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회식은 패스, 점심 혼자서, 칼퇴는 기본…30代 10명 중 7명 알고보니 '나홀로族'
정보기술(IT) 회사에 근무하는 정모씨(34)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자취 생활을 했다. 혼자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다지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 홀로 생활을 즐기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출근 전 새벽엔 조깅으로 몸을 다지고, 저녁엔 외국어학원에 다니며 공부한다. 홀로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셀카봉(혼자 사진 찍는 도구)도 샀다.

그의 ‘나홀로족’ 생활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칼퇴근’은 기본이고 웬만한 회식은 모두 패스다. 사람들과 별로 친해질 필요는 없다. 모임이 많아지면 자신만의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얼마 전 안대를 산 이유도 점심시간 ‘꿀잠’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다. 안대를 끼고 있으면 여간 급한 일이 아니고는 건들지 않는다.

김과장 이대리들은 신입사원 연수 당시 ‘사회생활은 곧 나를 내려놓는 방법을 깨닫는 길’이라고 배웠다. 이런 배움이 요즘은 무색해졌다. 직장은 ‘필요조건’, 내 삶은 ‘충분조건’이라는 인식이 퍼져서다. 직장에서도 자신에게 좀 더 몰입하길 원하는 나홀로족이 늘고 있다.

스스로 택한 ‘나홀로족’의 길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여직원 서모씨. 입사 초기엔 싹싹하고 일 잘하기로 소문나 선후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나홀로족의 대열에 합류했다. 사연은 이렇다. 그는 입사 초 각종 술자리며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러다보니 학창시절 늘씬하단 말을 듣던 몸매가 망가지고 말았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입사 때보다 정확히 10㎏ 늘어나 있었다.

요즘 서씨는 동료들을 슬슬 피한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회식은 당연히 불참. 퇴근하면 헬스장으로 간다. 전보다 대인관계가 악화된 건 사실이지만 몸매와 자신감부터 되찾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윤모씨(30)는 점심 때가 되면 동료들이 오지 않을 만한 곳으로 20여분 걸어가 식사를 한다. 동료들을 피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경제적인 이유다. 아무래도 여럿이 먹으면 돈이 많이 든다. 밥은 얻어먹더라도 커피전문점에서 음료 한 잔 정도는 사는 게 인지상정이다. 많지 않은 월급에 부담이 된다. 두 번째는 도무지 회사에 정이 들지 않아서다. 봉급은 적고 일은 힘드니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윤씨 역시 오래 다닐 생각도 동료들과 정을 붙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처음엔 혼자 밥 먹는 게 눈치 보이고 귀찮았지만 이제는 운동도 되고 괜찮다는 느낌이다.

‘조직을 위해서라면’

인간관계 하나만은 사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직장생활을 했던 B사 김모 부장(49). 요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홀로족이 됐다. 2년 전 후배인 박모 부장(47)이 부서 팀장을 달았고, 그는 업무를 돕겠다는 취지로 후배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했다. 그런데 팀장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지시를 내리면서 뻘쭘해지는 일이 많아졌다. 팀장도 ‘무보직 선배’를 껄끄러워했다. 김 부장은 나홀로족이 되기로 결단을 내렸다. 되도록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맡고, 점심이나 저녁 자리에도 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혼자 다니는 게 어색했지만 이쯤 되니 이렇게라도 회사를 다닐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생각이 들죠.” 박 부장은 오늘도 부회식 장소를 묻지 않고 묵묵히 퇴근 준비를 서두른다.

식당 메뉴판도 김 부장 같은 나홀로족에 맞게 변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 있던 한 오피스 빌딩의 구내식당에서 요즘 가장 잘 팔리는 메뉴는 플라스틱 포장 샐러드다. 한식과 양식 등 대여섯 가지 메뉴가 있지만 이 메뉴가 단연 최고 인기다. 수요자는 두 부류다. 몸매 관리하는 여직원과 점심 나홀로족이다. 혼자 샐러드만 먹고 자리를 뜨는 사람이 늘자 식당에선 최근 기본 4인 테이블 몇 개를 치우고 햄버거 가게와 같이 1인 테이블을 들여놨다.

일부는 샐러드를 테이크아웃해 자기 자리에서 해결한다. 이모 대리는 “점심시간까지 직장 선후배들과 섞여서 피곤해지긴 싫다”며 “혼자 점심을 먹으며 음악을 듣거나 페이스북을 관리하는 등 재충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홀로족 꼬리표는 부담스러워~”

금융회사 2년차인 김모씨는 스스로 노력해 나홀로족으로 전락할 위험을 극복한 사례다. 그는 당당하게 입사시험을 치러 합격했지만 아버지가 같은 회사 부사장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낙하산’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동료들은 슬금슬금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편하게 말을 섞고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어지면서 회사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정공법을 택했다. 여름휴가 때 그는 면세점에 들러 명품 수분크림을 여러 개 샀다. 동료들에게 일일이 ‘지난주 많이 바쁘셨죠’라고 인사하며 선물을 돌렸다. 점심 후엔 커피잔도 나르고 한동안 책상 정리와 다과실, 회의실 청소도 도맡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는 ‘부사장 딸’보다는 ‘부지런하고 선후배 잘 챙기는 막내’로 인정받게 됐다.

김대훈/안정락/김은정/강현우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