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재난학연구소
몇 달 전, KAIST 교수 몇 명이 모였다. 참사를 마주한 직후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애도를 표하는 것이 과학자로서 최선은 아니라는 공감대를 이뤘다. 재난을 정면으로 마주보자고 논의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세상을 구하자는 결단이다. 영웅이 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처절한 무력감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지만, 결코 마지막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재난이다.

뜻을 같이하는 교수들이 모여 재난에 대해 공부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정리했다. 동참하는 사람들 수는 갈수록 늘어나 KAIST 교수와 외부 전문가를 합쳐 80여명이 합세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KAIST는 ‘재난학연구소’ 문을 열었다. 앞으로 재난과 안전 문제를 실사구시형 학문적 연구 주제로 삼을 것이다. 초국가적인 재난학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전문가를 양성할 것이다.

KAIST에서 재난에 관한 연구소를 세웠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기술집약적인 부분만 상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재난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측량하고 분석하고 더 안전한 기술을 만들어내는 공학 외에도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접근을 종합적으로 할 것이다. 완벽한 재난 대응 시스템은 기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사회 구성원들의 소통을 거친 합의와 국가 정책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소 개소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재난과의 전쟁은 장기전이기 때문에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보다는 얼마나 지속적으로 싸울 것인가의 문제다. 학자와 전문가뿐 아니라 시민과 사회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미국 대공황 시기에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연임한 피오렐로 라구아디아는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빵을 훔쳐 재판장에 온 노인에게 10달러의 벌금을 선고한 뒤, 노인이 빵을 훔치게 방치한 사회에도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며 자신이 10달러의 벌금을 내고 방청객에게도 벌금형에 동참하게 한 사건이다. KAIST 재난학연구소의 구성원들은 이 일화를 자신에게 적용한다. 현 사회의 인프라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수백 명의 어린 생명을 먼저 보낸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나아가 사회적 책임을 넘어선 선(善)과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겠다고 말한다. 이들의 결단과 학자적 사명감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경의를 표한다.

강성모 < KAIST 총장 president@kaist.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