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기금 2017년 완전 고갈…국고·복권기금서 충당해야"
“순수 기초 문화예술의 자양분을 공급해온 문화예술진흥기금(이하 문예기금)이 2017년이면 완전 고갈될 위기에 빠졌습니다. 문화융성 시대에 걸맞은 문화예술 지원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선 문예기금 재원 확충이 시급합니다.”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1일 만난 권영빈 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위원장(사진)은 “이 상태로 방치하면 2017년에는 문화예술 예산 편성이 불가능하다”며 “당장 내년부터 재원 확충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인 출신으로 중앙일보 사장을 지낸 권 위원장은 2012년 3월부터 문예위를 이끌고 있다. 그는 “영화관 입장 수입의 6%가량을 문예기금으로 조성했던 모금제도가 2003년 폐지되면서 기금 고갈은 예견돼 있었다”며 “관계 기관들이 그동안 매년 적립기금을 헐어 모자란 사업비를 충당하는 데 급급했을 뿐 문예기금 안정화 대책에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문예위는 박정희 정부가 1973년 문예 진흥을 위해 미국 국립예술기금(NEA)을 본떠 설립한 문화예술진흥원이 전신이다. 2005년 약 5000억원의 적립금을 근간으로 하는 위원회 체제로 재출범했다. 문예기금 적립금은 매년 200억~300억원씩 감소해 지난해 말 2395억원으로 줄었고, 올해 문화융성 정책 기조에 따른 사업비 증가로 올해 말 1529억원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올해 문예기금 지출은 2006억원인 데 비해 수입은 복권기금과 경륜·경정 수익금 전입, 기부금, 이자 수입 등을 합쳐 1140억원이다. 모자란 사업비 866억원은 적립기금에서 충당한다. 이런 수입·지출 구조가 지속된다면 2017년께 적립기금은 바닥을 드러낸다.

권 위원장은 “적립된 기금을 잘 운용해 그 수익금으로 투자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연간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매년 문화예술 지원 규모가 최소 2000억원이 유지되려면 연간 10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할 수 있는 안정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확충 방안으로 국고 출연 250억원, 복권 기금 250억원 추가 전입,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인 관광·체육기금 500억원 전입을 제시했다.

권 위원장은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 투자의 성공 사례로 영국을 들었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무명 시절 원고 뭉치를 들고 출판사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1997년 영국 예술위원회의 출판지원기금 4000만원을 받고서야 해리 포터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영국 예술위원회는 연간 약 1조3000억원을 창작 지원 등 문화예술 진흥에 사용하고 이 중 65%의 재원은 국고에서 지원받는다.

권 위원장은 “영국이 문화예술로 세상을 바꾸고 돈을 벌 수 있는 문화융성의 전성기를 맞은 것은 1997년 토니 블레어 정부부터 시작된 정책적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며 “문학 연극 등 기초 문화예술은 시장실패 영역으로 국가재정의 안정적인 투입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금이 완전히 고갈된 이후부터 제로 베이스에서 국고 지원을 논의하면 문화예술 지원에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미리 안정된 재원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송태형/사진=정동헌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