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자영업 탈출구를 찾아라] 횟집→포장마차→만화방→일식집…1년이 멀다하고 '간판'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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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년짜리 생존게임 된 '묻지마 창업'
준비 안하고 "일단 개업부터"
'칼국수' 상표권료 500만원
알고보니 안줘도 될 돈 지급
준비 안하고 "일단 개업부터"
'칼국수' 상표권료 500만원
알고보니 안줘도 될 돈 지급
서울의 핵심 상권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주변에 자리잡은 3층 상가건물(테헤란로1길 28-1). 이곳을 거쳐간 점포들의 이력을 보면 한자리에서 자영업을 오래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10년 넘게 영업을 하던 갈비집이 2006년 문을 닫은 1층 점포는 이후 횟집에서 포장마차, 소주방, 만화방, 일식집을 거쳐 지금의 찜닭집이 자리를 잡기 전까지 짧게는 2개월, 길어야 1년을 버티지 못했다. 두 골목 아래의 테헤란로1길 26의 3층 건물 역시 1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켰던 닭갈비집이 떠난 뒤 거의 매년 간판이 교체됐다.
준비 없는 창업
오래된 단골집이 새로운 트렌드에 밀려 사라지고 새로 들어온 가게들이 단명을 거듭하는 현상은 서울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1992년 이후 연세로11길에서 영업을 한 가게 가운데 상권정보시스템에 점포이력이 남아 있는 곳은 모두 301개. 이들 가게의 평균 생존기간은 43개월로 서울시가 집계한 서울지역 전체 자영업자의 평균 생존기간(40개월)보다 길다. 하지만 영업을 10년 이상 한 가게 33곳을 빼면 나머지 268곳의 생존기간은 26.4개월로 전체 평균보다 1년2개월이 짧아진다.
새로 생긴 가게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생멸주기는 2000년대 들어 더욱 짧아지고 있다. 사전지식과 철저한 준비 없이 창업전선에 뛰어드는 ‘묻지마 창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음식점만 하더라도 2000년 이전까지 새로 생기는 음식점 사장은 관련 업종에서 오랜 기간 종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갈비집을 차리려면 다른 갈비집에서 일정 기간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노하우를 익혔다는 것이다. 바닥에서부터 일을 배운 만큼 생존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실수와 착각이 쌓이면…
서울 종로에서 경기지역 유명 칼국수집과 같은 상호를 사용하는 한 가게의 사례는 최근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사전 준비부족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 가게는 지난해 문을 열면서 ‘××칼국수’란 상호를 쓰는 조건으로 500만원을 주고 상표권료를 지급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는 지명이기 때문에 상표권으로 등록이 불가능한 상호였다. 누구의 허락 없이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름이었다는 얘기다.
이 가게 운영주는 “뒤늦게 안 써도 될 돈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돌려달라는 말을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더 놀랐던 점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칼국수’라는 이름을 쓰는 조건으로 본점에 돈을 낸 가게가 수도권에만 10여곳에 달하더라는 점이다. 김유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기획조정실장은 “자영업 베테랑들도 생존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 전문성과 무관하게 창업을 서두르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다”며 “상담을 해보면 시장조사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는 분이 많다”고 꼬집었다.
대기업 출신도 쓴맛
어설픈 창업은 필연적으로 자영업자들이 수시로 보따리를 싸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핵심 상권일수록 특히 그렇다. 부동산 정보업체 FR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의 영업 유지기간은 평균 1.64년으로 대부분의 가게가 2년을 버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서판교 운중동(1.82년),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2.03년), 강남역(2.10년), 홍대입구역(2.32년) 등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을 한 뒤 압구정 로데오거리에서 작은 일식집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가게를 접은 이모씨는 “유동인구가 많은 것만 보고 너무 쉽게 덤벼들었다”고 후회했다. 메뉴를 선정하고, 맛을 내고, 입소문을 내는 일 등에 힘을 쏟았지만 정작 점원들을 교육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실패했다는 것.
“큰 기업에서 조직관리를 해봤기 때문에 두세 명의 종업원을 부리는 것쯤은 신경도 안 썼어요. 그런데 그 작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군요.”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은 자신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손대야 하는 특성이 있다”며 “기업처럼 잘되는 가게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특유의 성공요인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영효/김동현 기자 hugh@hankyung.com
특별취재팀=조일훈 경제부장(팀장), 조진형·심성미·고은이(경제부), 강창동 유통전문·강진규(생활경제부), 정영효·서기열(증권부), 조미현(중소기업부), 윤희은(지식사회부), 김동현 기자(건설부동산부)
준비 없는 창업
오래된 단골집이 새로운 트렌드에 밀려 사라지고 새로 들어온 가게들이 단명을 거듭하는 현상은 서울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1992년 이후 연세로11길에서 영업을 한 가게 가운데 상권정보시스템에 점포이력이 남아 있는 곳은 모두 301개. 이들 가게의 평균 생존기간은 43개월로 서울시가 집계한 서울지역 전체 자영업자의 평균 생존기간(40개월)보다 길다. 하지만 영업을 10년 이상 한 가게 33곳을 빼면 나머지 268곳의 생존기간은 26.4개월로 전체 평균보다 1년2개월이 짧아진다.
새로 생긴 가게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생멸주기는 2000년대 들어 더욱 짧아지고 있다. 사전지식과 철저한 준비 없이 창업전선에 뛰어드는 ‘묻지마 창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음식점만 하더라도 2000년 이전까지 새로 생기는 음식점 사장은 관련 업종에서 오랜 기간 종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갈비집을 차리려면 다른 갈비집에서 일정 기간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노하우를 익혔다는 것이다. 바닥에서부터 일을 배운 만큼 생존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실수와 착각이 쌓이면…
서울 종로에서 경기지역 유명 칼국수집과 같은 상호를 사용하는 한 가게의 사례는 최근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사전 준비부족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 가게는 지난해 문을 열면서 ‘××칼국수’란 상호를 쓰는 조건으로 500만원을 주고 상표권료를 지급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는 지명이기 때문에 상표권으로 등록이 불가능한 상호였다. 누구의 허락 없이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름이었다는 얘기다.
이 가게 운영주는 “뒤늦게 안 써도 될 돈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돌려달라는 말을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더 놀랐던 점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칼국수’라는 이름을 쓰는 조건으로 본점에 돈을 낸 가게가 수도권에만 10여곳에 달하더라는 점이다. 김유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기획조정실장은 “자영업 베테랑들도 생존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 전문성과 무관하게 창업을 서두르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다”며 “상담을 해보면 시장조사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는 분이 많다”고 꼬집었다.
대기업 출신도 쓴맛
어설픈 창업은 필연적으로 자영업자들이 수시로 보따리를 싸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핵심 상권일수록 특히 그렇다. 부동산 정보업체 FR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의 영업 유지기간은 평균 1.64년으로 대부분의 가게가 2년을 버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서판교 운중동(1.82년),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2.03년), 강남역(2.10년), 홍대입구역(2.32년) 등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을 한 뒤 압구정 로데오거리에서 작은 일식집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가게를 접은 이모씨는 “유동인구가 많은 것만 보고 너무 쉽게 덤벼들었다”고 후회했다. 메뉴를 선정하고, 맛을 내고, 입소문을 내는 일 등에 힘을 쏟았지만 정작 점원들을 교육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실패했다는 것.
“큰 기업에서 조직관리를 해봤기 때문에 두세 명의 종업원을 부리는 것쯤은 신경도 안 썼어요. 그런데 그 작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군요.”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은 자신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손대야 하는 특성이 있다”며 “기업처럼 잘되는 가게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특유의 성공요인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영효/김동현 기자 hugh@hankyung.com
특별취재팀=조일훈 경제부장(팀장), 조진형·심성미·고은이(경제부), 강창동 유통전문·강진규(생활경제부), 정영효·서기열(증권부), 조미현(중소기업부), 윤희은(지식사회부), 김동현 기자(건설부동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