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위대한 탈출'(왼쪽)과 '21세기 자본'. / 한경 DB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위대한 탈출'(왼쪽)과 '21세기 자본'. / 한경 DB
자본의 선악(善惡)은 있는가. 있다면 유토피아에 가까운가, 디스토피아에 가까운가. 자본의 본질과 작동 방식에 대한 상반된 견해의 두 책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자본주의에 대한 묵직한 이론적 접근으로 화제를 모은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21세기 자본’과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의 ‘위대한 탈출’이 그 주인공. 관점에 따라 자본의 얼굴이 달라질 수 있음을 두 책은 극명하게 대비해 보여준다.

화제의 책 ‘21세기 자본’이 12일 드디어 국내에 공식 출간됐다. 820쪽에 달하는 이 책은 대담하게도 칼 마르크스의 고전에 ‘21세기’란 접두어를 붙여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 피케티 교수가 바라보는 자본과 시장경제의 속성은 잿빛 괴물에 가깝다. 자본이 한 번 형성되면 생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는 게 그의 핵심 주장이다. 그는 책에서 “민간자본 수익률이 소득과 생산의 성장률을 크게 웃돈다”고 지적한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경제성장 속도보다 빠르다는 얘기다. 빈익빈 부익부는 심화되고, 양극화를 매개로 불평등의 간극은 갈수록 커진다. 소수의 ‘가진 자’들에게 강력한 세금을 거둬 인위적으로라도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제시한 해법이다.

반면 디턴 교수의 ‘위대한 탈출’은 정반대 입장을 고수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성장이 장기적·총체적으로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는 경제학자의 굳은 믿음이 깔려있다. 책은 자본과 경제성장이 인류를 어떻게 빈곤과 궁핍의 열악한 삶에서 탈출시켰는지 집중 조명했다.

말하자면 절대적 관점과 상대적 관점의 차이로 읽힌다. 피케티 교수가 부(富)와 계층의 상대적 속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디턴 교수는 인류 발전의 큰 밑그림 속에서 자본과 경제성장의 절대적 역할을 강조했다.

디턴 교수가 책에서 펴는 논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방점이 찍힌다. 성장 과정의 부산물로 어느 정도 불평등이 초래된 것은 사실이나 경제성장의 큰 방향성은 전 세계의 발전과 궁극적 평등으로 정립돼 왔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리는 불평등이 성장을 촉발시켰고, 그 결과 세상은 역설적으로 평등해졌음을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피케티 신드롬’으로 열린 논의의 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성장의 조건과 한계, 자본과 불평등의 속성에 대한 논쟁이 ‘건강한 자본주의’로 이어질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