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자전거길 사망사고 한 달 됐는데…표지판 하나만 덩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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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부족으로 몸살 앓는 자전거 도로
남양주시 자전거 도로서 30대 여성 급류 휩쓸려 사망
4대강 자전거길 안전 위협 요소 465건
중앙정부가 건설했지만 보수·관리는 지자체 몫
비용 매년 1000억원 들어…지자체가 감당하기엔 역부족
150억원 예산 지원도 올해로 끝
남양주시 자전거 도로서 30대 여성 급류 휩쓸려 사망
4대강 자전거길 안전 위협 요소 465건
중앙정부가 건설했지만 보수·관리는 지자체 몫
비용 매년 1000억원 들어…지자체가 감당하기엔 역부족
150억원 예산 지원도 올해로 끝
지난 18일 오전 11시께 북한강 자전거길 중간지점인 경강역. 초가을 햇살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던 몇몇 사람들이 갑자기 멈춰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스팔트 재질의 자전거도로가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정표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탓에 서너 갈래로 나눠진 길 중 어디가 자전거도로인지도 한눈에 알아볼 수 없었다.
경강역에서 백양리역 방향으로 50m 정도 달리자 자전거 바퀴에 크고 작은 돌멩이가 밟히기 시작했다. 자전거도로가 자동차도로 바로 옆으로 이어져 있는 이 구간에는 안전펜스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 펜스를 지탱하는 콘크리트가 부식되면서 떨어져 나온 부산물이 자전거도로에 나뒹굴고 있었다. 자전거도로가 나무로 만들어진 곳에선 지날 때마다 ‘덜컹’하는 소리가 났다. 도로 바닥을 고정한 볼트가 헐거워져서다. 일부 구간에선 나무가 부식돼 균열이 생겨 자칫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위험해 보였다.
파이고 벗겨지고 덜컹거리고…
이날 직접 자전거를 타고 돌아본 북한산 자전거길의 상당수 구간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크고 작은 위험 요소들을 볼 수 있었다. 백양리역에서 강촌 방향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자전거도로의 박리현상(표면이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는 현상)이 심각했다. 붉은색으로 칠한 자전거도로 곳곳이 벗겨져 있었다. 일부 도로에선 길게 자란 풀이 자전거도로를 덮고 있어, 이 때문에 지나다닐 수 있는 도로 폭이 1m로 좁아져 자전거도로라고 부르기도 옹색할 정도였다.
김태한 씨(45·자영업)는 “경춘선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 1주일에 한 번씩 오는데 움푹 파인 곳이 적지 않다”며 “보수와 관리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동호인들끼리 위험 지점을 공유하며 자전거를 타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보수가 시급한 곳은 북한강 자전거길뿐만이 아니다. ‘4대강 자전거길’ 중 한강 외에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지만 보수가 적기에 이뤄지지 않아 방치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자전거길 보수에 필요한 비용은 연간 1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시급한 정비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자전거도로 보수 용도로 중앙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지원받던 ‘분권교부세’마저 올해로 끊기게 돼 지자체는 당장 내년 예산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사고…방치된 자전거길
지난 7월 경기 남양주시의 자전거도로에서 30대 여성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지점은 교량형 자전거도로가 자리잡은 곳이다. 교량의 높이가 낮아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는 ‘잠수교’ 형태였다. 다리로 이어지는 길은 급한 내리막인 데다 도로의 노면 상태도 울퉁불퉁해 늘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났지만 ‘위험구간’이라는 표지판 이외에 다른 안전장치는 추가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접했던 사람들은 내리막길에 멈춰 자전거를 끌고 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강인숙 씨(38·주부)는 “여길 지날 때마다 ‘왜 이렇게밖에 만들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위험이 느껴진다”며 “울퉁불퉁하기까지 해 걸어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달 초엔 4대강 코스 중 하나인 낙동강 자전거도로 일부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금남리 칠곡보와 강정 고령보 사이 자전거도로에서 오른쪽 경사면 50m가량이 측방침식으로 붕괴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북한강 자전거길 구간인 의암댐~신매대교 구간에서 집중호우로 도로가 붕괴되는 일도 있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윤영석 새누리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아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자전거도로 발생 사고는 2007년 94건에서 2013년 373건으로 4배나 증가했다. 지난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상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는 4대강 자전거길의 시설 문제 및 안전 위협 요소가 465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4대강 자전거도로는 하천 가까이 자리해 지반이 약할 수밖에 없다”며 “강물에 의한 지반침식으로 도로가 유실되고 우천 시 강물에 잠겨 안전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고 말했다. 백남철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도 “자전거는 예민하기 때문에 배수가 되지 않으면 도로가 미끄러워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며 “북한강 자전거길은 나무로 이어진 구간이 많은데 비가 오면 미끄러워 안전사고 우려가 큰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책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지자체 예산 타령만
전국 자전거도로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정부와 지자체는 예산 탓만 하고 있다. 자전거도로를 관리해야 할 각 지자체는 예산 부족으로 시급한 정비와 보수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자전거도로는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대폭 늘어났다. 자전거도로 건설은 중앙정부에서 진행했지만 현행법상 이를 관리해야 하는 곳은 지자체다.
지자체들은 갑자기 늘어난 자전거도로에서 발생하는 정비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엔 예산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안행부가 지자체별 수요 조사를 통해 파악한 자전거도로 정비 비용은 매년 1000억원에 달한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정부에서 ‘분권교부세’ 항목에 자전거도로 정비를 포함시켜 매년 150억원가량을 지원했다. 분권교부세란 중앙정부가 진행하던 국고보조사업을 지자체에 이양할 경우 이에 소요되는 비용 부담을 위해 지자체에 지원해주는 돈을 말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올해로 끝이 난다. 지자체들이 내년부터 자전거도로 보수에 쓸 수 있는 예산이 더 줄어드는 셈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1995년 자전거도로 사무가 지자체로 넘어가면서 신규 노선 구축은 정부에서 진행하지만 유지관리는 지자체의 영역이 됐다”며 “국가보조금 관련 법에 자전거도로 사업은 제외돼 있어 지자체들이 어려움을 토로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최근 사고가 난 자전거도로의 유지·보수는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데, 예산으로 이를 보수하기 어려워 지속적으로 중앙정부에 지원 요청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예산안 마련 시급…위험노선은 우회로로
전문가들은 자전거도로 유지·보수 비용에 대한 중앙정부의 부담폭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4대강 자전거도로 자체가 국가 차원의 사업으로 조성된 만큼 유지·보수를 지자체에만 떠넘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자전거도로가 많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국가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유지·보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도로 함몰과 지반침식 등이 자주 일어나 사고 위험이 큰 구간에선 자전거도로 노선을 아예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은 “하천 바로 옆을 따라 나 있는 자전거도로는 물에 잠기기가 쉽고 침식의 위험성도 높다”며 “이런 구간들은 하천과의 거리가 좀 멀어지더라도 강가 제방 위에 있는 기존 도로 옆에 자전거도로를 설치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창근 교수도 “하천과 바로 붙어 있는 자전거도로는 매년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이 들어가는 ‘돈 먹는 하마’와 다름없다”며 “강둑 위에 나 있는 길 위주로 노선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춘천=김태호/홍선표 기자 highkick@hankyung.com
경강역에서 백양리역 방향으로 50m 정도 달리자 자전거 바퀴에 크고 작은 돌멩이가 밟히기 시작했다. 자전거도로가 자동차도로 바로 옆으로 이어져 있는 이 구간에는 안전펜스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 펜스를 지탱하는 콘크리트가 부식되면서 떨어져 나온 부산물이 자전거도로에 나뒹굴고 있었다. 자전거도로가 나무로 만들어진 곳에선 지날 때마다 ‘덜컹’하는 소리가 났다. 도로 바닥을 고정한 볼트가 헐거워져서다. 일부 구간에선 나무가 부식돼 균열이 생겨 자칫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위험해 보였다.
파이고 벗겨지고 덜컹거리고…
이날 직접 자전거를 타고 돌아본 북한산 자전거길의 상당수 구간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크고 작은 위험 요소들을 볼 수 있었다. 백양리역에서 강촌 방향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자전거도로의 박리현상(표면이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는 현상)이 심각했다. 붉은색으로 칠한 자전거도로 곳곳이 벗겨져 있었다. 일부 도로에선 길게 자란 풀이 자전거도로를 덮고 있어, 이 때문에 지나다닐 수 있는 도로 폭이 1m로 좁아져 자전거도로라고 부르기도 옹색할 정도였다.
김태한 씨(45·자영업)는 “경춘선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 1주일에 한 번씩 오는데 움푹 파인 곳이 적지 않다”며 “보수와 관리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동호인들끼리 위험 지점을 공유하며 자전거를 타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보수가 시급한 곳은 북한강 자전거길뿐만이 아니다. ‘4대강 자전거길’ 중 한강 외에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지만 보수가 적기에 이뤄지지 않아 방치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자전거길 보수에 필요한 비용은 연간 1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시급한 정비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자전거도로 보수 용도로 중앙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지원받던 ‘분권교부세’마저 올해로 끊기게 돼 지자체는 당장 내년 예산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사고…방치된 자전거길
지난 7월 경기 남양주시의 자전거도로에서 30대 여성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지점은 교량형 자전거도로가 자리잡은 곳이다. 교량의 높이가 낮아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는 ‘잠수교’ 형태였다. 다리로 이어지는 길은 급한 내리막인 데다 도로의 노면 상태도 울퉁불퉁해 늘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났지만 ‘위험구간’이라는 표지판 이외에 다른 안전장치는 추가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접했던 사람들은 내리막길에 멈춰 자전거를 끌고 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강인숙 씨(38·주부)는 “여길 지날 때마다 ‘왜 이렇게밖에 만들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위험이 느껴진다”며 “울퉁불퉁하기까지 해 걸어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달 초엔 4대강 코스 중 하나인 낙동강 자전거도로 일부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금남리 칠곡보와 강정 고령보 사이 자전거도로에서 오른쪽 경사면 50m가량이 측방침식으로 붕괴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북한강 자전거길 구간인 의암댐~신매대교 구간에서 집중호우로 도로가 붕괴되는 일도 있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윤영석 새누리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아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자전거도로 발생 사고는 2007년 94건에서 2013년 373건으로 4배나 증가했다. 지난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상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는 4대강 자전거길의 시설 문제 및 안전 위협 요소가 465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4대강 자전거도로는 하천 가까이 자리해 지반이 약할 수밖에 없다”며 “강물에 의한 지반침식으로 도로가 유실되고 우천 시 강물에 잠겨 안전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고 말했다. 백남철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도 “자전거는 예민하기 때문에 배수가 되지 않으면 도로가 미끄러워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며 “북한강 자전거길은 나무로 이어진 구간이 많은데 비가 오면 미끄러워 안전사고 우려가 큰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책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지자체 예산 타령만
전국 자전거도로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정부와 지자체는 예산 탓만 하고 있다. 자전거도로를 관리해야 할 각 지자체는 예산 부족으로 시급한 정비와 보수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자전거도로는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대폭 늘어났다. 자전거도로 건설은 중앙정부에서 진행했지만 현행법상 이를 관리해야 하는 곳은 지자체다.
지자체들은 갑자기 늘어난 자전거도로에서 발생하는 정비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엔 예산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안행부가 지자체별 수요 조사를 통해 파악한 자전거도로 정비 비용은 매년 1000억원에 달한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정부에서 ‘분권교부세’ 항목에 자전거도로 정비를 포함시켜 매년 150억원가량을 지원했다. 분권교부세란 중앙정부가 진행하던 국고보조사업을 지자체에 이양할 경우 이에 소요되는 비용 부담을 위해 지자체에 지원해주는 돈을 말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올해로 끝이 난다. 지자체들이 내년부터 자전거도로 보수에 쓸 수 있는 예산이 더 줄어드는 셈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1995년 자전거도로 사무가 지자체로 넘어가면서 신규 노선 구축은 정부에서 진행하지만 유지관리는 지자체의 영역이 됐다”며 “국가보조금 관련 법에 자전거도로 사업은 제외돼 있어 지자체들이 어려움을 토로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최근 사고가 난 자전거도로의 유지·보수는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데, 예산으로 이를 보수하기 어려워 지속적으로 중앙정부에 지원 요청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예산안 마련 시급…위험노선은 우회로로
전문가들은 자전거도로 유지·보수 비용에 대한 중앙정부의 부담폭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4대강 자전거도로 자체가 국가 차원의 사업으로 조성된 만큼 유지·보수를 지자체에만 떠넘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자전거도로가 많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국가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유지·보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도로 함몰과 지반침식 등이 자주 일어나 사고 위험이 큰 구간에선 자전거도로 노선을 아예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은 “하천 바로 옆을 따라 나 있는 자전거도로는 물에 잠기기가 쉽고 침식의 위험성도 높다”며 “이런 구간들은 하천과의 거리가 좀 멀어지더라도 강가 제방 위에 있는 기존 도로 옆에 자전거도로를 설치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창근 교수도 “하천과 바로 붙어 있는 자전거도로는 매년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이 들어가는 ‘돈 먹는 하마’와 다름없다”며 “강둑 위에 나 있는 길 위주로 노선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춘천=김태호/홍선표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