는 게 이른바 기술 유토피아주의자들의 주장. 하지만 저자는 “실제로 정말 그런가?”라고 반문한다. 자동항법장치에 의존하는 비행기 조종사들의 잦은 실수, 무인자동차가 가져올 끔찍한 사고 등을 열거하며 저자는 “자동화는 우리를 행위자에서 관찰자로 전락시킨다”고 일갈한다. 아울러 “진짜 지식을 얻기 위해선 까다로운 일과 오랫동안 씨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구글 검색이 진화할수록 검색창에 입력하는 사람들의 질문이 게을러지고 무성의해진다는 예시는 자동화에 의존해 점점 나태해지는 우리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하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기술의 진보나 그 유용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기술 발전의 시대에 이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존재의 의미를 잃지 않고 기술의 발전 속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충고한다. ‘자동화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얻을 수 있게 해 주지만, 우리가 자신을 알아가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자동화의 달콤함에 너무 취해 돌아보지 않는다면,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대표되는 ‘유리감옥’에 갇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