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다문화가정 하나로 묶는 가족사진은 선물이자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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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삼성맨의 '인생 2막'
가족사진 찍어주는 할아버지,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
가족사진 찍어주는 할아버지,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
사회봉사단 사장 등 경험 살려
10억원 사재 출연해 재단 설립
다문화가정에 가족사진 봉사
지금은 아마추어 사진작가
가족들 사진촬영 준비 과정서
평소 안하던 소통하며 한마음 돼
직접 찍은 사진 내달 2000건 돌파
다문화가정 적극 포용해야
사회 적응 못하는 중도입국자 많아
이들에 대한 교육과 직업 연결돼야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의 별명은 ‘가족사진 찍어주는 할아버지’다. 재단 설립 후 다문화가정 가족사진을 직접 찍은 게 다음달 무려 2000건을 돌파한다. 올해 15번째 출사(出寫), 11월8일 토요일 서울 금천구에서다. 기념으로 작은 이벤트도 마련할 계획이다. 한 이사장은 “평생 남는 가족사진 자체도 중요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문화가족들이 평소 안 하던 소통을 하면서 하나가 된다”며 “사진이 주는 선물이자 마술”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에서 37년을 일한 그는 2009년 사재 10억원 이상을 들여 인클로버재단을 세웠다. 2004년 삼성문화재단 총괄사장 때부터 다닌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시골 노총각 외국 처녀에게 장가 보내기가 유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차원을 넘어서 국제결혼, 다문화가정 추세를 보니 직관적으로 ‘아, 이거 나중에 큰일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부회장, 삼성사회봉사단 사장 등 봉사 관련 경험을 ‘제대로 살려’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한 이사장. 서울 신천동 재단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와 현 사회에 관한 단상을 들어봤다.
줄줄이 6남매 두고 ‘폭소’
그는 올해 2월8일 강원 평창군 문화복지센터를 시작으로 지난달 13일 서울 은평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13번째 사진봉사를 했다. 한 번 봉사를 할 땐 한 이사장, 재단 상근직원, 자원봉사자 등 총 15명 정도가 움직인다. 메이크업, 포토샵, 촬영보조, 액자 제작 담당 등 역할이 제각각이다. 하루 봉사 때 상대하는 가구 수는 약 30가구. 지원자 모집 담당이 사전에 조율해 30여가구를 한 장소(주로 지역복지센터)로 모이게 한다. “애들 우는 거 달래고 하다보면 그렇게 빨리 못 찍어요. 한 시간에 여덟 가구 정도.”
그는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사진 두 장을 보여줬다. 먼저 한국 남성-러시아 여성 가족사진. “공짜로 큰 가족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면 그때부터 얘기가 오가는 거예요. 언제 찍을지, 뭘 입을지. 그렇게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사진을 찍는다는 목표에 함께 집중하는 게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줍니다. 보통 가정들도 번듯한 가족사진 액자가 많이 없잖아요.”
또 하나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는 연신 웃음을 쏟아냈다.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이 결혼해 낳은 6남매 사진이다. “열두 살, 열 살, 여덟 살, 여섯 살, 네 살, 두 살. 엄마 나이가 36세였는데 이건 사실 매년 낳은 거죠. 낳고 임신하고 낳고 임신하고. 그런데 막상 보니 정말 좋은 겁니다. 중절과 이혼을 금지하는 통일교 기반 다문화가정이 보통 자녀가 이렇게 많아요.” 한 이사장은 삼성문화재단 사장 재직 시절인 2006년 ‘SERI CEO’ 소그룹 활동(포토 그룹)을 하면서 사진작가 조세현 씨로부터 직접 사진 찍는 법을 배웠다. 그 전까지는 디지털카메라로 ‘똑딱’거리는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아마추어 사진작가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서울 청담동 원화랑에서 개인전도 열었다. 한 이사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진 봉사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잔뼈 굵은 삼성맨
1974년 1월 제일합섬 입사를 시작으로 ‘삼성맨’ 생활을 시작한 그는 젊었을 때 그룹 비서실에서 주로 일했다. 1980년대에는 이병철 선대회장을 모시다 1987년 이건희 회장 취임 후 ‘신경영’ 추진에 발맞췄다. 1988년 그가 삼성전자 수원공장 관리담당 이사로 있을 때다. 이건희 회장이 수원으로 내려와 ‘앞으로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니 철저하게 준비하라’고 지시하며 온 공장을 뒤집어놨다. “그땐 전자공학 박사들도 ‘디지털 시대’란 개념에 대해 정확히 맥을 못 짚을 때였어요. 무슨 말인지는 알지만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몰랐던 거죠. 팀도 처음부터 다시 꾸리고 외국 대학 박사급 인재를 사장 연봉 이상 주고 모셔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예요. 윤종용 전 부회장의 ‘디지털 TV’ 신화의 씨가 뿌려진 겁니다.”
아날로그 도면 위주의 디자인 체제도 이 회장의 불호령 이후 캐드(CAD), 캠(CAM)으로 급속히 전환됐다. “캐드 캠 사용법이 영 낯설어 구석에 박혀서 옛날 도면 보고 끙끙대다 걸리면 망신당하고. 에피소드가 참 많습니다.” 비서실 감사팀장을 맡고 있던 1993년 이 회장의 신경영 선포 전후로는 로스앤젤레스(LA), 도쿄, 프랑크푸르트 등을 쉴 새 없이 오가며 집에 거의 못 들어갔다고 했다.
다문화가정 배려는 필수
그는 “다문화 정책은 필수, 필연적이지만 현재 ‘계륵’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총론에는 찬성하면서도 막상 각론에 들어서면 거부감을 느껴요. 눈 파랗고 피부색 다른 친구 손잡고 집에 오면 ‘왜 그런 애하고 어울리느냐’며 호통치는 부모가 은근히 많습니다. 지금은 또 정부 부처마다 관여하면서 중구난방이 돼 아주 골치 아파요. 돈 끌어와 행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교육과 직업이 연결돼야 합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다문화가정 아이들 80%가량이 학교를 다니다가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재학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요.”
한 이사장이 말한 문제 중 하나는 ‘중도입국자’다. 외국 여성 A가 전 배우자 사이에 둔 자녀를 데리고 한국 남성 B와 결혼해 입적시키면 중도입국자다. 이들 자녀는 한국말과 문화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생활하다 낙오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2012년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도입국자는 4288명.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악덕 소개 업체들이 문제죠. 처녀라고 중개해줘 결혼했는데 나중에 보니 애가 딸린 경우도 많고. 아무튼 중도입국자 자녀들은 학교를 못 다녀요. 성실한 사람은 나중에 육체노동이라도 하겠지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범죄로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두고 보세요. 10~20년 지나면 확 바뀝니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나중에 어두운 길에서 험한 꼴 당할 때 놀라지 말고 이들을 우리 국민으로서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기업인들 氣 더 살려야
한 이사장은 한 달에 두 번 토요일에 초·중·고교생 40여명을 대상으로 서울 모처에서 사진촬영 강좌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건전한 취미생활 습관을 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진을 찍어준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종종 참여한다. 삼성전자로부터 카메라를 대여받아 교육에 활용하고,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에게는 추가적인 교육비를 지원한다.
다문화가정 이야기를 하다가 대화 주제가 ‘국적’으로 넘어갔다. 그는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반기업인 정서’를 경계했다. “(한국) 국적 취득자보다 이탈자가 더 많습니다. 주로 미국 캐나다 일본 등 투자이민을 받는 선진국으로 가요. 심각하게 봐야 합니다. 저출산 고령화에 국적 이탈자까지.” 법무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적 이탈자는 2만90명으로 취득자 1만3956명보다 많다.
“최근에 모방송에서 기업인 국적 이탈 현황을 보여주던데, 물론 잘못한 건 지적해야죠. 그런데 그들이 한국을 위해 얼마나 고용과 부를 창출했는지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다른 나라들은 투자를 유치하지 못해서 난리인데 오히려 내쫓아서야 되겠습니까. 노사갈등에 회사 접고 떠나는 분도 많습니다. 왜 국적을 포기하는지 등 이유를 찾아 불합리한 점은 개선하고, 기업인들 기를 더 살려야죠.”
■ 다문화가정 전국 26만가구…70%가 月소득 300만원 이하
여성가족부의 2012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3년마다 진행)에 따르면 전국에는 다문화가족이 26만6547가구, 만 9~24세 자녀 6만6536명이 있다. 1만5341가구를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진행한 결과 월평균 가구소득은 300만원 미만이 73.3%로 나타났다. 200만원 이하 가구 비율은 2009년 59.7%에서 2012년 41.9%로 줄었다. 그러나 전체 결혼이민자 중 단순노무직 비율은 2009년 22.8%에 비해 5.8%포인트 증가한 28.6%였다. 캐나다 등 고소득층 다문화가구 증가에 따라 전체 소득수준은 다소 높아졌으나 전반적인 일자리의 질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등에 따르면 2008~2012년 5년간 한국 국적 이탈자 10만5788명 중 87.3%가량인 9만2381명이 미국, 일본, 캐나다를 선택했다. 반면 지난해 국적 취득자 1만3956명 중에는 중국 출신이 5401명(38.7%)으로 가장 많았고 베트남 출신이 4034명으로 뒤를 이었다. 2012년 여가부 조사에 따르면 중국 출신 결혼이민자·귀화자의 단순노무직 비율은 30.3%, 베트남 출신은 35.7%에 달한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기초생활보장과 의료보호 지원율은 2009년 각각 8.3%, 7.7%에서 2012년 4.9%, 5%로 낮아졌으나, 출신 지역 간 편차는 여전히 크다. 한용외 이사장은 저소득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을 거듭 부탁했다. “다산(多産) 다문화가정은 사실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장애를 갖고 있는 농촌 총각 한 명이 외국 여성과 결혼해 아이 셋을 낳는다고 칩시다. 제대로 된 경제생활을 못해 생활보호 대상자가 되면 그 재정적 부담이 앞으로 만만치 않아요. 아무튼 이들 자녀가 시한폭탄이 될지, 글로벌 인재로 커갈지는 우리 모두에 달려 있습니다.”
■ 한용외 이사장 약력
▷1947년 7월7일 출생
▷1967년 대구고 졸업
▷1974년 영남대 경영학과 졸업
▷1980년 삼성그룹 비서실 감사팀 과장
▷1995년 삼성문화재단 사회공헌총괄 전무
▷1997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부회장
▷2004년 삼성문화재단 사장
▷2007년 삼성사회봉사단 사장
▷2009년 대한장애인체육회 부회장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이사장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10억원 사재 출연해 재단 설립
다문화가정에 가족사진 봉사
지금은 아마추어 사진작가
가족들 사진촬영 준비 과정서
평소 안하던 소통하며 한마음 돼
직접 찍은 사진 내달 2000건 돌파
다문화가정 적극 포용해야
사회 적응 못하는 중도입국자 많아
이들에 대한 교육과 직업 연결돼야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의 별명은 ‘가족사진 찍어주는 할아버지’다. 재단 설립 후 다문화가정 가족사진을 직접 찍은 게 다음달 무려 2000건을 돌파한다. 올해 15번째 출사(出寫), 11월8일 토요일 서울 금천구에서다. 기념으로 작은 이벤트도 마련할 계획이다. 한 이사장은 “평생 남는 가족사진 자체도 중요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문화가족들이 평소 안 하던 소통을 하면서 하나가 된다”며 “사진이 주는 선물이자 마술”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에서 37년을 일한 그는 2009년 사재 10억원 이상을 들여 인클로버재단을 세웠다. 2004년 삼성문화재단 총괄사장 때부터 다닌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시골 노총각 외국 처녀에게 장가 보내기가 유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차원을 넘어서 국제결혼, 다문화가정 추세를 보니 직관적으로 ‘아, 이거 나중에 큰일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부회장, 삼성사회봉사단 사장 등 봉사 관련 경험을 ‘제대로 살려’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한 이사장. 서울 신천동 재단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와 현 사회에 관한 단상을 들어봤다.
줄줄이 6남매 두고 ‘폭소’
그는 올해 2월8일 강원 평창군 문화복지센터를 시작으로 지난달 13일 서울 은평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13번째 사진봉사를 했다. 한 번 봉사를 할 땐 한 이사장, 재단 상근직원, 자원봉사자 등 총 15명 정도가 움직인다. 메이크업, 포토샵, 촬영보조, 액자 제작 담당 등 역할이 제각각이다. 하루 봉사 때 상대하는 가구 수는 약 30가구. 지원자 모집 담당이 사전에 조율해 30여가구를 한 장소(주로 지역복지센터)로 모이게 한다. “애들 우는 거 달래고 하다보면 그렇게 빨리 못 찍어요. 한 시간에 여덟 가구 정도.”
그는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사진 두 장을 보여줬다. 먼저 한국 남성-러시아 여성 가족사진. “공짜로 큰 가족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면 그때부터 얘기가 오가는 거예요. 언제 찍을지, 뭘 입을지. 그렇게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사진을 찍는다는 목표에 함께 집중하는 게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줍니다. 보통 가정들도 번듯한 가족사진 액자가 많이 없잖아요.”
또 하나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는 연신 웃음을 쏟아냈다.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이 결혼해 낳은 6남매 사진이다. “열두 살, 열 살, 여덟 살, 여섯 살, 네 살, 두 살. 엄마 나이가 36세였는데 이건 사실 매년 낳은 거죠. 낳고 임신하고 낳고 임신하고. 그런데 막상 보니 정말 좋은 겁니다. 중절과 이혼을 금지하는 통일교 기반 다문화가정이 보통 자녀가 이렇게 많아요.” 한 이사장은 삼성문화재단 사장 재직 시절인 2006년 ‘SERI CEO’ 소그룹 활동(포토 그룹)을 하면서 사진작가 조세현 씨로부터 직접 사진 찍는 법을 배웠다. 그 전까지는 디지털카메라로 ‘똑딱’거리는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아마추어 사진작가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서울 청담동 원화랑에서 개인전도 열었다. 한 이사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진 봉사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잔뼈 굵은 삼성맨
1974년 1월 제일합섬 입사를 시작으로 ‘삼성맨’ 생활을 시작한 그는 젊었을 때 그룹 비서실에서 주로 일했다. 1980년대에는 이병철 선대회장을 모시다 1987년 이건희 회장 취임 후 ‘신경영’ 추진에 발맞췄다. 1988년 그가 삼성전자 수원공장 관리담당 이사로 있을 때다. 이건희 회장이 수원으로 내려와 ‘앞으로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니 철저하게 준비하라’고 지시하며 온 공장을 뒤집어놨다. “그땐 전자공학 박사들도 ‘디지털 시대’란 개념에 대해 정확히 맥을 못 짚을 때였어요. 무슨 말인지는 알지만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몰랐던 거죠. 팀도 처음부터 다시 꾸리고 외국 대학 박사급 인재를 사장 연봉 이상 주고 모셔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예요. 윤종용 전 부회장의 ‘디지털 TV’ 신화의 씨가 뿌려진 겁니다.”
아날로그 도면 위주의 디자인 체제도 이 회장의 불호령 이후 캐드(CAD), 캠(CAM)으로 급속히 전환됐다. “캐드 캠 사용법이 영 낯설어 구석에 박혀서 옛날 도면 보고 끙끙대다 걸리면 망신당하고. 에피소드가 참 많습니다.” 비서실 감사팀장을 맡고 있던 1993년 이 회장의 신경영 선포 전후로는 로스앤젤레스(LA), 도쿄, 프랑크푸르트 등을 쉴 새 없이 오가며 집에 거의 못 들어갔다고 했다.
다문화가정 배려는 필수
그는 “다문화 정책은 필수, 필연적이지만 현재 ‘계륵’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총론에는 찬성하면서도 막상 각론에 들어서면 거부감을 느껴요. 눈 파랗고 피부색 다른 친구 손잡고 집에 오면 ‘왜 그런 애하고 어울리느냐’며 호통치는 부모가 은근히 많습니다. 지금은 또 정부 부처마다 관여하면서 중구난방이 돼 아주 골치 아파요. 돈 끌어와 행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교육과 직업이 연결돼야 합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다문화가정 아이들 80%가량이 학교를 다니다가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재학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요.”
한 이사장이 말한 문제 중 하나는 ‘중도입국자’다. 외국 여성 A가 전 배우자 사이에 둔 자녀를 데리고 한국 남성 B와 결혼해 입적시키면 중도입국자다. 이들 자녀는 한국말과 문화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생활하다 낙오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2012년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도입국자는 4288명.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악덕 소개 업체들이 문제죠. 처녀라고 중개해줘 결혼했는데 나중에 보니 애가 딸린 경우도 많고. 아무튼 중도입국자 자녀들은 학교를 못 다녀요. 성실한 사람은 나중에 육체노동이라도 하겠지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범죄로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두고 보세요. 10~20년 지나면 확 바뀝니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나중에 어두운 길에서 험한 꼴 당할 때 놀라지 말고 이들을 우리 국민으로서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기업인들 氣 더 살려야
한 이사장은 한 달에 두 번 토요일에 초·중·고교생 40여명을 대상으로 서울 모처에서 사진촬영 강좌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건전한 취미생활 습관을 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진을 찍어준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종종 참여한다. 삼성전자로부터 카메라를 대여받아 교육에 활용하고,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에게는 추가적인 교육비를 지원한다.
다문화가정 이야기를 하다가 대화 주제가 ‘국적’으로 넘어갔다. 그는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반기업인 정서’를 경계했다. “(한국) 국적 취득자보다 이탈자가 더 많습니다. 주로 미국 캐나다 일본 등 투자이민을 받는 선진국으로 가요. 심각하게 봐야 합니다. 저출산 고령화에 국적 이탈자까지.” 법무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적 이탈자는 2만90명으로 취득자 1만3956명보다 많다.
“최근에 모방송에서 기업인 국적 이탈 현황을 보여주던데, 물론 잘못한 건 지적해야죠. 그런데 그들이 한국을 위해 얼마나 고용과 부를 창출했는지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다른 나라들은 투자를 유치하지 못해서 난리인데 오히려 내쫓아서야 되겠습니까. 노사갈등에 회사 접고 떠나는 분도 많습니다. 왜 국적을 포기하는지 등 이유를 찾아 불합리한 점은 개선하고, 기업인들 기를 더 살려야죠.”
■ 다문화가정 전국 26만가구…70%가 月소득 300만원 이하
여성가족부의 2012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3년마다 진행)에 따르면 전국에는 다문화가족이 26만6547가구, 만 9~24세 자녀 6만6536명이 있다. 1만5341가구를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진행한 결과 월평균 가구소득은 300만원 미만이 73.3%로 나타났다. 200만원 이하 가구 비율은 2009년 59.7%에서 2012년 41.9%로 줄었다. 그러나 전체 결혼이민자 중 단순노무직 비율은 2009년 22.8%에 비해 5.8%포인트 증가한 28.6%였다. 캐나다 등 고소득층 다문화가구 증가에 따라 전체 소득수준은 다소 높아졌으나 전반적인 일자리의 질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등에 따르면 2008~2012년 5년간 한국 국적 이탈자 10만5788명 중 87.3%가량인 9만2381명이 미국, 일본, 캐나다를 선택했다. 반면 지난해 국적 취득자 1만3956명 중에는 중국 출신이 5401명(38.7%)으로 가장 많았고 베트남 출신이 4034명으로 뒤를 이었다. 2012년 여가부 조사에 따르면 중국 출신 결혼이민자·귀화자의 단순노무직 비율은 30.3%, 베트남 출신은 35.7%에 달한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기초생활보장과 의료보호 지원율은 2009년 각각 8.3%, 7.7%에서 2012년 4.9%, 5%로 낮아졌으나, 출신 지역 간 편차는 여전히 크다. 한용외 이사장은 저소득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을 거듭 부탁했다. “다산(多産) 다문화가정은 사실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장애를 갖고 있는 농촌 총각 한 명이 외국 여성과 결혼해 아이 셋을 낳는다고 칩시다. 제대로 된 경제생활을 못해 생활보호 대상자가 되면 그 재정적 부담이 앞으로 만만치 않아요. 아무튼 이들 자녀가 시한폭탄이 될지, 글로벌 인재로 커갈지는 우리 모두에 달려 있습니다.”
■ 한용외 이사장 약력
▷1947년 7월7일 출생
▷1967년 대구고 졸업
▷1974년 영남대 경영학과 졸업
▷1980년 삼성그룹 비서실 감사팀 과장
▷1995년 삼성문화재단 사회공헌총괄 전무
▷1997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부회장
▷2004년 삼성문화재단 사장
▷2007년 삼성사회봉사단 사장
▷2009년 대한장애인체육회 부회장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이사장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