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정현 씨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앞에 설치된 파쇄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인선 기자
조각가 정현 씨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앞에 설치된 파쇄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인선 기자
서울 소격동에 있는 학고재갤러리 앞에는 육중한 쇳덩이가 두 개 놓여 있다. 홍익대 조각과 교수이자 조각가인 정현(58)의 작품 파쇄공이다. 이 파쇄공은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왔다. 제철소에서는 무게가 16t쯤 나가는 쇳덩어리 파쇄공을 이용해 쇠를 깬다. 자석으로 25m까지 들어 올린 다음 떨어뜨려 아래에 놓인 쇠 찌꺼기를 용광로에 넣을 만한 크기로 깨뜨리는 식이다.

파쇄공의 몸은 닳는다. 한 번, 두 번, 수십 번, 수백 번 땅으로 떨어질 때마다 뭉개지고 패이고 눌린다. 10년쯤 지나면 파쇄공의 무게는 8t으로 줄어든다. 거죽에는 그간의 고난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정씨는 5년 전 포항제철소에서 파쇄공을 처음 보고 작품을 구상했다. 최근 학고재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파쇄공을 보며 ‘잘 겪은 시련은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다’”며 “파쇄공이 닳는 과정에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시련과 견딤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5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학고재갤러리 본관에서 정씨의 17번째 개인전이 열린다. 파쇄공을 포함해 조각 7점과 드로잉 70점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의 주는 작가의 응축된 감정을 풀어낸 드로잉이다. 그에게 드로잉은 한 해 동안 500여장을 그릴 만큼 중요한 작업이다. 소설가가 생각과 감정을 일기장에 기록하듯 그는 솟구치는 감정을 캔버스 위에 풀어냈다. 이번 전시에는 그중 신작 70점을 추렸다. 그는 “드로잉은 모든 작업의 기초이자 내 생명력을 드러내는 수단”이라며 “내 신경선을 툭 화폭에 던지다보면 내 몸의 다양한 것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날은 드로잉 하나만 그리고 기운이 소진된 적도 있다”고 했다.

정씨의 드로잉 작품에는 나무, 풀, 사람 등이 담겼다. 형상보다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그림의 기운이다. 단순해 보이는 작업 속에 원시적인 에너지가 가득하다. (02)720-1524~6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