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금융 실적 매일 보고하라니…은행들 냉가슴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한 금융당국의 발걸음이 바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부터 기업 현장을 방문하는 등 팔을 걷어붙였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기술금융 실적을 매일 보고받기로 했다. 은행들로선 보고를 위해서라도 꾸준히 기술금융 실적을 늘려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은행들도 기술금융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기술금융에 대한 평가시스템과 지원시스템이 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실적만을 내놓으라고 강요할 경우 상당한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2개월 동안 8351억원 지원

기술금융은 중소기업이 갖고 있는 기술을 전문평가회사(TCB)에서 평가받아 이를 근거로 신용대출해 주는 것을 말한다. 담보 없이 기술만 보고 대출해줌으로써 기술력 있는 기업에 성장 발판을 마련해 주자는 의도다.

지난 7월 출범한 TCB는 기술력을 T1부터 T10등급까지 분류한다. T4등급 이상이면 신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금리도 인하된다. 금융위는 2016년까지 7만개 회사가 TCB를 이용해 자금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TCB가 출범한 7월부터 지난달 22일까지 1171건의 기술평가가 이뤄졌고, 이를 통해 8351억원의 대출이 이뤄졌다. 일단 출발은 괜찮은 편이다.

은행들의 반응도 표면적으론 뜨겁다. 앞다퉈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을 늘리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기술금융을 위한 자금도 별도로 마련해 놓고 있다.

하지만 마음까지 편치는 않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기업에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주는 것이 영 꺼림칙하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기술금융 수익성을 따져보니 3억원 이상, 대출 기간 3년은 돼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1억원, 2억원짜리 소액 대출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TCB에 내는 수수료(건당 100만원)조차 부담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리결정권 넓게 해야”

은행들은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해선 정부가 몇 가지 보완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선은 가격(금리)책정권을 폭넓게 인정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은행 부행장은 “기술금융 대출 금리가 연 4~6%인데 위험부담을 감안할 때, 이런 수준으로는 공격적인 영업이 어렵다”며 “금융당국이 금리 인하 압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 내부적으로 해당 기업의 비재무적인 항목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여지를 확대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껏 기술금융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은 은행들의 관심이 저조했던 탓도 있지만 재무재표 위주로 된 대출 심사 평가제도 영향도 컸다”며 “은행들이 비재무적인 부분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늘려주면 경험이 쌓여가면서 기술금융에 대한 관심도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 위원회가 조만간 내놓겠다고 발표한 ‘혁신성적평가’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은행권 관계자는 “단순히 이공계 직원 몇 명이라는 식의 수치만 평가에 반영할 것이 아니라 기술금융과 관련해 어떤 투자를 했고 축척된 노하우를 어떻게 다시 사용하는지까지 감안해야 한다”며 “TCB 이용실적과 기술금융 대출이 주요 평가항목이라면 평가는 하나마나한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술금융의 장점이 확실한 만큼 문제점을 보완해가면서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박종서/박신영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