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라지면 고객들이 그리워할까?"
한때 성장 가도를 달리던 기업도 성장이 정체되는 시기를 맞는다. 부진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써도 소수만이 부활에 성공할 뿐 나머지 대다수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 차이는 어디서 나올까?

성공 체험을 축적한 기업일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패턴에 안주해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조직이론의 대가인 제임스 마치 교수가 말한 ‘성공의 함정’, 즉 조직 관성(Inertia)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소비자 니즈나 외부 환경이 급변했는데도 이전의 성공 방정식과 핵심 역량에만 집중하면 위기를 맞게 된다.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최초로 개발해 놓고도 단기적 이윤을 위해 주력인 필름사업에 집착하다가 결국 후발 기업에 밀려 시장지배력을 상실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성급한 변신을 추구했다가 과거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리는 사례도 있다. 워크맨 신화로 시작해 승승장구하던 소니의 추락이 이에 해당한다. 탄탄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정보기술(IT) 하드웨어의 강자로 군림하던 이 회사는 단단함 내지 내구성으로 대표되는 제조사로 소비자들에게 각인돼 있었다. 하지만 소니는 너무 서둘러 콘텐츠 사업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느라 자신의 강점분야였던 TV 같은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했다. 결과적으로 소니는 자부심이던 ‘기술력’까지 상당부분 잃게 됐다. 고객들에게 소프트웨어를 덧붙여 새로운 소니로 인정받기도 전에 제조사로서 ‘소니다움’을 놓쳐버린 것이다.

반면에 과거 성공 요인이 재기의 버팀목이 돼 주는 기업들이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창업 이래 최대 실적을 내며 완전히 부활했다. 때마침 엔저 환율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지만, 재기의 주요 동인은 ‘품질경영’이라는 창업정신으로의 복귀다. 소비자가 원하는 안전한 차를 만드는 게 ‘도요타다움’이라는 미션을 다시 강조하며 모든 경영활동을 품질이라는 가치 중심으로 재정렬한 결과다.

2000년대 중반 대규모 적자에 빠졌던 레고가 위기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애초의 존재 이유에서 해답을 찾은 데 있다. 레고는 분명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놀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레고 놀이에 기꺼이 전념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매출과 수익을 더 올릴 수 있을까 대신에 어린이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미션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제품 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나서야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난해 ‘겨울왕국’의 대성공으로 애니메이션 왕국의 위상을 확인한 디즈니에도 암흑기가 있었다. 이 회사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핵심역량에서 벗어난 캐릭터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치중하다가 위기를 맞게 됐다.

1989년 인어공주를 시작으로 만화 영화에 올인하는 사업 전략으로,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가 1957년 고안한 비전맵에 기반해 핵심자산인 애니메이션에 다시 집중하면서 암흑기를 마감하고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우리 기업이 사라지면 세상에 구멍이 생기고, 우리 기업을 대신할 다른 기업을 찾지 못한 고객들이 우리를 그리워할까?” 이 질문으로부터 우리 기업이 세상에 필요한 차별적인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일관되게 가져가야 할 것은 무엇이며 떨쳐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김국태 <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