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랑을 몰랐다
‘사랑을 모르고 / 살았다 자식들 / 뒷바라지 하느라고 / 사랑할 새도 / 없었다’ - 박순화 작 ‘사랑’

‘눈만 뜨면 / 애기 업고 밭에 가고 / 소 풀 베고 나무하러 가고 / 새끼 꼬고 밤에는 호롱불 쓰고 / 밥 먹고 자고 / 새벽에 일어나 아침하고 / 사랑받을 시간이 없더라’ - 허옥순 작 ‘사랑’

같은 제목을 가진 두 편의 시를 온라인 기사에서 보았다. 칠순이 넘어 한글을 처음 배운 할머니들이 지은 시라고 했다. 투박해서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진심이 전해졌다. 할머니들의 고단한 세월이 배어있는 듯 느껴졌다.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 분주한 일일 것이다. 나도 예외일 순 없었다. 공학자로, 교수로, 대학 행정가로 일하다 보니 일상은 언제나 바쁘게 돌아갔다. 개인적인 목표를 이루고 싶었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내와 자녀들의 삶을 든든하게 지탱해주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더 열심히, 더 바쁘게 일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족과 보내야 할 시간마저도 바깥일을 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가족을 위해 일한다면서 가족을 희생시켰으니 주객이 전도된 채 살아왔던 것이다. 일에 매달려 한창 바쁘게 지낼 땐 이런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다.

더 늦기 전에, 더 큰 후회를 하기 전에 만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아내에게 얘기했다. 사랑한다고. 용기 내서 고백하고 나니 반응이 기다려졌다. 그런데 아내는 마치 내 말을 못 들은 사람처럼 덤덤하게 지나갔다. 그야말로 무반응이었다. 섭섭함을 이기지 못해 “나는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왜 당신은 대답이 없어요?” 물었더니 그제야 아내가 답했다. “설마 진심으로 한 말이었어요?”

정말 아차 싶었다. 민망하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동안 내가 오죽 소홀히했으면 이런 반응을 보이나 싶었다.

삶의 분주함은 사람을 무뎌지게 만든다. 소중한 것을 무심히 보게 만들고, 그 무심함을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그 무심함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이 일평생의 분주함으로 얻은 것들보다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려고 애쓴다. 내 곁에서 평생을 함께해준 사람들이 ‘사랑 모르고 살았노라’고, ‘사랑받을 시간이 없더라’고 체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말하고 나니 참 고맙다. 얼굴을 마주하고 들어줘서 고맙고, 내가 스스로 깨닫고 이야기하기까지 기다려줘서 더 고맙다.

강성모 < KAIST 총장 president@kaist.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