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팬오션을 미국 카길과 같은 곡물 메이저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집무실 벽은 닭 모양의 조형물로 가득 차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팬오션을 미국 카길과 같은 곡물 메이저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집무실 벽은 닭 모양의 조형물로 가득 차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닭고기 회사가 왜 해운 회사를 인수하려고 합니까.”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57)이 국내 1위 벌크선사인 팬오션 매각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지난 19일 판교 사옥 집무실에서 김 회장과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이런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김 회장은 팬오션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이전에 이미 ‘뉴스의 인물’이 됐다. 11월18일 프랑스 오세나 경매소에서 나폴레옹의 이각 모자를 26억원에 사들여 화제가 됐다. 올초부터 한국중견기업연합회 규제개혁위원장을 맡아 정부에 ‘쓴소리’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열한 살 때 외할머니에게서 선물로 받은 병아리 10마리로 시작해 고등학교 3학년 때 닭 4000마리를 키우는 양계 사업체를 차리고, 이제는 매출 4조8000억원의 대형 식품그룹을 이끄는 그는 해운업 진출로 또 한 번의 커다란 도전을 앞두고 있다.

▷법원이 지난 17일 하림그룹을 팬오션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습니다. 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한 달가량 세부 실사를 하고 채권단 회의도 거칩니다. 팬오션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이기 때문에 정리가 잘 돼 있어 인수 과정이 순조로울 것으로 봅니다. 내년 4월쯤 본계약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닭고기 회사가 왜 해운 회사를 인수하려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림그룹은 닭고기 회사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보다는 사료가 주력 업종입니다. 전체 4조8000억원의 매출 중 사료 부문이 1조4000억원, 닭고기는 1조1000억원입니다. 사료 원료는 옥수수, 대두박, 판박 등의 곡물인데 95%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카길 같은 미국 곡물 메이저나 일본의 대형 종합상사에서 사고 있습니다. 10여년 전부터 우리가 직접 곡물 메이저를 해야겠다는 게 제 꿈이었습니다.”

▷곡물 메이저와 해운회사 인수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곡물 가격의 구조를 보면 심할 때는 곡물 원가와 운송비가 같을 정도로 운송비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배 운임이 곧 곡물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운송비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거죠. 10여년간 사료 원료인 곡물을 수입하면서 이런 구조를 터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배를 갖고 운송을 직접 맡으면 운임 변동에 휘둘리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팬오션 인수 효과가 클 것 같습니다.

“팬오션은 2007년 전 세계 해운 회사 중 곡물 수송량이 가장 많았던 회사입니다. 이런 물류 노하우에 사료 원료 곡물을 수입하는 하림의 수요 기반을 더하면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하림이 연간 1조원 정도의 곡물을 수입하고 있는데 공동 구매하는 기업의 물량까지 합하면 팬오션에 연간 2조원 정도의 일감이 새로 생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이나 브라질의 전문가들을 채용해 곡물 시장에서 직접 곡물을 구입하면 제가 꿈꾸던 곡물 메이저의 틀을 갖출 수 있습니다. 미국의 카길도 용선 500척으로 자사 물량을 직접 운송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카길’이란 비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들립니다.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카길은 엄청난 회사죠. 연매출 140조원으로 미국의 비상장 회사 중 가장 큰 회사입니다. 규모에서야 비교가 안 되지만 팬오션을 인수하면 곡물 구입·운반부터 축산·가공, 유통에 이르기까지 카길과 같은 사업 구조를 갖추게 됩니다. 일본의 곡물 수입량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에도 2개 정도의 곡물 메이저가 있어야 합니다. 곡물 메이저가 있어야 국가의 식량 안보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해운 경기가 불황이라 두려움도 있을 텐데요.

“닭고기처럼 시세에 민감한 품목을 다루면서 느낀 것인데 모든 비즈니스에는 사이클이 있죠. 지금 좋다는 것은 미래에 나쁘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고,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하죠. 제가 2011년 미국 닭고기 가공업체 앨런 패밀리푸드를 인수할 때 다들 ‘미친놈’이라고 했어요. 그때 7개 사업장을 샀는데, 그중 하나는 560만달러에 인수해 1년6개월 뒤 3860만달러에 팔았습니다. 국내에서 인수한 팜스코는 주가가 11배 올랐고요. 팬오션은 곡물 외에 이미 고정적인 일감을 확보하고 있고 유가도 하락 추세에 있어 상당히 좋게 보고 있습니다.”

▷용기 있는 투자 결정을 기업가 정신이라고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업가 정신의 요체는 모험심입니다. 용기를 갖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미래에 도전하는 일입니다. 기업을 다수결 논리로 운영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다수결 논리는 현상만 좇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죠. 그건 기업이 아니라 협동조합입니다. 기업가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고, 외롭게 결정하고, 직원들을 그 길로 끌고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장님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저는 바닥부터 경험을 쌓았습니다. 열한 살 때 외할머니가 준 병아리 10마리를 키운 게 밑천이 돼 고등학교 3학년 때 닭 4000마리를 키우는 양계 업체를 차렸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지옥 문앞에까지 가는 세 번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스물한 살 때 축산물 파동이 나는 바람에 한 번 망했고, 외환위기 때도 부도 직전까지 갔고, 2003년엔 공장 화재에 조류인플루엔자까지 겹쳐 1200억원의 손실을 봤습니다. 그때 고통은 잠자리에서 뼛속까지 땀이 나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위기를 극복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어요. ‘어려움은 나쁜 게 아니다.’ 시련을 겪는 게 대학 경영학과 한 번 졸업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라는 걸.”

▷그런 세 번의 큰 위기를 넘긴 원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적성에 맞는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안은 어머니부터 형제들까지 모두 교육자 입니다. 제가 농업고등학교를 간다고 했을 때 어머니와 하도 싸워서 가출까지 했습니다. 저는 사업해서 돈 버는 게 너무 좋았어요. 사업은 하나님이 제게 준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성에 맞는 일을 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적성에 맞으면 일하는 게 아니라 노는 거예요. ”

▷최근 경매에서 나폴레옹 모자를 26억원에 낙찰받아 화제가 됐습니다.

“제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분이 나폴레옹입니다. 나폴레옹은 1%의 가능성에도 도전하는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며 자기한테 오는 기회를 다 쫓아냅니다. 저는 지금도 나폴레옹 책을 곁에 두고 틈틈이 읽습니다. 그 나폴레옹의 모자가 경매에 나왔다는 뉴스를 보고 바로 ‘내가 사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모자가 아니라 나폴레옹의 정신을 산 거죠.”

▷그래도 26억원이면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경매 시초가가 5억~6억원이어서 7억원 정도면 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박물관과 경쟁이 붙으면서 가격이 올라갔어요. 88년 전 모나코 왕실에서 산 걸 이번에 내놓은 것인데 모나코 왕실의 구입가를 쌀값으로 환산하니까 지금 돈으로 200억원이 넘습니다. 사옥 로비에 전시해 청소년들에게 도전 정신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 김홍국 회장은…
11살 때 병아리 10마리가 밑천…46년째 축산업 ‘외길 인생’

열한 살 때 외할머니에게서 선물로 받은 병아리 10마리가 밑천이 돼 올해로 46년째 축산업 한길을 걸어왔다. 닭과 돼지를 키우는 농가를 운영하다가 돼지고기 값이 떨어져도 소시지 가격은 그대로라는 데 착안해 1986년 하림식품을 설립, 사료·사육·가공에 이르는 ‘통합 경영’을 시작했다. 2001년 천하제일사료를 인수하고 NS홈쇼핑을 설립하는 등 사업 분야를 확대해 하림그룹을 출범시켰다.

△1957년 전북 익산 출생 △1978년 이리농림고등학교 졸업 △1978년 황등농장 설립 △1986년 (주)하림식품 설립 △1990년 (주)하림 설립 △1993년 ‘신한국인’ 선정 △1998년 호원대 경영학과 졸업 △2000년 전북대 경영대학원 석사 △2001년 하림그룹 회장 △2005년 전북대 경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6년 금탑산업훈장 △2014년 한국중견기업연합회 규제개혁위원장

좌동욱/강진규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