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소비자 보호란 얼굴의 無知 또는 오만
무지한 것인지, 아니면 오만한 것인지. 최근 정부의 행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가격을 규제할 경우 정부가 의도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과 소비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후생을 감소시킨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 중의 기본지식이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누구나 가격을 제한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치고,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은 가격을 제한하거나 통제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보면 정부 관료들이 경제학의 이런 기본적인 지식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거나, 이것을 알고도 시행했다면 정부 권력을 이용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오만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단통법은 이동통신사는 최대 30만원까지만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소비자에 대한 차별대우를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나왔다. 그동안 이통사들은 고가요금제 계약자에게는 단말기 구매에 대해 많은 지원금을, 저가요금제 계약자에게는 적은 지원금을 지급해왔다. 정부는 이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동일한 재화에 대해 동일한 가격이 책정돼야지 왜 차별을 하냐는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무지의 소산이다. 동일한 재화라도 소비자에 따라 다른 가격이 책정될 수 있다는 이른바 ‘가격차별’은 시장에서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이런 무지는 차치하고, 사실 이통사들이 보조금 경쟁을 치열하게 하는 이유는 통신요금이 ‘인가제’로 통제돼 있기 때문이다. 요금 경쟁이 불가능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이통사들이 보조금 지급을 통해 요금 규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정부가 가격을 규제하면 시장은 정부 의도와는 달리 움직이고,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규제를 철폐하는 일이다. 만약 정부가 계속 그 의도를 고집해 다른 통제를 가하면 시장은 더욱 왜곡되고 혼란이 가중되며 소비자의 손해만 늘어간다.

실제로 이런 현상이 지금 이통시장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단통법이 시행되자 오히려 휴대폰 가격이 크게 올라 소비자들에게 손해가 돌아갔다. 소비자들이 아우성치자 단통법을 폐지하는 대신 방송통신위원장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이통사와 제조사 최고경영자들을 소집해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특단의 대책’을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규제로 생긴 문제를 더 강한 통제로 해결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뻔하다. 시장의 혼란이요, 산업의 쇠퇴다.

단통법뿐만 아니다. 비정규직보호법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법이다. 비정규직이더라도 고용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고용자 입장에서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경우 여러 가지 이유로 부담이 되기 때문에 2년이 되기 전에 내보내려 한다. 비정규직보호법을 회피하기 위해 다양한 근로계약이 체결된다. 대표적인 것이 2~3개월 단위로 이뤄지는 단기근로계약이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이런 단기근로계약을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에서 비롯됐고, 비정규직보호법이 비정규직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방안은 비정규직보호법을 폐지하고 정규직의 과보호를 완화하는 데 있다. 단기근로계약 금지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노동시장은 더욱 왜곡될 것이다.

한동안 정부가 경제를 살린다면서 규제 혁파를 외쳤다. 그런데 최근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해 가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일련의 동향을 보며 과연 이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까지 든다. 미국이 양적 완화를 끝내고 일본이 추가 양적 완화에 나서면서 대외 불확실성이 커져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정부가 이렇게 갈팡질팡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 교수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