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흉부외과 과장(오른쪽)이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기침할 때 통증을 느낀다고 호소하는 10대 남학생에게 기흉 치료를 설명하고 있다.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제공
김정태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흉부외과 과장(오른쪽)이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기침할 때 통증을 느낀다고 호소하는 10대 남학생에게 기흉 치료를 설명하고 있다.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제공
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들어가는 기흉 환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흉 환자는 2만5462명으로 10년 전인 2005년보다 25% 늘었다. 지난해 남성 기흉 환자는 2만1891명으로, 여성 환자(3571명)에 비해 여섯 배 이상 많았다. 비교적 건강한 체력을 갖고 있는 10~20대 남성 환자가 전체 환자의 절반(1만 3021명)에 달했다.

환자 절반은 10~20대 남성

키 훌쩍 자란 10~20대 남성, 가슴 답답함 느낄 땐 기흉 의심해야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민현식 군(19·경기 오산시)은 얼마 전부터 가슴 부위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증상을 자주 느껴 수능이 끝난 뒤 병원을 찾았다. 가슴 부위 통증이 자주 반복됐고 호흡이 불편하거나 기침하는 경우도 있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근육통이나 감기를 예상했던 민군은 뜻밖에 기흉 진단을 받았다. 민군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지만 긴장해서 그런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정태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흉부외과 과장은 “민군은 지난해까지 170㎝에 50㎏ 중반대를 유지했지만 1년 사이 갑자기 키가 자라 185㎝에 60㎏대로 마른 체형이 됐다”며 “짧은 기간 급격하게 키가 자란 10대 후반, 20대 초반 남성이 기흉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폐의 성장이 키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폐 상부가 허혈(피가 부족한 현상) 상태에 빠지거나 약해져 기포(공기주머니)가 생기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폐 표면에서 기포가 터지면 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어들어가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키 훌쩍 자란 10~20대 남성, 가슴 답답함 느낄 땐 기흉 의심해야
호흡곤란 가볍게 여겨선 안 돼

기 흉은 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어들어가면서 늑막강 안에 공기나 가스가 고이는 질환이다. 새어들어간 공기는 폐를 둘러싼 흉강 안에서 움직이면서 어깨·가슴·명치 등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을 느끼게 한다. 또 공기가 새면서 작아진 폐는 호흡곤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 해 2만6000여명이 걸리지만 아직 기흉에 걸리는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요즘에는 주로 키가 크고 마른 남성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성장이 빠르고 폐 길이도 상대적으로 길어졌지만 흉막(폐의 표면 및 흉부를 뒤덮고 있는 막)이 얇아져 외부 압력에 약해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기흉 환자의 절반은 흡연자라는 보고도 있다. 최근 여성 기흉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여성 흡연 인구가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오 태윤 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거나 격렬한 운동 후 숨을 가쁘게 쉬는 것은 복압 상승과 흉부압 상승을 유발한다”며 “이런 압력은 얇은 흉막에 있는 부풀어 오른 기포를 쉽게 터지게 하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방치하면 늑막염 위험

기 흉은 초기에 발견하면 쉽게 치료할 수 있지만 초기 치료를 늦추거나 오랫동안 방치하면 늑막염, 농흉(고름 가슴)으로 진행할 수 있다. 몇 해 전 대학생이 비행기 안에서 가슴 통증을 느꼈지만 며칠 동안 병원을 찾지 않고 고통을 참다가 심장 이상으로 사망한 사례도 있다. 드물긴 하지만 흉강 내에 축적된 공기가 심장을 압박해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다.

높은 고도에서는 폐의 공기주머니가 쉽게 터질 수 있기 때문에 기흉 진단을 받았거나 재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장시간 비행 전에 반드시 병원을 찾아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 교수는 “엑스레이 사진 한 장만으로도 기흉을 쉽게 진단할 수 있다”며 “수능을 마치고 올겨울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젊은 남성은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키 크고 마른 10~20대 남성이 장시간 비행기 여행을 앞두고 흉통이나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느낀다면 반드시 출발 전 병원에서 진료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내시경으로 기포 제거

과거에는 가슴을 열어 기포를 제거하는 개흉술(開胸術)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내시경 기술이 발달하면서 내시경으로 기포를 제거하는 시술법이 기흉 치료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내시경 시술은 1㎝ 내외의 작은 구멍을 3개 정도 내고 진행한다. 회복이 빠르고 흉터 부담이 덜하다. 입원 기간도 4~5일 정도로 짧다.

키 훌쩍 자란 10~20대 남성, 가슴 답답함 느낄 땐 기흉 의심해야
김 과장은 “담배를 끊거나 사고, 부상 등으로 흉부 손상이 있을 때 기흉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진단을 받는 것이 가장 적극적인 예방법”이라며 “최근에는 간단한 시술로도 손쉽게 질환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가슴 통증이 잦다면 되도록 빨리 병원을 찾아 초기 대응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오태윤 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교수, 김정태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흉부외과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