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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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상교육·무상급식·무상보육, 복지예산 100조의 대가는…저성장 늪에 빠진 경제
2015년도 우리나라 예산액은 376조원이다. 이 중 복지 예산이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었다. 전체 예산의 3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인기에 편승해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공짜 공약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결과다. 이런 경향성은 대개 나라 살림살이가 거덜날 정도가 되어서야 멈춘다. 공짜 공약에 관한 한 정치인은 동업자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복지에 들어가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투자와 생산성, 경제성장은 떨어진다는 게 역사다.
복지예산 급증
예산이 매년 급증하는 추세를 보인다. 투자가 늘어서 예산이 증가한 형태가 아니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선심 공약으로 쓰고 보자는 돈이 늘어난 게 원인이다. 이런 돈은 아무리 써도 표도 안 난다. 생산성을 높이거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쓰임새가 아니다. 최근 예산을 보자. 우리나라 예산은 2008년 238조8000억원(통합재정 지출기준)이었다. 2009년 274조4000억원, 2010년 293조원, 2011년 309조원, 2012년 325조4000억원, 2013년 342조원, 2014년 357조원으로 급증했다. 2011년 300조원이 넘은 지 4년 만인 2015년 예산이 376조원이다. 복지 예산이 급증한 게 원인이다. 복지 예산은 어딘가에 쓰여야 할 돈을 끌어다 쓰는 돈이다. 저소득층을 돕거나 고령인구를 지원하는 예산은 늘어날 수 있으나 보편적 복지로 인해 과다하게 예산이 소요된다는 게 문제다.
고교 무상교육
최근 등장하고 있는 것이 고교 무상교육이다. 이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한 것이다. 내년 교육 예산은 55조 1322억원 규모다. 이 예산은 고교 무상교육이 반영되지 않는 액수다. 대통령 공약을 지키기 위해 교육부는 기획재정부에 2420억원의 예산편성을 요구했지만 반영되진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교 무상교육까지 하려면 연간 2조1498억원이 필요하다. 고교 무상교육은 정부가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 값 등을 부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내년부터 섬지역 등에서 우선적으로 실시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이것도 예산 부족으로 시행치 못하고 있다.
무상 급식
지난해 53조원의 교육 예산이 유·초·중·고교에 투입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교는 점점 낙후되고 있다. 부모의 소득에 관계없이 전 계층을 지원하는 무상복지에 예산이 소요된 결과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20년된 기계로 실습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노후화된 건물은 방치되다시피 했다. 원어민 언어교육도 철수한 지 오래다. 이런 곳에 쓰여야 할 돈이 모두 공짜 점심 예산으로 쓰인 결과다.
원래 교육 예산의 60%는 인건비에 들어간다. 인건비라 함은 교사임금 등을 말한다. 기본학교 운영비도 다 합해 10조원 든다. 41조원가량이 이렇게 쓰인다. 여기에다 올해의 경우 무상급식으로 전체 교육예산의 5%를 상회하는 2조6329억원을 쓴다. 한 분석에 따르면 이 정도의 예산이면 교사 8만명을 신규로 뽑아 쓸 수 있다. 학교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데, 그 돈을 아이들이 잘 먹지도 않는 무상급식에 허비하는 게 현실이다.
학교 현장에서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많다. 무상급식이 예산을 다 집어삼키는 바람에 학교시설 보수와 같은 시급한 현안이 뒤도 밀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무상급식으로 버려지는 잔반을 처리해야 하는 비용마저 수백억원대에 이른다.
무상 보육
‘5세 아이 무상교육’는 2000년도부터 논의된 이슈였다. 2012년부터 전체 5세 아이에게 무상교육을 하겠다는 결정은 재정적으로 견딜만 했다. 만 5세는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연령이어서 유치원 1년 의무교육은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2013년부터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려 대상폭이 만 3~4세까지로 확대됐다. 이른바 ‘누리과정’이다.표를 얻는 데 좋으니까 한꺼번에 연령대를 늘려버렸다. 유권자들은 좋아했다. 예산은 생각도 안 한 듯했다. 이런 탓에 누리과정과 무상급식 예산이 2011년 2조2024억원에서 작년 4조8744억원으로 121%나 급증했다. 저소득층에 집중적으로 돌아가야 할 복지 예산이 보편 복지로 인해 저소득층조차 순번에서 밀리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기초연금
기초연금은 많은 논란 끝에 당초 계획보다 약간 수정돼 지난 7월부터 지급되고 있다. 만 65세 어르신들이 대상이다. 8월 현재 대상자는 약 420만명. 92.4%인 388만명(단독가구 20만원, 부부가구는 32만원)이 기초연금 전액을 수령했다. 나머지 32만명은 단독가구 최소 2만원, 부부가구 4만원을 받았다. 자녀와 본인 소득 등을 감안하지 않은 채 당초 공약대로 시행했다면 예산은 태부족이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대통령 공약대로 시행될 경우 예산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공짜 복지는 줄지어 있다.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등이 그것이다. 공짜가 국가 재정을 망가뜨리기는 시간문제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 땅 파고 묻는 일 반복하게 하고 돈을 준다면?
어떤 정부가 있다. 이 정부를 이끄는 사람은 매우 착해서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려 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책을 꺼냈다. 그냥 나랏돈을 줄 수 없으니 일자리가 없는 사람을 모두 불러냈다. 정부가 시킨 일은 공터의 땅을 파고 묻는 일을 계속하게 한 것. 아침에 공터로 나온 실업자들은 땅을 팠다가 다시 묻는 일을 반복했다. 해질 무렵 임금을 받아갔다. 이들은 다 써버린다. 다음 날도 반복했다. 그러자 이들보다 조금 더 벌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버리고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렇게 쉬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나 싶어서”였다. 정부가 임금을 지급해야 할 사람이 늘었다.
이들은 사실 아무런 생산을 하지 않은 사람이다. 생산성이라고는 제로다. 나라의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생산성의 증가를 의미한다. 같은 시간에 100원 벌던 것을 110원을 벌게 되면 성장한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세금이 는다. 국가는 늘어난 세금을 다양한 곳에 투자한다. 하지만 생산과 무관한 ‘땅파고 묻기’에 들어가는 돈이 늘어나면 당연히 세금도 줄어든다. 해가 거듭할수록 국가 경제는 쪼그라든다.
흔히 복지를 이런 땅파고 묻기에 비교하곤 한다. 저소득층, 노인층, 소년소녀 가장 등에 국가가 예산을 배정해 지원해주는 것은 옳다. 하지만 너도 나도 공짜로 예산을 받아 챙기게 되면 이런 꼴이 된다.
복지천국이던 유럽국가들이 복지정책을 줄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페이고(Pay-go) 원칙 준수…재원 확보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Pay-go, 처음 듣는 말이라고요? 이런 단어는 꼭 알아두세요.)
Pay-go(페이고)는 pay as you go에서 나온 표현이다. Pay as you go는 ‘현금으로 지급하다’ ‘번만큼 쓴다’는 뜻이다. 따라서 페이고 원칙은 재정을 지출해야 하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 재정여건에 맞춰 기존 사업의 지출을 줄이거나 재원대책을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이는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재정준칙의 하나다.
페이고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빠져 재정건전성을 해치는 무분별한 법안의 발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정책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긴급상황시 정책의 순발력이 둔해질 수 있다는 것은 페이고 원칙의 단점이다. 페이고 정책은 경기효과가 적은 일반 경직성 부문은 과감하게 예산을 삭감하고 대신 경기진작 효과가 큰 쪽에 투자를 몰아준다는 것이 기본 메커니즘이다. 대다수 선진국은 인기영합성 포퓰리즘 정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재정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이 원칙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페이고 원칙을 도입, 2010년 5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이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과다한 복지비용 지출로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곳곳에서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결과다. 미국은 1990년 재정 건전화를 위해 페이고 원칙을 도입했다가 2002년에 폐지했다. 하지만 재정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2010년 2월 관련 법안을 다시 부활시켰다.
■ 공짜점심의 부메랑, 위험 학교는 방치되고…공사는 멈춰서고
국가의 예산이 무상복지에 쏠리면서 곳곳에서 재정파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위기감은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풀뿌리 격인 기초단체에서 더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초 기초단체장들의 협의체인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가 ‘복지디폴트 위기’를 선언한 것은 이를 잘 반영한다. 무상보육, 무상급식, 기초노령연금 등 정부의 복지사업 집행 부담을 지고 나면 단체장들이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재정여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재정 적자를 걱정해야 하는 지자체도 허다하다. 재정파탄 우려가 높아지면서 전국에서 위험이 방치된 학교들이 늘어나고 중도에서 멈춰선 사업들도 즐비한 실정이다.
방치된 ‘어린이집 예산’
‘어린이집 예산’은 교육계의 재정부족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무상급식 등으로 재정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전국 시·도 교육감들은 2015년도 누리과정(유치원에서 만 3~5세 아이들을 가르치고 평가하는 교육과정) 예산 중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 예산을 편성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무상급식 등에 예산이 쏠리면서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할 여력이 없으니 중앙정부가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중앙정부 쪽에서는 ‘교육감들이 국민과 어린이를 볼모로 정부를 위협하는 격’이라며 무책임하다는 반응이다.
초·중·고교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무상복지에 학교가 멍들어 가고 있다. 모든 학생들에게 공짜로 점심을 나눠주는 데는 예산을 아낌없이 쓰면서도 정작 예산이 필요한 곳은 재정이 부족해 손을 못쓰고 있다. 특히 정부가 ‘고졸 취업 시대’를 열겠다며 지원 확대를 공약한 특성화고에 배정된 예산이 크게 줄고 있다. 원어민 강사 예산도 급감한 상태다.
특성화고인 경기도의 어느 학교는 학생들이 아예 사양이 좋은 노트북을 학교로 가지고 오거나 집에서 램을 가져와 학교 컴퓨터에 끼우고 수업을 받는다. 컴퓨터 자격에 필수인 컴퓨터 그래픽 수업을 받기엔 학교 컴퓨터의 사양이 너무 좋지 않은 탓이다.
무상급식·누리과정 등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을 지원하는 보편적 복지 예산이 늘어나면서 위험이 방치된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즉각 수리하거나 폐쇄해야 할 초·중·고 건물이 전국적으로 84개(2014년 9월1일 기준)에 달하지만 절반 이상이 보수 예산 부족으로 위험을 방치한 채 수업하고 있다.
마을 앞 하천이 범람해도…
보편적 복지에 재정부담이 커지면서 중간에 사업이 스톱된 곳들도 전국에 즐비하다. 돈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진행 중인 공사를 도중에 멈춘 탓이다. 저수지 둑 일부가 무너져 마을 앞 하천이 범람해도 예산부족으로 보수공사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방차가 들어가기조차 힘든 도로를 예산이 부족해 넓히지 못하는 지자체,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공무원 급여를 줄 방법이 막막한 지자체도 많다. 무상복지가 지방자치단체들에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재정파탄 위기감은 시·군·구 같은 기초자치단체가 상대적으로 더 심하다. 무상급식 등 복지예산 비중이 50~65%로 높은 데다 재정확보 여력은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노인과 저소득층이 많을수록 복지예산으로 인한 재정압박이 심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쓰레기 수거비조차 주지 못하는 기초지자체까지 늘어나는 실정이다.
핑퐁 치는 복지예산
총선·대선·지방자치단체 선거를 거치면서 무상복지는 핵심 이슈였다. 정치인들은 연일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노령기초연금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재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선진국=복지’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보편적 공지 공약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불과 1~2년 만에 공짜의 유혹은 재정고갈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곳곳에서 재정파탄 위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들은 중앙정부에 복지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하지만 재정부실을 우려하는 중앙정부 역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복지비용을 놓고 ‘떠넘기기 공방’을 벌이는 이유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100만원짜리 예산 편성을 놓고도 멱살잡이를 한다.
교육재정이 위기를 맞으면서 고교 무상교육을 연기하고 무상급식을 축소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고소득층 자녀까지 포함된 무상급식 재원을 저소득층으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정부가 교육재정의 현실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전문가도 많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공짜는 되돌리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공짜의 부메랑. 그래서 공짜는 출발이 중요하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2015년도 우리나라 예산액은 376조원이다. 이 중 복지 예산이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었다. 전체 예산의 3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인기에 편승해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공짜 공약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결과다. 이런 경향성은 대개 나라 살림살이가 거덜날 정도가 되어서야 멈춘다. 공짜 공약에 관한 한 정치인은 동업자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복지에 들어가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투자와 생산성, 경제성장은 떨어진다는 게 역사다.
복지예산 급증
예산이 매년 급증하는 추세를 보인다. 투자가 늘어서 예산이 증가한 형태가 아니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선심 공약으로 쓰고 보자는 돈이 늘어난 게 원인이다. 이런 돈은 아무리 써도 표도 안 난다. 생산성을 높이거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쓰임새가 아니다. 최근 예산을 보자. 우리나라 예산은 2008년 238조8000억원(통합재정 지출기준)이었다. 2009년 274조4000억원, 2010년 293조원, 2011년 309조원, 2012년 325조4000억원, 2013년 342조원, 2014년 357조원으로 급증했다. 2011년 300조원이 넘은 지 4년 만인 2015년 예산이 376조원이다. 복지 예산이 급증한 게 원인이다. 복지 예산은 어딘가에 쓰여야 할 돈을 끌어다 쓰는 돈이다. 저소득층을 돕거나 고령인구를 지원하는 예산은 늘어날 수 있으나 보편적 복지로 인해 과다하게 예산이 소요된다는 게 문제다.
고교 무상교육
최근 등장하고 있는 것이 고교 무상교육이다. 이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한 것이다. 내년 교육 예산은 55조 1322억원 규모다. 이 예산은 고교 무상교육이 반영되지 않는 액수다. 대통령 공약을 지키기 위해 교육부는 기획재정부에 2420억원의 예산편성을 요구했지만 반영되진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교 무상교육까지 하려면 연간 2조1498억원이 필요하다. 고교 무상교육은 정부가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 값 등을 부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내년부터 섬지역 등에서 우선적으로 실시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이것도 예산 부족으로 시행치 못하고 있다.
무상 급식
지난해 53조원의 교육 예산이 유·초·중·고교에 투입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교는 점점 낙후되고 있다. 부모의 소득에 관계없이 전 계층을 지원하는 무상복지에 예산이 소요된 결과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20년된 기계로 실습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노후화된 건물은 방치되다시피 했다. 원어민 언어교육도 철수한 지 오래다. 이런 곳에 쓰여야 할 돈이 모두 공짜 점심 예산으로 쓰인 결과다.
원래 교육 예산의 60%는 인건비에 들어간다. 인건비라 함은 교사임금 등을 말한다. 기본학교 운영비도 다 합해 10조원 든다. 41조원가량이 이렇게 쓰인다. 여기에다 올해의 경우 무상급식으로 전체 교육예산의 5%를 상회하는 2조6329억원을 쓴다. 한 분석에 따르면 이 정도의 예산이면 교사 8만명을 신규로 뽑아 쓸 수 있다. 학교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데, 그 돈을 아이들이 잘 먹지도 않는 무상급식에 허비하는 게 현실이다.
학교 현장에서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많다. 무상급식이 예산을 다 집어삼키는 바람에 학교시설 보수와 같은 시급한 현안이 뒤도 밀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무상급식으로 버려지는 잔반을 처리해야 하는 비용마저 수백억원대에 이른다.
무상 보육
‘5세 아이 무상교육’는 2000년도부터 논의된 이슈였다. 2012년부터 전체 5세 아이에게 무상교육을 하겠다는 결정은 재정적으로 견딜만 했다. 만 5세는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연령이어서 유치원 1년 의무교육은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2013년부터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려 대상폭이 만 3~4세까지로 확대됐다. 이른바 ‘누리과정’이다.표를 얻는 데 좋으니까 한꺼번에 연령대를 늘려버렸다. 유권자들은 좋아했다. 예산은 생각도 안 한 듯했다. 이런 탓에 누리과정과 무상급식 예산이 2011년 2조2024억원에서 작년 4조8744억원으로 121%나 급증했다. 저소득층에 집중적으로 돌아가야 할 복지 예산이 보편 복지로 인해 저소득층조차 순번에서 밀리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기초연금
기초연금은 많은 논란 끝에 당초 계획보다 약간 수정돼 지난 7월부터 지급되고 있다. 만 65세 어르신들이 대상이다. 8월 현재 대상자는 약 420만명. 92.4%인 388만명(단독가구 20만원, 부부가구는 32만원)이 기초연금 전액을 수령했다. 나머지 32만명은 단독가구 최소 2만원, 부부가구 4만원을 받았다. 자녀와 본인 소득 등을 감안하지 않은 채 당초 공약대로 시행했다면 예산은 태부족이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대통령 공약대로 시행될 경우 예산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공짜 복지는 줄지어 있다.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등이 그것이다. 공짜가 국가 재정을 망가뜨리기는 시간문제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 땅 파고 묻는 일 반복하게 하고 돈을 준다면?
어떤 정부가 있다. 이 정부를 이끄는 사람은 매우 착해서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려 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책을 꺼냈다. 그냥 나랏돈을 줄 수 없으니 일자리가 없는 사람을 모두 불러냈다. 정부가 시킨 일은 공터의 땅을 파고 묻는 일을 계속하게 한 것. 아침에 공터로 나온 실업자들은 땅을 팠다가 다시 묻는 일을 반복했다. 해질 무렵 임금을 받아갔다. 이들은 다 써버린다. 다음 날도 반복했다. 그러자 이들보다 조금 더 벌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버리고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렇게 쉬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나 싶어서”였다. 정부가 임금을 지급해야 할 사람이 늘었다.
이들은 사실 아무런 생산을 하지 않은 사람이다. 생산성이라고는 제로다. 나라의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생산성의 증가를 의미한다. 같은 시간에 100원 벌던 것을 110원을 벌게 되면 성장한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세금이 는다. 국가는 늘어난 세금을 다양한 곳에 투자한다. 하지만 생산과 무관한 ‘땅파고 묻기’에 들어가는 돈이 늘어나면 당연히 세금도 줄어든다. 해가 거듭할수록 국가 경제는 쪼그라든다.
흔히 복지를 이런 땅파고 묻기에 비교하곤 한다. 저소득층, 노인층, 소년소녀 가장 등에 국가가 예산을 배정해 지원해주는 것은 옳다. 하지만 너도 나도 공짜로 예산을 받아 챙기게 되면 이런 꼴이 된다.
복지천국이던 유럽국가들이 복지정책을 줄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페이고(Pay-go) 원칙 준수…재원 확보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Pay-go, 처음 듣는 말이라고요? 이런 단어는 꼭 알아두세요.)
Pay-go(페이고)는 pay as you go에서 나온 표현이다. Pay as you go는 ‘현금으로 지급하다’ ‘번만큼 쓴다’는 뜻이다. 따라서 페이고 원칙은 재정을 지출해야 하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 재정여건에 맞춰 기존 사업의 지출을 줄이거나 재원대책을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이는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재정준칙의 하나다.
페이고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빠져 재정건전성을 해치는 무분별한 법안의 발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정책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긴급상황시 정책의 순발력이 둔해질 수 있다는 것은 페이고 원칙의 단점이다. 페이고 정책은 경기효과가 적은 일반 경직성 부문은 과감하게 예산을 삭감하고 대신 경기진작 효과가 큰 쪽에 투자를 몰아준다는 것이 기본 메커니즘이다. 대다수 선진국은 인기영합성 포퓰리즘 정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재정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이 원칙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페이고 원칙을 도입, 2010년 5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이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과다한 복지비용 지출로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곳곳에서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결과다. 미국은 1990년 재정 건전화를 위해 페이고 원칙을 도입했다가 2002년에 폐지했다. 하지만 재정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2010년 2월 관련 법안을 다시 부활시켰다.
■ 공짜점심의 부메랑, 위험 학교는 방치되고…공사는 멈춰서고
국가의 예산이 무상복지에 쏠리면서 곳곳에서 재정파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위기감은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풀뿌리 격인 기초단체에서 더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초 기초단체장들의 협의체인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가 ‘복지디폴트 위기’를 선언한 것은 이를 잘 반영한다. 무상보육, 무상급식, 기초노령연금 등 정부의 복지사업 집행 부담을 지고 나면 단체장들이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재정여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재정 적자를 걱정해야 하는 지자체도 허다하다. 재정파탄 우려가 높아지면서 전국에서 위험이 방치된 학교들이 늘어나고 중도에서 멈춰선 사업들도 즐비한 실정이다.
방치된 ‘어린이집 예산’
‘어린이집 예산’은 교육계의 재정부족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무상급식 등으로 재정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전국 시·도 교육감들은 2015년도 누리과정(유치원에서 만 3~5세 아이들을 가르치고 평가하는 교육과정) 예산 중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 예산을 편성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무상급식 등에 예산이 쏠리면서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할 여력이 없으니 중앙정부가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중앙정부 쪽에서는 ‘교육감들이 국민과 어린이를 볼모로 정부를 위협하는 격’이라며 무책임하다는 반응이다.
초·중·고교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무상복지에 학교가 멍들어 가고 있다. 모든 학생들에게 공짜로 점심을 나눠주는 데는 예산을 아낌없이 쓰면서도 정작 예산이 필요한 곳은 재정이 부족해 손을 못쓰고 있다. 특히 정부가 ‘고졸 취업 시대’를 열겠다며 지원 확대를 공약한 특성화고에 배정된 예산이 크게 줄고 있다. 원어민 강사 예산도 급감한 상태다.
특성화고인 경기도의 어느 학교는 학생들이 아예 사양이 좋은 노트북을 학교로 가지고 오거나 집에서 램을 가져와 학교 컴퓨터에 끼우고 수업을 받는다. 컴퓨터 자격에 필수인 컴퓨터 그래픽 수업을 받기엔 학교 컴퓨터의 사양이 너무 좋지 않은 탓이다.
무상급식·누리과정 등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을 지원하는 보편적 복지 예산이 늘어나면서 위험이 방치된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즉각 수리하거나 폐쇄해야 할 초·중·고 건물이 전국적으로 84개(2014년 9월1일 기준)에 달하지만 절반 이상이 보수 예산 부족으로 위험을 방치한 채 수업하고 있다.
마을 앞 하천이 범람해도…
보편적 복지에 재정부담이 커지면서 중간에 사업이 스톱된 곳들도 전국에 즐비하다. 돈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진행 중인 공사를 도중에 멈춘 탓이다. 저수지 둑 일부가 무너져 마을 앞 하천이 범람해도 예산부족으로 보수공사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방차가 들어가기조차 힘든 도로를 예산이 부족해 넓히지 못하는 지자체,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공무원 급여를 줄 방법이 막막한 지자체도 많다. 무상복지가 지방자치단체들에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재정파탄 위기감은 시·군·구 같은 기초자치단체가 상대적으로 더 심하다. 무상급식 등 복지예산 비중이 50~65%로 높은 데다 재정확보 여력은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노인과 저소득층이 많을수록 복지예산으로 인한 재정압박이 심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쓰레기 수거비조차 주지 못하는 기초지자체까지 늘어나는 실정이다.
핑퐁 치는 복지예산
총선·대선·지방자치단체 선거를 거치면서 무상복지는 핵심 이슈였다. 정치인들은 연일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노령기초연금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재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선진국=복지’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보편적 공지 공약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불과 1~2년 만에 공짜의 유혹은 재정고갈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곳곳에서 재정파탄 위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들은 중앙정부에 복지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하지만 재정부실을 우려하는 중앙정부 역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복지비용을 놓고 ‘떠넘기기 공방’을 벌이는 이유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100만원짜리 예산 편성을 놓고도 멱살잡이를 한다.
교육재정이 위기를 맞으면서 고교 무상교육을 연기하고 무상급식을 축소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고소득층 자녀까지 포함된 무상급식 재원을 저소득층으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정부가 교육재정의 현실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전문가도 많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공짜는 되돌리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공짜의 부메랑. 그래서 공짜는 출발이 중요하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