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 경제 대도약 - 5만달러 시대 열자] 연매출 10억→3652억…"작은 성공에서 멈추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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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업가정신인가 (1) 새로움을 향한 무한도전…김영찬 골프존 회장
54세 늦깎이 창업
"세상에 없는 것 만들자"…1년6개월 제품개발 올인
"두려움 떨쳐 버려라"
대박 났지만 더 큰 도전…'골프존 문화제국'이 꿈
54세 늦깎이 창업
"세상에 없는 것 만들자"…1년6개월 제품개발 올인
"두려움 떨쳐 버려라"
대박 났지만 더 큰 도전…'골프존 문화제국'이 꿈
대기업을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한 때 그의 나이는 54세였다. 주변에선 “남들처럼 쉬운 길을 가라”고 했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직원 5명, 자본금 5억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창업 후 2년간 매출은 0원. 통장 잔액은 갈수록 줄었다. 밤새워 제품 개발을 하다가 쓰러져 응급실에도 수차례 실려갔다.
김영찬 골프존 회장(68·사진)의 성공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골프존은 삼성전자 임원 출신인 김 회장이 2000년에 설립한 골프 시뮬레이션 기기(스크린골프) 제조기업이다. 골프존 매출은 초창기 0원에서 작년 3652억원으로 늘었다. 경쟁사가 많이 생겼지만 국내 점유율은 여전히 독보적 1위다. 서울 청담동 골프존타워에서 만난 김 회장은 “아무도 하지 않는 걸 해보겠다는 상상력이 지금의 골프존을 만들었다”고 했다.
지인들 “왜 사서 고생하나”
김 회장은 1993년 삼성전자 시스템사업부장을 끝으로 퇴사했다. 곧바로 삼성전자에서 교환키, 키폰시스템 등 제품 생산 부서에서 일한 경력을 밑천 삼아 사업을 시작했다. 첫 사업은 이른바 ‘700-××××’로 알려진 음성사서함 관련 부가통신사업. 퇴직금으로 5000만원의 자본금을 마련했다. 대학입시 정보나 야구경기 결과를 알려주는 서비스로 돈을 꽤 벌었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해지고 시장에 음란·퇴폐 서비스가 성행하면서 회의를 느꼈다.
그래서 평소 좋아하는 ‘골프’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한 골프 시뮬레이션 기기 개발에 다시 뛰어들었다. 사업 아이디어는 ‘골프 연습장에선 드라이버와 아이언이 잘 맞는데 왜 필드에 나가기만 하면 안될까’라는 평소 궁금증에서 찾았다. 김 회장은 “실제 필드와 똑같은 조건을 갖춘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면 통할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에 없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건 힘들었다. 1년6개월을 매달려도 제품 개발 성과는 없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도 망가졌다. 열흘간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며 일하다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 격려해주던 아내마저 “꼭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 하느냐’는 것. 그래도 “개발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에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1년반의 진통을 겪은 끝에 첫 제품이 탄생했다. ‘과연 팔릴까’란 두려움을 안고 그가 처음 찾아간 곳은 동대문시장에 있던 조그만 골프연습장. 반응은 좋았다. 한 대를 팔고서 2000만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첫 매출이었다. 안주냐 성장이냐, 선택의 기로
골프존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실내 골프연습장에서 고객들이 골프존을 설치한 타석에만 줄을 서는 일이 잦아졌다. 김 회장은 “전국 3000개의 실내연습장에 골프존 기계를 한 대씩 파는 게 목표였는데 어느 날부터 골프연습장들에서 5대, 10대씩 주문이 밀려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대박을 친 것이다. 2002년 10억원이던 매출은 5년 만인 2006년 100억원을 넘었고, 2년 뒤(2008년) 1000억원을 돌파했다.
매출 100억원이 넘어갈 즈음, 김 회장은 회사의 미래를 고민했다. 100억원 정도를 버는 중소기업에 만족할 것이냐, 좀 더 큰 기업으로 키울 것이냐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는 “작은 성공을 거뒀지만 자영업자 수준의 기업에서 멈춰서기는 정말 싫었다”고 했다.
김 회장은 한 번 더 ‘가속페달’을 밟기로 결정했다. 중장기 경영계획을 다시 세우고 인재를 찾아나섰다. 개발인력을 대폭 늘리고 매출의 10%가량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부었다. 현재 골프존 임직원 400여명 가운데 200명 남짓이 R&D 인력이다. 그 결과 스크린골프 시장이 포화상태에 다다랐다는 평가 속에서도 골프존 매출은 매년 30% 이상 늘고 있다.
준비된 기업가에게 실패는 없다
골프존의 성공 비결은 뭘까. 김 회장은 “골프방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시장”이라며 “그 기회를 알아채고 어렵지만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패할 두려움을 깔고 시작하는 도전은 성공할 수 없다”며 “내 모든 것을 다 털어넣어도 아깝지 않은 것, 그것을 할 자신이 있고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기업가정신의 요체”라고 강조했다.
70세를 앞둔 김 회장은 여전히 꿈을 꾼다. 바로 ‘골프존 문화제국’이다. 한국을 넘어 중국 대만 등 해외에 골프존을 전파하는 것. 그는 “K팝처럼 전 세계 사람이 골프존의 놀이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영찬 회장은…
△1946년 출생 △1973년 홍익대 기계공학과 졸업 △1979년~1993년 삼성전자 근무, 시스템사업부장으로 퇴직 △1993년 영밴 창업 △2000년 골프존 창업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김영찬 골프존 회장(68·사진)의 성공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골프존은 삼성전자 임원 출신인 김 회장이 2000년에 설립한 골프 시뮬레이션 기기(스크린골프) 제조기업이다. 골프존 매출은 초창기 0원에서 작년 3652억원으로 늘었다. 경쟁사가 많이 생겼지만 국내 점유율은 여전히 독보적 1위다. 서울 청담동 골프존타워에서 만난 김 회장은 “아무도 하지 않는 걸 해보겠다는 상상력이 지금의 골프존을 만들었다”고 했다.
지인들 “왜 사서 고생하나”
김 회장은 1993년 삼성전자 시스템사업부장을 끝으로 퇴사했다. 곧바로 삼성전자에서 교환키, 키폰시스템 등 제품 생산 부서에서 일한 경력을 밑천 삼아 사업을 시작했다. 첫 사업은 이른바 ‘700-××××’로 알려진 음성사서함 관련 부가통신사업. 퇴직금으로 5000만원의 자본금을 마련했다. 대학입시 정보나 야구경기 결과를 알려주는 서비스로 돈을 꽤 벌었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해지고 시장에 음란·퇴폐 서비스가 성행하면서 회의를 느꼈다.
그래서 평소 좋아하는 ‘골프’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한 골프 시뮬레이션 기기 개발에 다시 뛰어들었다. 사업 아이디어는 ‘골프 연습장에선 드라이버와 아이언이 잘 맞는데 왜 필드에 나가기만 하면 안될까’라는 평소 궁금증에서 찾았다. 김 회장은 “실제 필드와 똑같은 조건을 갖춘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면 통할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에 없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건 힘들었다. 1년6개월을 매달려도 제품 개발 성과는 없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도 망가졌다. 열흘간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며 일하다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 격려해주던 아내마저 “꼭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 하느냐’는 것. 그래도 “개발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에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1년반의 진통을 겪은 끝에 첫 제품이 탄생했다. ‘과연 팔릴까’란 두려움을 안고 그가 처음 찾아간 곳은 동대문시장에 있던 조그만 골프연습장. 반응은 좋았다. 한 대를 팔고서 2000만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첫 매출이었다. 안주냐 성장이냐, 선택의 기로
골프존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실내 골프연습장에서 고객들이 골프존을 설치한 타석에만 줄을 서는 일이 잦아졌다. 김 회장은 “전국 3000개의 실내연습장에 골프존 기계를 한 대씩 파는 게 목표였는데 어느 날부터 골프연습장들에서 5대, 10대씩 주문이 밀려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대박을 친 것이다. 2002년 10억원이던 매출은 5년 만인 2006년 100억원을 넘었고, 2년 뒤(2008년) 1000억원을 돌파했다.
매출 100억원이 넘어갈 즈음, 김 회장은 회사의 미래를 고민했다. 100억원 정도를 버는 중소기업에 만족할 것이냐, 좀 더 큰 기업으로 키울 것이냐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는 “작은 성공을 거뒀지만 자영업자 수준의 기업에서 멈춰서기는 정말 싫었다”고 했다.
김 회장은 한 번 더 ‘가속페달’을 밟기로 결정했다. 중장기 경영계획을 다시 세우고 인재를 찾아나섰다. 개발인력을 대폭 늘리고 매출의 10%가량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부었다. 현재 골프존 임직원 400여명 가운데 200명 남짓이 R&D 인력이다. 그 결과 스크린골프 시장이 포화상태에 다다랐다는 평가 속에서도 골프존 매출은 매년 30% 이상 늘고 있다.
준비된 기업가에게 실패는 없다
골프존의 성공 비결은 뭘까. 김 회장은 “골프방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시장”이라며 “그 기회를 알아채고 어렵지만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패할 두려움을 깔고 시작하는 도전은 성공할 수 없다”며 “내 모든 것을 다 털어넣어도 아깝지 않은 것, 그것을 할 자신이 있고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기업가정신의 요체”라고 강조했다.
70세를 앞둔 김 회장은 여전히 꿈을 꾼다. 바로 ‘골프존 문화제국’이다. 한국을 넘어 중국 대만 등 해외에 골프존을 전파하는 것. 그는 “K팝처럼 전 세계 사람이 골프존의 놀이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영찬 회장은…
△1946년 출생 △1973년 홍익대 기계공학과 졸업 △1979년~1993년 삼성전자 근무, 시스템사업부장으로 퇴직 △1993년 영밴 창업 △2000년 골프존 창업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