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녹슨 전차' 되나…FT, 제조업 곤두박질 4大 요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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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긴축' 고집한 獨, 인프라 투자 외면…'물류天國' 명성 옛말
(2) 그린에너지 딜레마…유럽서 에너지값 가장 비싸
(3) 뒤처진 디지털 혁신…IT투자, 美의 6분의 1 수준
(4) 저출산의 늪…노동가능인구 감소로 숙련공 부족
(2) 그린에너지 딜레마…유럽서 에너지값 가장 비싸
(3) 뒤처진 디지털 혁신…IT투자, 美의 6분의 1 수준
(4) 저출산의 늪…노동가능인구 감소로 숙련공 부족
‘유럽의 성장 엔진’ 독일이 삐걱대고 있다.
독일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수출과 산업생산은 지난 8월 약 5년래 최악으로 떨어졌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15개월래 최저다. 실물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독일 내 유력 경제기관 다섯 곳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0.0%, 0.1%로 하향 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독일발 세계 경제침체 위험까지 경고하고 나서면서 지난주 글로벌 금융시장은 후폭풍에 시달렸다. 전문가들은 독일 경기 둔화의 원인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러시아 수출 감소, 중국 성장 둔화 등 외부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독일 기업인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독일 경제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제조업 강국’으로 군림하면서 자만심에 사로잡혀 정작 내부 문제를 외면해 왔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정부가 낮은 실업률과 성장률 등 숫자에 집착하면서 정작 친(親)기업 정책, 성장 주도 전략 등은 내놓지 않았다”며 “독일식 경제모델을 수정해야 할 때”라고 평가했다. 독일을 ‘녹슨 전차’로 만들고 있는 4대 문제점을 정리했다.
○긴축의 그늘…교통 등 인프라 엉망
독일 산업계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재정위기 이후 정부가 ‘긴축’을 고집하면서 교통 등 인프라 투자가 급감했고, 이로 인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정부는 1990년대 초까지 한 해 140억유로에 달하는 예산을 교통 인프라 구축에 썼으나 현재는 연 70억유로대로 줄였다. 정부의 인프라 투자 규모를 보여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고정자본형성 투자비율은 지난해 1.5%대로 이탈리아(1.8%), 영국(2%), 프랑스와 일본(3.2%), 미국(3.5%), 폴란드(3.9%)에 크게 뒤진다. IMF는 올 들어 독일 정부에 앞으로 4년간 500억유로(약 69조4000억원)를 도로, 다리 등 교통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라고 권고했다. 이는 독일 GDP 대비 인프라 투자비율을 0.5%포인트 높이는 것으로 앙겔라 메르켈 정부가 당초 계획한 50억유로의 열 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린에너지 딜레마
독일은 유럽에서 에너지 비용이 가장 비싸다. 메가와트(㎿h)당 48유로 수준으로 2020년에는 61유로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미국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다. 전기요금도 경쟁력이 약하다. 독일 산업용 전기요금은 킬로와트(㎾h)당 90유로인 현 수준에서 2020년 최고 110유로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절반인 54유로 정도다. 지그마르 가브리엘 독일 에너지부 장관은 “재생가능 에너지 추진으로 비싸진 전기요금 때문에 독일인은 연 240억유로를 추가 지출하고 있다”며 “산업공동화 현상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독일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발전 전면 폐쇄를 선언했다. 발전소의 절반가량은 운행이 즉시 중단됐고, 나머지는 2022년까지 문을 닫는다. 2000년부터 재생가능 에너지정책을 강력 추진해온 독일 정부는 2025년까지 독일 전체 전력 중 40%를 풍력, 태양광, 파력으로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은 높은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전체 전력 소비의 25%를 차지하던 원자력을 포기하면서 석탄 사용이 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급증세다. 메르켈 정부가 ‘에너지 딜레마’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뒤처진 혁신과 저출산의 늪
최근 독일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것은 정보기술(IT) 분야다. 세계 경제가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IT·서비스업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데도 독일은 디지털 혁신에서 뒤처졌다. 자동차를 만드는 건 독일이지만 무인 운전 기술은 모두 미국에서 수입하는 실정이다.
정부의 IT인프라 투자도 미미하다. 무선 브로드밴드 가입률은 2013년 말 기준 체코공화국, 폴란드, 슬로바키아보다도 낮다. 브로드밴드 가입자 중 광대역 이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7%보다 낮은 1.7% 수준이다. 미국의 IT 투자 규모가 연간 6500억달러에 육박한 반면 독일은 1000억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디지털과 에너지부문에서의 투자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유럽 내 출산율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독일은 숙련공 부족에 직면했다. 독일 내 65세 이상 인구는 현재 전체 인구의 21%로 일본과 맞먹는다. 2030년까지 노동가능인구는 지금보다 10% 이상 감소해 3900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자동차부품회사인 보쉬의 로베르트 한스 경영지원 이사는 “기술 전수가 필수인 독일 산업구조에서 노동인구 감소는 최대 위협”이라며 “폐쇄적인 이민정책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독일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수출과 산업생산은 지난 8월 약 5년래 최악으로 떨어졌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15개월래 최저다. 실물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독일 내 유력 경제기관 다섯 곳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0.0%, 0.1%로 하향 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독일발 세계 경제침체 위험까지 경고하고 나서면서 지난주 글로벌 금융시장은 후폭풍에 시달렸다. 전문가들은 독일 경기 둔화의 원인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러시아 수출 감소, 중국 성장 둔화 등 외부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독일 기업인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독일 경제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제조업 강국’으로 군림하면서 자만심에 사로잡혀 정작 내부 문제를 외면해 왔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정부가 낮은 실업률과 성장률 등 숫자에 집착하면서 정작 친(親)기업 정책, 성장 주도 전략 등은 내놓지 않았다”며 “독일식 경제모델을 수정해야 할 때”라고 평가했다. 독일을 ‘녹슨 전차’로 만들고 있는 4대 문제점을 정리했다.
○긴축의 그늘…교통 등 인프라 엉망
독일 산업계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재정위기 이후 정부가 ‘긴축’을 고집하면서 교통 등 인프라 투자가 급감했고, 이로 인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정부는 1990년대 초까지 한 해 140억유로에 달하는 예산을 교통 인프라 구축에 썼으나 현재는 연 70억유로대로 줄였다. 정부의 인프라 투자 규모를 보여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고정자본형성 투자비율은 지난해 1.5%대로 이탈리아(1.8%), 영국(2%), 프랑스와 일본(3.2%), 미국(3.5%), 폴란드(3.9%)에 크게 뒤진다. IMF는 올 들어 독일 정부에 앞으로 4년간 500억유로(약 69조4000억원)를 도로, 다리 등 교통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라고 권고했다. 이는 독일 GDP 대비 인프라 투자비율을 0.5%포인트 높이는 것으로 앙겔라 메르켈 정부가 당초 계획한 50억유로의 열 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린에너지 딜레마
독일은 유럽에서 에너지 비용이 가장 비싸다. 메가와트(㎿h)당 48유로 수준으로 2020년에는 61유로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미국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다. 전기요금도 경쟁력이 약하다. 독일 산업용 전기요금은 킬로와트(㎾h)당 90유로인 현 수준에서 2020년 최고 110유로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절반인 54유로 정도다. 지그마르 가브리엘 독일 에너지부 장관은 “재생가능 에너지 추진으로 비싸진 전기요금 때문에 독일인은 연 240억유로를 추가 지출하고 있다”며 “산업공동화 현상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독일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발전 전면 폐쇄를 선언했다. 발전소의 절반가량은 운행이 즉시 중단됐고, 나머지는 2022년까지 문을 닫는다. 2000년부터 재생가능 에너지정책을 강력 추진해온 독일 정부는 2025년까지 독일 전체 전력 중 40%를 풍력, 태양광, 파력으로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은 높은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전체 전력 소비의 25%를 차지하던 원자력을 포기하면서 석탄 사용이 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급증세다. 메르켈 정부가 ‘에너지 딜레마’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뒤처진 혁신과 저출산의 늪
최근 독일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것은 정보기술(IT) 분야다. 세계 경제가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IT·서비스업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데도 독일은 디지털 혁신에서 뒤처졌다. 자동차를 만드는 건 독일이지만 무인 운전 기술은 모두 미국에서 수입하는 실정이다.
정부의 IT인프라 투자도 미미하다. 무선 브로드밴드 가입률은 2013년 말 기준 체코공화국, 폴란드, 슬로바키아보다도 낮다. 브로드밴드 가입자 중 광대역 이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7%보다 낮은 1.7% 수준이다. 미국의 IT 투자 규모가 연간 6500억달러에 육박한 반면 독일은 1000억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디지털과 에너지부문에서의 투자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유럽 내 출산율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독일은 숙련공 부족에 직면했다. 독일 내 65세 이상 인구는 현재 전체 인구의 21%로 일본과 맞먹는다. 2030년까지 노동가능인구는 지금보다 10% 이상 감소해 3900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자동차부품회사인 보쉬의 로베르트 한스 경영지원 이사는 “기술 전수가 필수인 독일 산업구조에서 노동인구 감소는 최대 위협”이라며 “폐쇄적인 이민정책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