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님'과 'You' 차이
미국에 있는 한국인 교수에게 들은 이야기다. 한국 유학생 제자와 논문에 관해 토론하려고 만났다고 했다. 교수가 자기 생각을 얘기하자 학생은 ‘네, 교수님’을 반복하며 열심히 받아 적었다. 교수는 학생의 의견이 궁금해 계속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건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교수님’뿐이었다.

다른 날 교수는 답답한 마음에 영어로 말을 걸었다. 학생은 앞의 스승을 ‘유(you)’라고, 우리 정서상 ‘당신’으로 느껴지는 호칭으로 불러야 할 상황에 부닥쳤다. 학생은 처음엔 조금 어색해 하더니 점차 말이 많아졌다. 토론은 물론 나중에는 논쟁을 걸어올 정도로 적극적 태도를 보였다. 모국어보다 훨씬 불편한 영어를 썼는데도 말이다.

지난달 이맘때쯤 곧 출범을 앞둔 다음카카오가 직원 간 호칭을 영어이름으로 통일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과 동료 간 협업을 위해서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의견은 분분했다. 멀쩡한 한국이름을 두고 영어이름을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 2000명이 넘는 직원이 겹치지 않는 영어이름을 짓느라 골머리를 썩일 바에 그 에너지를 더 생산적인 곳에 쓰라는 냉소 등이 내가 기억하는 주된 반응이었다. 우리 사회의 서열 문화가 고작 호칭 하나 바뀐다고 달라지겠느냐는 것이 이 분분한 의견을 둘러싼 공통의 시선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젊은 조교수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앞에 앉은 학과장 교수를 이름으로만 부를 수 있겠는지. 그렇게 부르는 것이 어렵고 어색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외국에서 오랜 시간 공부하며 상대방에게 ‘유’라는 호칭을 수없이 써봤을 교수들도 한국 사회에서는 직함이나 존칭 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 듯 보였다.

나는 호칭의 힘을 믿는 편이다. 학교도 하나의 조직이고 오랜 시간 공유해온 문화가 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존칭을 떼고 이름으로만 부릅시다!”고 고집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학문과 학교는 수평적이어야 한다. 구성원 사이에 격 없이 논쟁할 수 있는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할 때 보다 더 발전적인 소통과 생산적인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언어의 ‘높임’에는 존중과 존경, 배려가 담겨 있다. 하지만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통제하고 지배한다. 소중한 가치가 전복돼 불필요한 권위의식에 지배당하고 있다면 말 그 자체이든, 우리의 사고방식이든 둘 중 하나는 한 번쯤 진지하게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 강성모 KAIST 총장 president@kaist.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