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원·엔 환율이 800원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자동차와 전자 등 주력 산업을 중심으로 산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지속적인 엔저(低)가 한국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5일 원·엔 환율은 100엔당 952원7전(외환은행 최초 고시 기준)으로 떨어졌다. 2008년 8월18일(950원69전) 이후 6년1개월 만의 최저치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과 아시아금융학회가 이날 여의도 FKI 타워에서 공동 주최한 ‘추락하는 원·엔 환율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엔저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한국은행의 추가적인 금리 인하 등 강력한 외환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권태신 한경연 원장은 “달러 강세로 엔 약세는 빨라진 반면 원화는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주식 순매수 지속으로 약세로 전환되지 않고 있다”며 “이로 인해 수출 증가율 급락, 기업 영업이익 악화 등을 초래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학자 출신인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도 “한국과 일본은 수출 품목이 서로 비슷해 엔저가 계속되면 우리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채산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엔저가 1997년이나 2008년과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 회장은 “1997년과 2008년 한국 외환위기는 미국 금리 인상과 엔저에 따른 원·엔 환율 하락으로 경상수지가 악화돼 발생했다”며 “내년 중반으로 점쳐지는 미국 금리 인상은 2012년 6월 이후 56%나 절상된 원화 가치 상승을 가속화해 100엔당 800원대 중반까지 원·엔 환율이 하락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 회장은 △핫머니 등 무분별한 자본 유입에 대한 규제 △외환시장 교란에 대한 질서 있는 개입 △전향적인 금리 및 환율 정책 △불황형 흑자 구조를 바꾸기 위한 내수 진작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을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흥 국회 입법조사처 경제산업분석실장은 “엔저에 따른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유입 증가는 한국 외환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도 있으므로 적절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삼모 동국대 교수도 “외환시장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미세 개입이 불가피하다”며 “한은도 정부와 협조해 적극적으로 금리를 내리는 등 거시적인 환율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