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장(왼쪽 세 번째)과 디르크 얀 반 덴 베르흐 델프트공대 총장(첫 번째)이 3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구용 원자로 개선사업 계약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장(왼쪽 세 번째)과 디르크 얀 반 덴 베르흐 델프트공대 총장(첫 번째)이 3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구용 원자로 개선사업 계약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국산 연구용 원자로(연구로) 기술이 네덜란드에 수출된다. 55년 원자력 연구개발(R&D) 역사상 유럽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3일 국빈 방문한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과 정상회담을 하고 네덜란드 델프트공대의 연구용 원자로 개선사업(Oyster 프로젝트) 계약 서명식을 열었다. 이번 계약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2018년까지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연구용 원자로의 출력을 높이고 냉중성자 연구설비를 구축하는 내용이다. 계약금액은 250억원(약 1900만유로)이다.

○R&D 55년 만에 유럽 진출

국내 원자력 연구는 1959년 미국에서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여기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1995년에는 국산 1호 연구로인 ‘하나로’(30㎿)를 건설했다. 부산 기장군에는 2017년 가동을 목표로 제2호 수출용 신형 연구로를 건설하고 있다.

미국에서 기술을 도입해 시작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해외에 원자력 기술을 수출하는 성과도 거뒀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상업용 원전을 처음 수출했다. 같은해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사업도 수주했다.

이번에 수주한 연구로는 수조원에 달하는 상업 원전보다는 규모가 작다. 하지만 중동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는 기술이다. 앞으로 수출산업화 기술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원전 선진국인 유럽의 수출문을 처음으로 연 것에도 의미를 둘 수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컨소시엄은 프랑스의 아레바, 독일 누켐-러시아 니켓 컨소시엄 등 글로벌 경쟁 업체들을 제치고 이번 계약을 따냈다. 2011년부터 하나로 연구로에 냉중성자 설비를 추가로 구축해 가동한 기술력이 강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냉중성자는 엑스선보다 투과력이 뛰어나면서도 에너지가 낮아 살아있는 세포 속 물질을 분석할 수 있다. 생명공학이나 신약 연구에서 중요한 도구로 주목받는 설비다.

○연구로 수출산업화 탄력

작년 말 기준 세계 각국이 가동 중인 연구로는 245기다. 이 가운데 60%가 지은 지 40년이 넘었다. 앞으로 10년 내 대체 및 신규 수요가 30~50기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네덜란드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제르바이잔 태국 말레이시아 등은 새로운 연구로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국가 차원에서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20㎿급 연구로 건설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시작했다. 이번 조사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함께 참여해 올 연말까지 사우디 정부에 결과를 제출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 국제 입찰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네덜란드 연구로 구축사업인 팔라스(PALLAS) 사업도 주목된다. 네덜란드는 조만간 4억~5억유로(약 5500억~6900억원) 규모의 연구로 대체사업을 발주할 예정이다. 델프트공대 연구로 개선사업 수주로 양국 간 협력관계가 무르익고 있어 좋은 성과가 기대된다.

박 대통령도 연구로 세일즈 외교에 적극 나섰다. 지난 3월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담에서 네덜란드와 원자로 기술 협력을 논의하며 이번 계약을 성사하는 데 물꼬를 텄다. 이날 서명식에서도 네덜란드가 추진할 예정인 팔라스 프로젝트에 한국 기관이 참여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3월 정상회담에서 네덜란드의 ‘TOP-9’ 신산업 정책과 한국의 창조경제 정책을 서로 연계하기로 논의했다”며 “네덜란드 연구용 원자로 사업 계약 체결 등 지난 회담의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델프트공대는 이날 원자력 분야 R&D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방사선 안전과 원자로 기술 개발, 연구용 원자로, 방사성 폐기물 관리, 방사선·핵의학·동위원소 기술, 나노물질 이용 등에서 협력해 나갈 계획이다.

■ 연구로

원자로는 발전용 원자로(발전로)와 연구용 원자로(연구로)로 구분한다. 원자로에서 핵분열이 일어나면 열과 중성자가 발생한다. 상업 원전은 발전로에서 얻은 열을 전기로 바꿔 사용하는 반면 연구로는 열을 날려버리는 대신 중성자만 이용한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