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가 용냄비 전골이 나오자 불고기를 뜨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가 용냄비 전골이 나오자 불고기를 뜨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한국어를 못하면 한국에선 표지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등 생활에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해서 아내와 함께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부임한 뒤 한국어 수업을 다섯 번 들었는데 여전히 발음하는 게 어려워 고생하고 있습니다.”

서울 태평로에 있는 전통 한식집인 ‘운산’에서 지난 15일 만난 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는 “한글은 매우 논리적인 언어로 배울수록 매력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덴마크 외교부에서 일하다 지난 9월 주한 덴마크 대사로 부임했다. 대사로서 첫 부임지다. 리만 대사는 “외교관으로 활동한 아버지 덕에 어릴 때부터 외교관 직업을 꿈꿨다”며 “한국에 오게 됐을 때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국의 첫인상을 묻자 “부임하기 전부터 한국은 매우 인상적인 나라였다”며 “전쟁, 식민지와 같은 아픔을 겪었지만 불과 60년 만에 가장 잘사는 나라 중 하나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리만 대사는 “직접 와 보니 한국이 매우 역동적인 나라라는 점을 확인했다”며 “앞으로 전진하며 역사를 일궈내는 한국인 특유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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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싱싱한 회 맛에 반해

샐러드에 이어 구절판이 나왔다. 연잎을 닮은 넓은 접시 위에 달걀지단, 버섯 등 얇게 저민 속 재료들이 색색이 고운 자태를 뽐냈다. 리만 대사는 “덴마크에서도 아시아 음식을 많이 먹어 봤다”며 능숙한 젓가락질로 속 재료를 차곡차곡 얹어 맛깔스럽게 쌈을 싸 먹었다. 밀전병에 싸서 입에 넣는 것을 보니 보기에도 고소함이 느껴졌다.

“덴마크는 요즘 크리스마스 시즌인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구운 돼지고기 요리인 플레스케스타이, 청어로 만든 마리네어실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푸짐하게 먹는 전통이 있습니다. 한국의 명절과 비슷하죠.”

그는 한국에 와선 주로 한식을 먹는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해산물 요리다. 리만 대사는 “지난달 제주도에 가서 회, 구운 생선, 조개 요리 등 다양한 해산물을 먹었다”며 “속초에 가서 먹은 게 찜도 일품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빔밥이나 매운 한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기회가 되면 코펜하겐에 있는 ‘노마’라는 식당에 가보라고 추천했다. 영국의 요리잡지 ‘레스토랑’이 주관하는 ‘2014 세계 최고 레스토랑 50’에서 1위에 오른 곳이다. “성게, 굴, 이끼 등을 재료로 한 매우 특색 있는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라며 “1년 전에 미리 예약해야 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리만 대사가 한국에 와서 반한 것은 음식뿐이 아니다. 철마다 색다른 매력을 뽐내는 산에 오르는 것도 좋아한다. 그는 “지난 10월 아내와 함께 오른 설악산이 인상적이었다”며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울산바위까지 오르면서 힘든 줄 몰랐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성북동 관저 근처의 북한산을 자주 오른다고 한다.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 개혁과 성장 필요

지난해 유엔에서 발표한 ‘세계 행복지수 보고서’에서 덴마크는 2012년에 이어 156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덴마크가 가장 행복한 나라로 뽑힌 이유는 다양하다.

리만 대사는 “무엇보다 국민이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끼고 서로 믿고 살기 때문”이라며 “한국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번쯤 멈춰 뒤를 돌아보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높은 복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세금 부담에 대한 반발은 없는지 묻자 리만 대사는 “덴마크 사람들은 정부를 믿기 때문에 행복하게 세금을 낸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세금에 관심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높은 세금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며 “무상교육, 의료, 노인복지 등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번 정해진 복지제도가 영원한 것은 아니다. 리만 대사는 “복지가 지속되려면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복지제도를 개혁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며 “개혁 과정에서 혜택이 줄면 국민의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지만 길게 보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덴마크 정부는 높은 복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성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게 리만 대사의 설명이다. 그는 “덴마크의 법인세는 24.5%로 낮은 수준이 아니지만 앞으로 2년간 22%까지 낮출 예정”이라며 “(행정 전반의) 투명성이 높은 편이어서 세금 외에 부가적으로 드는 비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노동력의 질이 좋은 것도 덴마크의 강점 중 하나다. 이를 두고 리만 대사는 “덴마크의 독특한 교육 제도 덕분”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덴마크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중 45%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그는 “대학 외에 직업교육, 기술, 농업 등 산업 여러 부문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배울 수 있는 교육 과정이 많다”고 설명했다.

제육 대나무통 찜이 상에 올랐다. 대나무통에 넣고 찐 돼지고기와 함께 새우젓, 절인 배추, 김치소가 나왔다. 보쌈과 비슷하지만 고기에서 은은한 대나무 향이 배어 나왔다. 리만 대사는 새우젓을 올려 돼지고기를 먹으며 이 돼지는 덴마크에서 온 것이라고 소개했다.

“덴마크에서 키우는 돼지는 2000만마리에 달합니다. 인구가 500만명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죠. 덴마크에서는 삼겹살을 먹지 않아 대부분 한국으로 수출합니다. 덴마크는 먹지 않는 부분을 수출해 돈을 벌고 한국은 싼값에 질 좋은 고기를 수입할 수 있어 서로에게 좋은 거래입니다.”

덴마크가 농업 강국이 된 것도 농업 교육을 하는 전문학교를 만들고 인재를 양성한 결과라고 그는 설명했다. 덴마크에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농부가 되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학교, 고등학교 졸업 후 농업 지식을 배우는 전문학교가 있다.

◆덴마크와 한국 더 가까워지길

주한 덴마크 대사로서 바라는 게 뭐냐고 묻자 한국을 떠날 때가 되면 부임할 때보다 두 나라 사람들이 더 자주 만나고 가깝게 지내길 바란다고 답했다. 그가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것은 서울과 코펜하겐 사이의 직항 노선 신설이다. 리만 대사는 “코펜하겐 직항이 생기면 양국 간 관광객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덴마크의 자연과 음식 등을 한국인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덴마크를 알리기 위한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0월엔 대전 KAIST에서 덴마크 펌프회사 그런포스가 후원한 대학생 캠프를 열기도 했다. 덴마크와 한국 대학생이 10명씩 모여 상업건물 에너지 효율 극대화를 위한 솔루션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리만 대사는 “한국 학생들은 매우 똑똑하고 열정적”이라며 “덴마크 학생들과의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참여 학생들은 덴마크와 해당 기업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기업은 아이디어를 얻고 미래 인재와 교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소셜미디어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리만 대사는 “트위터(twitter.com/dkambinkorea)를 통해 한국 국민과 대사로서의 경험을 나누고 싶다”며 “더 많은 사람이 덴마크에 관심을 갖고 덴마크를 찾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덴마크 여행의 진수는 자전거 타며 돌아다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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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 대사는 덴마크를 여행할 때 제일 좋은 방법은 “자전거를 타고 코펜하겐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펜하겐 사람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며 “건강에도 좋고, 시내 곳곳을 효율적으로 다닐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덴마크 대표적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고향과 박물관을 찾아가 볼 것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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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 대사의 단골집 운산 한식의 맛과 멋 살린 '용냄비 전골'…덴마크 여왕도 방문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 1층에 있는 ‘운산’은 전통 한식당이다. 김윤영 대표는 1960년대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요리에 대한 안목을 높였다. 덴마크에서도 10년 넘게 생활했다. 1987년 한국에 돌아와 어머니인 최상옥 요리연구가가 운영하던 용수산에서 한정식을 배웠다. 2003년 여의도에서 운산을 처음 열었고 지금은 광화문, 서초점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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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은 한식의 맛뿐 아니라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신경 쓴다. ‘용냄비 전골’이라는 메뉴는 김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용무늬 놋그릇에 불고기를 담아낸다. 2007년 덴마크 여왕이 방한했을 때도 이곳에서 식사하는 등 덴마크와 인연이 깊다.

입맛 돋우기(전채요리)와 물김치, 인삼 닭가슴살 샐러드, 구절판, 탕평채, 생선회, 새우 완자 조개탕, 제육 대나무통 찜, 궁중 2색 전유화, 주머니 속 매운 닭볶음, 후식 등으로 이어지는 저녁 ‘경복 코스’는 4만9000원. 그 밖의 저녁 코스는 메뉴에 따라 6만9000~9만8000원이다. 점심은 한상차림 정식인 12색 궁중 비빔밥 정식(3만9000원)을 비롯해 메뉴에 따라 8만2000원짜리까지 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