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영 KAIST EEWS대학원 교수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통해 사물의 마찰계수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기술을 개발했다. KAIST 제공
박정영 KAIST EEWS대학원 교수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통해 사물의 마찰계수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기술을 개발했다. KAIST 제공
유선형의 자동차 한 대가 얼음에 미끄러지듯 아스팔트 위를 달린다. 100m 전방에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든다.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작동하자 타이어는 땅바닥에 찰싹 달라붙는다. 타이어의 마찰계수를 스스로 조절하는 스마트카 이야기다. 평소 주행 시에는 마찰계수를 줄여 연료 효율을 극대화하고 정거 시에는 마찰계수를 높여 효과적으로 운행을 멈춘다. 중형차임에도 연비는 L당 70㎞에 달한다. 타이어에 코팅된 그래핀 소재가 상황에 따라 마찰계수를 자유자재로 조절하기 때문이다.

박정영 KAIST EEWS(에너지·환경·물·지속가능성)대학원 교수는 “지금껏 스마트카는 정보기술(IT) 측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그래핀 등 신소재를 이용한 역학적 진보도 동시에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노로봇 움직일 그래핀 연구

물체의 마찰력 제어는 박 교수의 오래된 연구 주제다. 최근에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그래핀은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고 전자의 이동성은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다. 강도는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고 다이아몬드보다 두 배 이상 열전도성이 높다. 투명하고 신축성이 뛰어난 것도 특징이다.

그래핀의 여러 장점 중에서도 그의 눈길을 끈 것은 다름 아닌 산화 실리콘의 4분의 1에 불과한 그래핀의 표면 마찰력이었다. 박 교수는 그래핀이 획기적인 윤활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KAIST에 부임한 2009년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그래핀 연구를 시작한 지 2년 만인 2011년, 그는 기계적 박리법으로 만들어진 그래핀의 표면에 주름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논문은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에 실렸다. 최근에는 그래핀에 물을 섞어 마찰력을 줄이는 방법도 발견했다.

박 교수가 그래핀 연구에 매달리는 것은 미래 성장산업인 나노로봇의 현실화를 위해서다. 물체는 크기가 작아질수록 마찰계수가 올라간다. 보통 산화 실리콘으로 만드는 나노로봇은 크기가 작아 표면의 마찰계수가 크다. 나노로봇이 움직이기 힘든 이유다. 박 교수는 “나노로봇의 표면을 특정 윤활제로 코팅하면 마찰력을 줄일 수 있다”며 “전자적 특성은 물론 역학적 특성까지 실리콘보다 뛰어난 그래핀이 최적의 윤활제”라고 말했다.

◆갈등의 순간, 좋아하는 일 선택

박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에 다니던 형을 닮아 수학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수학과에 가려고 했지만 “실생활에 더 도움이 되는 물리학을 해보라”는 형의 권유에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세상의 근본원리를 탐구하는 물리학에 깊이 매료됐다. 서울대에서 주사터널링(scanning tunneling) 현미경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메릴랜드대와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등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그의 인생은 버클리대에서 표면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가보 소모자이 교수를 만나면서 바뀌었다. 소모자이 교수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마찰력 연구를 시작했다.

박 교수의 연구가 항상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04년의 ‘준결정(準結晶)’ 연구는 특히 어려웠다. 준결정은 규칙적인 구조를 갖지 않는 고체를 말한다. 원자 배열이 피보나치 수열을 따르는 준결정의 마찰력이 주기성을 갖는 물질보다 왜 낮은지를 밝히는 과정이었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준결정이 열에 쉽게 변형되면서 한계에 직면했다. 월급은 적은데 둘째 아이가 태어났고, 때마침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인 HP에서 영입을 제안했다. 갈등의 순간이 찾아왔지만 유혹을 뿌리쳤다. 그가 좋아하는 일은 마찰력 연구였기 때문이다. 2005년 그는 준결정의 마찰력이 주기성을 갖는 물질보다 작은 이유를 밝힌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게재할 수 있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