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년 18시간 회의에 맡겨진 458조…'초라한 수익률' 못 벗어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국민연금 기금운용 '대수술' - 기금본부 개편 급물살
전문성 떨어지는 운용위…공무원들 2~3년마다 순환
美 고교서도 투자하는 헤지펀드에 손도 못대
올 전문인력 채용 0명…"한은처럼 독립성 필요"
전문성 떨어지는 운용위…공무원들 2~3년마다 순환
美 고교서도 투자하는 헤지펀드에 손도 못대
올 전문인력 채용 0명…"한은처럼 독립성 필요"
▶마켓인사이트 12월8일 오후 3시20분
지난 9월5일 정부세종청사 대회의실.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로 기금운용위원회가 열렸다. 헤지펀드를 신규 투자상품으로 편입할지가 논의됐지만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도 못 했다. 한 운용위원이 “기금운용본부는 돈 안 벌어도 됩니다. 괜히 허튼짓 하다 원금 까먹는 일이나 하지 마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미국에선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기금도 헤지펀드에 투자한다”는 찬성론은 묻혀버렸다.
◆‘깜깜이’ 기금운용위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2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공무원(7명), 노동계(3명), 사용자(3명), 가입자(4명), 시민단체(2명), 금융전문가(2명) 등이다. 대표성을 강조하다 보니 대다수가 비전문가다. 기금운용위는 “수익률 결과에 최소 90% 이상의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자산배분과 투자상품을 결정한다”(원승연 명지대 경영학 교수)고 할 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위원들이 1년에 모이는 시간은 길어야 18시간(회당 3시간씩 6회)이다. 450조원의 운용방향이 ‘비전문가들의 18시간 회의’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의 운용시스템에 부족한 점이 많고,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기금운용위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회의에서 논의될 안건을 상정할 복지부 공무원들이 2~3년에 한 번씩 교체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포함된다. 2011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에 맞춰 국민연금 실무운용역들은 헤지펀드 투자를 검토했지만 기금위원회에 상정조차 안 되고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 수익률이 글로벌 8대 연기금 중 최하위인 배경이다.
◆올해 새로 뽑은 운용인력 ‘0’명
복지부가 관할 부처이면서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쥐고 있는 것 역시 문제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라 준정부기관으로 지정돼 있어 운용역들의 연봉과 연간 인력 충원 등이 기재부의 통제 아래 있다. 복지부가 지난해 10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서 기금운용 인력을 올해 80명, 2017년까지 120명 늘리겠다고 발표해 놓고도 올해 새로 뽑은 인력은 ‘0’명이다. 다른 공공기관과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이유로 기재부가 발목을 잡았다.
이에 따라 기금운용 인력을 도와줄 인력도 제대로 뽑지 못하는 상황이다. 투자 업무를 지원하는 인력이 필요하지만, 대부분 공단 소속의 일반직 직원으로 순환 근무를 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 교수는 “기금본부의 팀장급 주요 업무가 공단, 정부, 감사원 등에 제출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라며 “지원 업무도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공단 내 외부 경쟁을 통해 선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기금운용 독립’ 목소리 커져
전문가들은 기금운용본부 독립성과 자율성 제고 방안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재정법 제78조(국민연금기금의 자산운용에 관한 특례)에 ‘국민연금기금은 자산운용을 전문으로 하는 법인을 설립해 여유 자금을 운용하여야 한다’고 규정된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신 교수는 “기금운용공사를 공사에서 떼어내는 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며 “차선책으로 공단 이사장이 기금운용본부장에게 큰 틀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위임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종욱 보건사회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장은 “공운법으로 인해 기금운용 전문가들에게 실적에 따른 성과보수를 주는 게 어렵다”며 “한국은행처럼 공운법 적용을 배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복지부가 기금운용체제 개편을 추진한다고 해도 걸림돌이 만만치 않다. 금융 수익을 높이기보다는 출산·보육, 보건·의료 등에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기금의 단 0.1%만 복지 부문에 투입되고 있다”며 “원금 손실을 피하면서 복지 부문 투자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동휘/좌동욱 기자 donghuip@hankyung.com
지난 9월5일 정부세종청사 대회의실.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로 기금운용위원회가 열렸다. 헤지펀드를 신규 투자상품으로 편입할지가 논의됐지만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도 못 했다. 한 운용위원이 “기금운용본부는 돈 안 벌어도 됩니다. 괜히 허튼짓 하다 원금 까먹는 일이나 하지 마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미국에선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기금도 헤지펀드에 투자한다”는 찬성론은 묻혀버렸다.
◆‘깜깜이’ 기금운용위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2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공무원(7명), 노동계(3명), 사용자(3명), 가입자(4명), 시민단체(2명), 금융전문가(2명) 등이다. 대표성을 강조하다 보니 대다수가 비전문가다. 기금운용위는 “수익률 결과에 최소 90% 이상의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자산배분과 투자상품을 결정한다”(원승연 명지대 경영학 교수)고 할 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위원들이 1년에 모이는 시간은 길어야 18시간(회당 3시간씩 6회)이다. 450조원의 운용방향이 ‘비전문가들의 18시간 회의’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의 운용시스템에 부족한 점이 많고,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기금운용위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회의에서 논의될 안건을 상정할 복지부 공무원들이 2~3년에 한 번씩 교체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포함된다. 2011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에 맞춰 국민연금 실무운용역들은 헤지펀드 투자를 검토했지만 기금위원회에 상정조차 안 되고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 수익률이 글로벌 8대 연기금 중 최하위인 배경이다.
◆올해 새로 뽑은 운용인력 ‘0’명
복지부가 관할 부처이면서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쥐고 있는 것 역시 문제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라 준정부기관으로 지정돼 있어 운용역들의 연봉과 연간 인력 충원 등이 기재부의 통제 아래 있다. 복지부가 지난해 10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서 기금운용 인력을 올해 80명, 2017년까지 120명 늘리겠다고 발표해 놓고도 올해 새로 뽑은 인력은 ‘0’명이다. 다른 공공기관과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이유로 기재부가 발목을 잡았다.
이에 따라 기금운용 인력을 도와줄 인력도 제대로 뽑지 못하는 상황이다. 투자 업무를 지원하는 인력이 필요하지만, 대부분 공단 소속의 일반직 직원으로 순환 근무를 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 교수는 “기금본부의 팀장급 주요 업무가 공단, 정부, 감사원 등에 제출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라며 “지원 업무도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공단 내 외부 경쟁을 통해 선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기금운용 독립’ 목소리 커져
전문가들은 기금운용본부 독립성과 자율성 제고 방안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재정법 제78조(국민연금기금의 자산운용에 관한 특례)에 ‘국민연금기금은 자산운용을 전문으로 하는 법인을 설립해 여유 자금을 운용하여야 한다’고 규정된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신 교수는 “기금운용공사를 공사에서 떼어내는 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며 “차선책으로 공단 이사장이 기금운용본부장에게 큰 틀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위임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종욱 보건사회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장은 “공운법으로 인해 기금운용 전문가들에게 실적에 따른 성과보수를 주는 게 어렵다”며 “한국은행처럼 공운법 적용을 배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복지부가 기금운용체제 개편을 추진한다고 해도 걸림돌이 만만치 않다. 금융 수익을 높이기보다는 출산·보육, 보건·의료 등에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기금의 단 0.1%만 복지 부문에 투입되고 있다”며 “원금 손실을 피하면서 복지 부문 투자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동휘/좌동욱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