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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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게임, 단체기합, 철야행군, 극기훈련…. 신입사원 합숙교육이 갈수록 독해지고 있다. 하지만 조별 활동 중에도 자투리 시간이나 밤새워 과제를 함께하며 눈이 마주칠 ‘틈’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합숙교육 연수원은 대대로 사내커플의 ‘온상’으로 불린다.

이때 신입사원의 인상을 살피고 평가에 열을 올리는 것은 이성 동기만은 아니다. 남자 동기들끼리도 탐색전을 벌이고 선배 사원들 역시 ‘매의 눈’으로 후배들을 지켜보고 있다. 신입사원들에 대한 ‘평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는 것도 LTE(4세대 이동통신) 급으로 빠르다.

“신입사원 합숙소는 군대 훈련소”

대기업 A사 신입사원인 김모씨(27)는 최근 두 달가량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김씨의 여자친구는 입사 동기로 신입사원 합숙교육 때 연수원에서 처음 만났다. A사의 신입사원 교육은 두 달 동안 외부 출입이 금지되고 연수원에 갇혀 단체생활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슷한 또래의 동기들과 두 달 동안 함께 생활하다 보니 없던 정(情)도 생기게 마련이다. 남중·남고를 거쳐 대학도 공대를 나온 김씨는 여자들과 단체생활을 하는 게 처음이었다. 합숙교육 당시 같은 조에 배정된 여자 동기에게 반해 고백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씨의 성공담은 같은 조 동기들 사이에 삽시간에 퍼져 연수원 내 ‘공식 커플’이 됐다.

하지만 두 달간의 합숙연수를 마치고 계열사 배치를 받자마자 김씨의 눈이 번쩍 떠졌다. 연수원을 벗어나니 시야가 넓어지면서 다른 여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 결국 김씨는 연수원에서의 인연을 추억으로 묻기로 하고 결별을 선언했다. 김씨는 “신입사원 합숙소는 곧 군대 훈련소라는 말이 실감 났다”며 “군대에서 모든 여자가 예뻐 보이듯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비밀 사내연애의 유통기한은 한 계절?

대기업 B그룹 공채 신입사원으로 처음 만난 송모씨(남)와 김모씨(여). 송씨는 1주일 넘게 이어진 합숙연수로 지쳐가던 중 팀별 기마전에서 김씨의 악바리 같은 모습에 끌렸다. 이후 합숙기간이 끝날 때까지 개인시간이 주어지면 과제를 도와주며 단둘이 시간을 보낼 기회만 엿봤다.

둘은 계열사는 달랐지만 ‘신성한 신입사원 교육에서 눈이 맞았다’는 후문이 두려워 비밀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입사 동기들끼리 자주 술자리를 하게 되다 보니 괜한 소문에 휩쓸리게 됐다. 유독 송씨에 대한 소문이 많았고, 파국의 씨앗이 됐다. 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각종 회식 때문에 오해를 풀 시간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입사 초기에 신입사원끼리 만나면 한 계절을 넘기기가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를 남기며 넉 달 만에 연애 종지부를 찍었다.

결혼에 골인한 ‘예외’도

대기업 C사에 근무하는 입사 2년차 사원인 정모씨(남)와 박모씨(여)는 입사 당시부터 이어진 ‘끈질긴’ 인연 덕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합격 통보를 받고 이들이 처음 만난 건 2박3일간의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OT).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OT 첫날 행사에서 둘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스테이크를 썰었다.

운명의 장난인가. OT가 끝나고 진행된 1주일간 합숙 연수에 이어 한 달간 교육에서도 둘은 같은 조에 편성됐다. 300여명에 이르는 신입사원 가운데 세 번에 걸쳐 같은 조에 배정된 사례는 이들이 유일했다. 주변에선 어느새 둘 사이를 놓고 수군대기 시작했고, 두 달 가까이 매일 얼굴을 마주한 둘은 ‘연인’이 됐다. 정씨는 “모든 게 낯선 신입사원 입장에서 처음 눈에 띈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회상했다.

2012년 초 시중은행에 입사한 이모 계장은 같은 해 연수원에 입소한 강모 계장과 최근 결혼식을 올렸다. 이 계장은 “사내커플이라 주변의 이목이 불편하기도 했다”면서도 “하지만 업무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특히 같이 상사 험담도 하면서 쉽게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신입사원 연수가 제한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을 밀도있게 만나기 때문에 커플이 탄생하기 좋은 ‘온상’이란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차라리 첫인상이 나빴더라면…

중견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박모 과장은 지난해 신입사원 채용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다. 실무자 면접이 있던 날 박 과장은 실무 면접관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그는 수많은 지원자 가운데 똑부러진 말투로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오모씨(26)에게 특히 눈길이 갔다.

다른 면접관들이 조직 융화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 같다면서 신중한 모습을 보였지만 박 과장이 나서서 “이런 인재가 우리 회사에 필요한 신입사원”이라며 적극 추천했다.

오씨의 문제점은 서서히 드러났다. 면접 때의 적극적인 태도는 독불장군식 고집스러움으로, 똑부러지는 말투는 상사의 지적을 따박따박 따지는 말대꾸로 탈바꿈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와 일하기를 싫어하게 됐다. 박 과장은 “면접 때 꾸며진 첫인상에 속으면 안 된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고 푸념했다.

추가영/안정락/김은정/강경민/임현우/김동현/김인선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