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가 주목했던 '강소기업 신화'…10년만에 물거품으로
모뉴엘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가전 시장에서 두각을 보였던 혁신형 강소기업으로 평가받아왔다.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 다양한 제품을 내놓은 데다 세계 시장을 무대로 영업하면서 급성장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2007년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CES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모뉴엘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모뉴엘이 선보인 영화감상에 특화된 ‘홈시어터PC’를 두고 한 평가였다. 이 같은 외부 평가를 활용한 마케팅 덕분에 매출과 영업이익도 지속적인 증가세를 기록했다. 모뉴엘의 법정관리 신청 소식에 전자업계가 충격에 휩싸인 이유다.

◆자금난 배경 두고 의혹 증폭

모뉴엘은 지난 8월까지 공격적인 영업활동을 이어갔다. 주력상품인 PC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자 로봇청소기 ‘클링클링’을 출시했고, 연내에 자체 브랜드 TV를 내놓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올초 제주에 500억원을 투자해 2만664㎡ 규모의 신사옥을 짓고 본사를 이전했다. 연구개발(R&D)센터, 기업 연수원 등을 제주에 두고 제품 개발에 매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금융사들의 내부 신용등급이 최고 수준이어서 필요한 자금을 은행에서 충분히 조달할 수 있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모뉴엘은 회사채를 발행한 적이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자회사 잘만테크는 지난 6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거래 채권은행 관계자들도 최근 들어 회사 자금담당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 등 채권 회수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며칠 전부터 허위 서류를 꾸며 무역보험공사에서 보증을 받아 은행권에서 돈을 융통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박홍석 대표 등 회사 경영진과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모뉴엘은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대표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납품업체와 채권은행 피해 불가피

수원지방법원이 이 사건을 파산2부에 배당하면 금융권 및 상거래 채권은 동결된다. 이 과정에서 모뉴엘에 제품을 납품해온 국내외 가공업체들은 연쇄적으로 자금난을 겪게 된다. 담보 없이 신용으로 대출해 준 은행들도 상당 규모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모뉴엘 여신 규모는 기업은행이 1500억원 정도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산업은행(1165억원) 외환은행(110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농협은행, 수출입은행도 수백억원대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제품 수출 과정에서 보증을 제공한 무역보험공사도 피해를 보게 된다. 모뉴엘은 무역보험공사에 수출채권유동화 상품 2000만달러, 선적후신용보증 상품 300만달러어치에 가입돼 있다.

모기업인 모뉴엘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자회사 잘만테크에도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대주주인 모뉴엘과 박 대표가 잘만테크 지분 60.41%를 갖고 있고, 나머지는 개인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주가 하락으로 주식 투자자들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무서울 정도로 빨랐던 성장세

모뉴엘은 창업 10년 만인 지난해 매출 1조2737억원(연결 기준)을 기록하며 ‘1조원 클럽’에 들어갔다. 영업이익도 사상 처음 1000억원을 돌파했다. 삼성전자 출신인 박 대표를 영입한 이듬해인 2008년 매출(739억원), 영업이익(100억원)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모뉴엘은 홈시어터PC를 주력 상품으로 시작해 로봇청소기와 올인원PC 등 다양한 가전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창업 3년차인 2007년부터 CES에 매년 참가하고 지난해엔 제품 2개(터치테이블 PC와 청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케어 시스템)가 최고 혁신상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

모뉴엘이 해외에서 본격적인 매출을 올린 것은 2011년 코스닥 상장사인 잘만테크를 약 22억7000만원에 인수하면서부터다. 해외 유통망이 탄탄한 잘만테크의 영업력을 활용해 모뉴엘의 멀티미디어 PC와 로봇청소기 등의 해외 판매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해외 수출이 늘면서 2010년과 2011년 연속 딜로이트컨설팅이 선정하는 ‘아시아·태평양지역 고속성장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정지은/김일규/남윤선/허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