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현실과 동떨어진 섀도 보팅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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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결원의 의결권 대리행사 禁하면
감사도 선임 못할 상황에 직면할 것
안건별 의결정족수 조정 고민해야"
권태신 < 한국경제연구원장 kwontaeshin@keri.org >
감사도 선임 못할 상황에 직면할 것
안건별 의결정족수 조정 고민해야"
권태신 < 한국경제연구원장 kwontaeshin@keri.org >
“내년 주주총회가 걱정입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대기업 임원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년부터 섀도 보팅(shadow voting)이란 제도가 폐지되기 때문에 주주총회가 제대로 치러질지 걱정이란 하소연이었다.
섀도 보팅은 회사가 주주총회를 소집할 때 주주들의 참석률이 낮을 경우 한국예탁결제원이 의결권을 대리행사해서 총회 안건 의결을 돕는 제도다. 일반 주주들이 이사나 감사 선임, 배당정책 등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총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정족수가 미달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정부가 대안으로 1991년 섀도 보팅제를 도입했다.
주주총회에서 의결해야 하는 사항별로 법에서 정한 의결정족수가 있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안건이 통과하려면 회사가 발행한 주식총수의 25%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주식수를 기준으로 절반이 찬성해야 한다. 이때 단 0.1%만 모자라도 안건이 통과하지 못한다. 따라서 섀도 보팅 폐지로 당장 내년 초 주총 때부터 감사선임이나 배당 등 중요사항을 결정하는 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 정부는 왜 이 제도를 폐지하려 할까. 정부는 섀도 보팅을 폐지해야 기업이 주주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려 노력하고 대주주가 이 제도를 경영권 강화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관심이 없었던 일반 주주들이 하루아침에 ‘이제는 경영에 참여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꿔 주총에 나올까. 아직 한국의 주식투자자는 대부분 차익이나 배당을 염두에 둔 재무적 투자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9년부터 5년간 한국 투자자의 평균 주식보유 기간이 유가증권시장 종목은 최장 5.2개월 미만, 코스닥은 최장 2.9개월 미만에 불과하다고 한다.
문제는 또 있다. 섀도 보팅이 폐지되면 각 기업체 직원들이 의결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일정 비율 이상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을 쫓아다니며 주총 참여를 부탁하고 다닐 것이 뻔하다. 그 시간에 해당 기업의 경영전략과 같은 중요한 고민을 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기업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법적 의무사항인 감사 선임 문제다. 지난 9월에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922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65.6%가 ‘특히 감사 선임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응답했다. 감사 선임이나 감사위원회 구성은 자산총액을 기준으로 일정 규모 이상인 회사에서는 법정 의무사항이다. 그런데 법에서 주식을 3% 이상 보유한 대주주의 의결권을 주식보유 비율과 관계없이 3%까지만 인정하고 있어서 문제다. 예컨대 대주주가 네 명 정도 있는 회사라면, 이들의 의결권을 합쳐도 12%밖에 되지 않아 나머지 13%를 채워야 하는데 기업체 담당자들이 애를 쓴다 한들 이 13%를 채울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 선임을 못 하게 된다면 또 다른 법위반 사항을 낳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의결정족수를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컨대 일반결의 사항에 대해 발행주식 총수 기준을 삭제하고 출석주식 수의 50% 기준만 적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봄직하다. 제도 폐지 이후 기업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시행시기를 미루는 배려도 필요할 듯하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갯짓을 시작한다’는 격언처럼 실제 문제가 생긴 이후에나 우리는 그 문제에 관해 정확히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예상되는 여러 문제점과 부작용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 전문가들이 섀도 보팅제 폐지에 따라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는 문제를 정책당국자도 고민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는 현명한 부엉이를 기대해 본다.
권태신 < 한국경제연구원장 kwontaeshin@keri.org >
섀도 보팅은 회사가 주주총회를 소집할 때 주주들의 참석률이 낮을 경우 한국예탁결제원이 의결권을 대리행사해서 총회 안건 의결을 돕는 제도다. 일반 주주들이 이사나 감사 선임, 배당정책 등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총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정족수가 미달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정부가 대안으로 1991년 섀도 보팅제를 도입했다.
주주총회에서 의결해야 하는 사항별로 법에서 정한 의결정족수가 있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안건이 통과하려면 회사가 발행한 주식총수의 25%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주식수를 기준으로 절반이 찬성해야 한다. 이때 단 0.1%만 모자라도 안건이 통과하지 못한다. 따라서 섀도 보팅 폐지로 당장 내년 초 주총 때부터 감사선임이나 배당 등 중요사항을 결정하는 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 정부는 왜 이 제도를 폐지하려 할까. 정부는 섀도 보팅을 폐지해야 기업이 주주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려 노력하고 대주주가 이 제도를 경영권 강화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관심이 없었던 일반 주주들이 하루아침에 ‘이제는 경영에 참여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꿔 주총에 나올까. 아직 한국의 주식투자자는 대부분 차익이나 배당을 염두에 둔 재무적 투자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9년부터 5년간 한국 투자자의 평균 주식보유 기간이 유가증권시장 종목은 최장 5.2개월 미만, 코스닥은 최장 2.9개월 미만에 불과하다고 한다.
문제는 또 있다. 섀도 보팅이 폐지되면 각 기업체 직원들이 의결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일정 비율 이상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을 쫓아다니며 주총 참여를 부탁하고 다닐 것이 뻔하다. 그 시간에 해당 기업의 경영전략과 같은 중요한 고민을 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기업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법적 의무사항인 감사 선임 문제다. 지난 9월에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922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65.6%가 ‘특히 감사 선임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응답했다. 감사 선임이나 감사위원회 구성은 자산총액을 기준으로 일정 규모 이상인 회사에서는 법정 의무사항이다. 그런데 법에서 주식을 3% 이상 보유한 대주주의 의결권을 주식보유 비율과 관계없이 3%까지만 인정하고 있어서 문제다. 예컨대 대주주가 네 명 정도 있는 회사라면, 이들의 의결권을 합쳐도 12%밖에 되지 않아 나머지 13%를 채워야 하는데 기업체 담당자들이 애를 쓴다 한들 이 13%를 채울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 선임을 못 하게 된다면 또 다른 법위반 사항을 낳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의결정족수를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컨대 일반결의 사항에 대해 발행주식 총수 기준을 삭제하고 출석주식 수의 50% 기준만 적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봄직하다. 제도 폐지 이후 기업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시행시기를 미루는 배려도 필요할 듯하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갯짓을 시작한다’는 격언처럼 실제 문제가 생긴 이후에나 우리는 그 문제에 관해 정확히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예상되는 여러 문제점과 부작용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 전문가들이 섀도 보팅제 폐지에 따라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는 문제를 정책당국자도 고민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는 현명한 부엉이를 기대해 본다.
권태신 < 한국경제연구원장 kwontaeshin@ke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