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합의 실패 이후 10일이 지났다. 유가는 그동안 11.9%(WTI 기준)나 더 추락했다. 배럴당 60달러까지 떨어질 태세다. 유가 급락의 쓰나미는 가공할 만하다. 산업계는 물론 금융 재정 정치 외교 안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쓰나미는 육지로 다가올수록 커진다.

우선 공급자 시장의 대격변이 눈에 띈다. 산유국과 석유 메이저들이 직접 타격을 받고 있다. 유가가 떨어지면서 당장 석유 메이저들 간 M&A 풍문이 들려온다. 시장에서는 로열더치셸이 영국의 BP를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벌써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BP는 지난 6월 이후 주가가 20%가량 떨어진 상황에서 M&A 풍문을 타고 있다. 로열더치셸 역시 업황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원유와 가스 생산규모는 10년 전보다 낮은 수준이다.

다른 메이저들도 마찬가지다. 대형 유전 개발계획을 취소하고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한때 메이저라고 불렸던 강자들의 위신이 추풍낙엽이다. 물론 중소 정유업계나 미국 셰일업계도 M&A 소식은 요란하다. 주가가 반토막 난 에너지 중소기업들이 매물화하고 있다. 셰일가스 생산업체들은 벌써부터 대거 사망명단에 포함됐다. 공급이 폭발하면서 시장을 지배하려는 혈투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산유국들도 마찬가지다. OPEC 합의 실패 이후 러시아는 물론이고 베네수엘라나 나이지리아 말레이시아 등 모든 산유국들의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심지어 경제가 튼튼한 노르웨이마저 크로네 가치가 최근 3개월 만에 10%가량 떨어졌다. 물론 이들 산유국의 재정은 쑥대밭이다. 말레이시아는 재정수익의 20%가 줄어들었다. 이란은 종교재단에까지 세금을 매기는 극약처방을 쓰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내년 1월분 자국산 아라비안 라이트의 가격을 2달러 할인하겠다며 불을 지르고 있다.

석유시장 독점은 무너졌다. 유가는 이제 시장의 결정에 맡겨진 상황이다. 생산자 간 효율성을 놓고 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에는 위험이요 기회다. 지금이야말로 졸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