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홍성국 대우증권 부사장 "성장의 종말, 전환형 복합불황…韓경제 마지막 '골든타임'"
현재 한국 정부는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정과 통화 정책을 총동원해 돈을 풀고 있다. 또 소비와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전방위적인 규제 철폐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경제는 쉽사리 과거와 같은 활력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일본도 자산가격 버블이 붕괴된 1990년 이후 현재의 아베 신조 총리 집권 이전까지 12차례에 걸쳐 200조엔(약 1900조원)을 풀었다. 아베 총리 집권 이후에도 공격적인 경기부양책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이 '잃어버린 25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증권계의 미래학자'로 불리는 홍성국(53)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부사장은 이같은 문제의 원인이 '전환형 복합불황'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일본 뿐 아니라 세계가 결국 불황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근 출간한 '세계가 일본 된다'라는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홍 부사장은 2004년 출간한 '디플레이션 속으로'에서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가 저성장·저금리 기조로 진입할 것이라고 국내 최초로 지적한 바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KDB대우증권 집무실에서 홍 부사장을 만나 '일본화(japanization)'를 피하기 위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세계가 일본 된다'라는 책을 쓴 이유는

"1990년부터 일본이 디플레이션으로 가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10년 전 '디플레이션 속으로'에서 고령화 문제를 다뤘는데, 이 때도 일본을 많이 의식했었죠. 이후 고민해보니 고령화 뿐 아니라 다른 요인도 심각했고, 세계의 미래가 일본식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했죠.

세계의 시스템이 바뀌어가고 있고, 그 과정을 극복하지 못해 일본이 '잃어버린 25년'에 빠졌습니다. 대안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이 생각이 시작이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가 결국 모두 전환형 복합불황에 빠진다고 했는데, 원인은 무엇입니까

"현재의 세계는 성장을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길게는 르네상스, 짧게는 산업혁명 이후부터 세계는 팽창을 시작했고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구 증가가 결합되면서 꾸준히 성장해왔죠. 그런데 이제는 성장에 한계가 온 겁니다.

한계에 다다르니 사회 양극화, 공급과잉, 인구감소, 부채 사회, 글로벌 불균형,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과거 성장 시대의 틀에서 바라보니 해법이 나오지 않죠. 전환형 복합불황이라는 새로운 틀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전환은 성장 시대의 종말, 복합불황은 경제 만이 아닌 정치 사회 문화 등의 모든 분야의 경기침체를 뜻합니다."

-세계가 일본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현재 어디에 와 있습니까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전환형 복합불황 시대를 알리는 '신 4저(저성장 저투자 저금리 저물가) 효과'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약하게 나타나고 있죠. 국가 재정도 안정적인 편입니다. 그러나 따라가는 속도가 빠릅니다. 금리 물가 투자 등의 하락 속도, 고령화 등 측정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한국은 나빠지는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대응이 중요해지는 '골든타임'에 진입하고 있죠. 구조전환이 아닌 과거형 대책으로 대응한다면 오히려 전환형 복합불황 진입 속도를 가속화할 것입니다."

[인터뷰] 홍성국 대우증권 부사장 "성장의 종말, 전환형 복합불황…韓경제 마지막 '골든타임'"
-일본같은 불황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일본은 장기 불황에 잠식돼가는 동안 일본의 리더 그룹, 특히 경제 리더들은 철저하게 과거형으로 대응했습니다. 전환형 복합불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리더의 인식전환에 있습니다. 리더그룹의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 시스템 전체를 과감하게 손봐야 하죠.

한국은 아직도 성장 시대의 향수에 취해 있습니다. 전환형 복합불황에 대한 인식을 했으면 합니다. 전환, 복합, 불황 등 각론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이 세 가지를 함께 보지는 못하고 있죠. 불황은 인식하는데 전환을 생각하지 못하면, 과거 불황의 해법인 돈을 푸는 대응을 하는 겁니다.

일본이 쓴 200조엔에 달하는 돈이 바보가 된 이유죠.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인구 감소, 사상 최고 수준의 정부 부채, 공급 과잉 등은 인류가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일단 인식을 하고, 전환형 복합불황에 맞게 각 사회의 구조를 전환해야 합니다.

구조전환의 기본 명제는 효율성과 효과성이 돼야 합니다. 과거에는 최소의 투입(input)으로 최대의 산출(output)을 내는 효율성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 등으로 나타났죠. 건설 비용을 줄었으니 효율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효과가 없었던 겁니다.

과정에서의 효율성과 결과로서의 효과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구조전환의 중심 가치가 돼야 합니다. 국가와 사회, 가계 모두 엄청난 부채를 보유하고 있으니 효율성을 높여 비용을 절약해야 하고, 결과적 효과도 고려해 투자에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효율성과 효과성을 생각하면 바꿔야 할 것이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공급과잉과 성장의 한계를 돌파하는 중요한 방법은 지구 전체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입장에서 잿빛 경제 전망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증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시각을 가진 정치인 기업인 투자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정확히 알고 정치인은 국가개조 플랜을 짜야하고, 기업인도 혁신에 나서야 하는 거죠.

요즘 기업들이 3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있는데, 영업이익 3000억원을 내놓는다고 하고는 1000억원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숨겼거나 몰랐다는 건데, 저는 둘 다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라고 한다면 기업은 빨리 구조전환을 해야 합니다.

건설사들이 해외로 나간 지 40여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적자를 내고 있는 걸까요? 발전 플랜트 등 과거와는 다른 것을 하고 있는데, 옛날 식으로 생각하고 일들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지금 상황에 맞춰서 혁신에 투자해야 합니다. 아무리 현금을 많이 쌓아두고 있고 주변에서 저평가됐다고 분석해도, 구조전환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 기업은 현재 오히려 비쌀 수도 있는 겁니다."

-현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업종이나 종목은

"업종이 아닙니다. 특정 기업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환형 복합불황의 시대에서는 어떤 업종도 제로섬(zero-sum) 산업이 될 겁니다. 다른 회사의 점유율을 뺏어오는 기업을 봐야 하는 거죠.

최근 비싼 주식의 주가가 더 상승하고 있습니다. 왜 올라가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코웨이 호텔신라 오스템임플란트 아모레퍼시픽 등은 우리가 본받고 투자해야 하는 회사들입니다. 최근의 구조재편기에도 상승하는 기업들은 상황이 안정화됐을 때 더 올라갈 수 있고, 글로벌 경쟁에서도 이겼다는 것입니다."

한경닷컴 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