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비운의 공산 혁명가' 트로츠키
‘비운의 공산 혁명가’ 트로츠키는 1879년 현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브 나로드(인민 속으로)’ 운동에 몸담았다. 영국에서 레닌과 조우한 후 마르크스주의를 구현할 오른팔로 활동했다. 그러나 레닌의 급진 과격주의 노선에 반감을 품은 뒤 돌아서 대립했다.

1905년 이른바 ‘피의 일요일’ 사건에서 프롤레타리아 주도의 혁명에 대항해 ‘영구 혁명론’을 주창했다. 러시아 내에서의 혁명은 힘들고 선진국 중공업 기술을 수용해 역량을 기른 다음 국제적 연대를 통한 혁명을 하자는 주장이다. 일견 이상주의로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처절히 실패한 ‘1국 공산주의’ 실험을 그때 이미 예견한 현실적 감각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레닌과 다시 손잡고 적군을 창설해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1924년 레닌 사후에는 당 주도권을 두고 스탈린과 격하게 대립했다. 온갖 날조와 모략으로 1927년 당에서 제명당한 뒤 1929년 국외로 추방됐다. ‘트로츠키주의자’란 말을 듣는 것은 ‘골수 반동분자’ 등과 함께 공산권에서 가장 큰 모욕이었다. 유럽 남미 등을 떠돌며 반(反) 스탈린 투쟁을 벌이면서 ‘배반당한 혁명’ 등의 저서를 발표했다.

친족과 측근들이 차례로 살해당하는 위협 속에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1940년 2월 유언장을 남겼다. 같은 해 8월21일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됐다.

■ 트로츠키

1879년 10월25일 출생
1905년 ‘영구 혁명론’ 주창
1917년 10월 소비에트 의장
1929년 국외 추방
1933년 제4인터내셔널 창설
1940년 8월 피살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