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노벨문학상에 프랑스 소설가 파트리크 모디아노…소멸된 기억 되살려 '인간 존재의 근원'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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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불화로 암울한 유년 보내
망각·정체성·죄책감 등 주제로
나치 독일 점령기 실상 드러내
망각·정체성·죄책감 등 주제로
나치 독일 점령기 실상 드러내
2014년 노벨문학상은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거장 파트리크 모디아노(69)에게 돌아갔다. 그는 전쟁 직후의 암울한 기억을 신비로운 언어로 되살려낸 작가로 평가받는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 올해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면서 “붙잡을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환기시키고 나치 점령기의 생활상을 드러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프랑스 작가로는 2008년 르 클레지오 이후 6년 만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모디아노는 1945년 파리 근교에서 이탈리아 출신 사업가인 아버지 알베르 모디아노와 벨기에 출신 영화배우인 어머니 루이자 콜페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서 만나 신분을 감춘 채 함께 살았다. 그는 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부모의 불화로 인해 암울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청년 시절마저 프랑스 혼돈기와 맞물려 그의 작품엔 우울함과 불안, 허무 등이 배어 있다.
모디아노는 앙리4세고등학교의 기하학 교사이자 작가였던 레몽 크노의 결정적인 영향으로 18세 때 문학의 세계에 눈을 떴다. 이후 1968년 소설 ‘에투알 광장’으로 로제 니미에상, 페네옹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독자들은 인간 존재와 생의 근원을 탐구하는 그의 작품에 열광했다.
모디아노는 ‘외곽 순환도로’로 1972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 ‘슬픈 빌라’로 1975년 리브레리상, 1978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이후 발표한 ‘잃어버린 거리’ ‘8월의 일요일들’ ‘도라 브루더’ ‘신원 미상 여자’ ‘작은 보석’ ‘한밤의 사고’ ‘혈통’ 등도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모디아노의 작품은 기억, 망각, 정체성, 죄책감 등을 주된 주제로 삼고 있다. 파리는 자주 그의 작품에 현재형으로 등장하며 작품의 창의적인 구성요소로 기여한다. 또한 그의 자전적 이야기나 나치 점령기에 일어난 일을 기초로 작품이 전개된다. 인터뷰나 신문 기사, 몇 년씩 모아둔 메모도 그에겐 중요한 작품 소재다.
그의 작품들은 초기작 속 에피소드가 후속 작품에서 확장되거나 같은 사람이 다른 작품에 되살아나는 등 서로 친연성을 갖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작가의 고향이나 개인사가 이들을 연결하는 고리다. 가장 자전적 성격이 강한 작품은 2005년 발표한 ‘혈통’이다. 모디아노는 어린이책과 영화 대본도 썼다. 1974년에는 루이 말 감독과 함께 영화 ‘라콤 루시앙’을 제작하기도 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문학동네)는 현대 프랑스 문학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모디아노의 대표작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퇴역 탐정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여정을 그렸다. 주인공 롤랑은 다른 인물의 뒤를 밟듯 낯선 자신의 과거를 추적한다. 탐정소설의 구조를 이용해 자신의 과거를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2차 세계대전의 참화와 그로 인한 인간의 아픔과 마주한다. 전쟁 중 태어나 과거를 상실한 세대로 자란 모디아노는 ‘기억 상실’로 표현되는 프랑스 현대사의 한 단면을 바라보며 인간 존재의 ‘소멸된 자아 찾기’라는 보편적인 주제까지 다뤘다.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교수는 “모디아노는 2차 세계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소설을 많이 썼지만 그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 인간 존재의 모호한 출발점과 생의 근원을 끊임없이 모색해왔다”고 평가했다.
김윤진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출판본부장은 모디아노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와 닮았다고 했다. 김 본부장은 “프루스트가 기억을 통한 삶의 재생, 재해석에 초점을 맞췄다면 모디아노는 파편적인 우리의 기억이 과연 논리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우리 삶은 그렇게 합리적인 것일까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계속 되물었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내적인 논리를 실제적인 삶과 연관시켜 끊임없이 비판하고 반성했다는 얘기다.
국내 번역 출간된 작품으로는 소설《어두운 상점들의 거리》《한밤의 사고》《도라 브루더》《혈통》(문학동네)과 청소년 소설《우리 아빠는 엉뚱해 》(별천지) 등이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모디아노는 1945년 파리 근교에서 이탈리아 출신 사업가인 아버지 알베르 모디아노와 벨기에 출신 영화배우인 어머니 루이자 콜페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서 만나 신분을 감춘 채 함께 살았다. 그는 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부모의 불화로 인해 암울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청년 시절마저 프랑스 혼돈기와 맞물려 그의 작품엔 우울함과 불안, 허무 등이 배어 있다.
모디아노는 앙리4세고등학교의 기하학 교사이자 작가였던 레몽 크노의 결정적인 영향으로 18세 때 문학의 세계에 눈을 떴다. 이후 1968년 소설 ‘에투알 광장’으로 로제 니미에상, 페네옹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독자들은 인간 존재와 생의 근원을 탐구하는 그의 작품에 열광했다.
모디아노는 ‘외곽 순환도로’로 1972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 ‘슬픈 빌라’로 1975년 리브레리상, 1978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이후 발표한 ‘잃어버린 거리’ ‘8월의 일요일들’ ‘도라 브루더’ ‘신원 미상 여자’ ‘작은 보석’ ‘한밤의 사고’ ‘혈통’ 등도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모디아노의 작품은 기억, 망각, 정체성, 죄책감 등을 주된 주제로 삼고 있다. 파리는 자주 그의 작품에 현재형으로 등장하며 작품의 창의적인 구성요소로 기여한다. 또한 그의 자전적 이야기나 나치 점령기에 일어난 일을 기초로 작품이 전개된다. 인터뷰나 신문 기사, 몇 년씩 모아둔 메모도 그에겐 중요한 작품 소재다.
그의 작품들은 초기작 속 에피소드가 후속 작품에서 확장되거나 같은 사람이 다른 작품에 되살아나는 등 서로 친연성을 갖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작가의 고향이나 개인사가 이들을 연결하는 고리다. 가장 자전적 성격이 강한 작품은 2005년 발표한 ‘혈통’이다. 모디아노는 어린이책과 영화 대본도 썼다. 1974년에는 루이 말 감독과 함께 영화 ‘라콤 루시앙’을 제작하기도 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문학동네)는 현대 프랑스 문학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모디아노의 대표작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퇴역 탐정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여정을 그렸다. 주인공 롤랑은 다른 인물의 뒤를 밟듯 낯선 자신의 과거를 추적한다. 탐정소설의 구조를 이용해 자신의 과거를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2차 세계대전의 참화와 그로 인한 인간의 아픔과 마주한다. 전쟁 중 태어나 과거를 상실한 세대로 자란 모디아노는 ‘기억 상실’로 표현되는 프랑스 현대사의 한 단면을 바라보며 인간 존재의 ‘소멸된 자아 찾기’라는 보편적인 주제까지 다뤘다.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교수는 “모디아노는 2차 세계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소설을 많이 썼지만 그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 인간 존재의 모호한 출발점과 생의 근원을 끊임없이 모색해왔다”고 평가했다.
김윤진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출판본부장은 모디아노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와 닮았다고 했다. 김 본부장은 “프루스트가 기억을 통한 삶의 재생, 재해석에 초점을 맞췄다면 모디아노는 파편적인 우리의 기억이 과연 논리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우리 삶은 그렇게 합리적인 것일까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계속 되물었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내적인 논리를 실제적인 삶과 연관시켜 끊임없이 비판하고 반성했다는 얘기다.
국내 번역 출간된 작품으로는 소설《어두운 상점들의 거리》《한밤의 사고》《도라 브루더》《혈통》(문학동네)과 청소년 소설《우리 아빠는 엉뚱해 》(별천지) 등이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