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사면·가석방 논의 급속 확산…왜?
당정(黨政) 핵심 인사들이 기업인의 가석방 필요성을 잇따라 제기하자 재계도 가라앉은 경제 분위기를 반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20대그룹의 한 오너 경영인은 “대기업 오너 경영인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기업인들의 가석방 자체가 기업가 정신을 살리는 데 좋은 사인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한나라당 대표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목소리로 경제활성화를 위해 기업인 사면·가석방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 대표는 “경제위기 속에서 기업의 투자결정은 총수만이 할 수 있다”며 “경제위기 극복 방안의 하나로 수감 중인 기업인들의 사면이나 가석방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땅콩 회항’으로 재벌 오너가에 대한 국민 감정이 악화돼 있는 상황에서 총수 사면 논의가 적절하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두 가지 사안은 완전히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최경환 부총리도 기업인들의 가석방을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9월 이후 여러 차례 기업인 가석방과 사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조차 25일 기자단 오찬에서 “기업인을 우대하는 것도 나쁘지만 불이익을 주는 것도 안 된다”며 “일반 범죄인들은 일정 기간 복역하면 다 가석방해준다”며 기업인 역차별 문제를 거론했다.
기업인 사면·가석방 논의 급속 확산…왜?
재계는 경제민주화 광풍이 부는 가운데 가혹할 정도의 중형을 선고받은 측면이 있는 만큼 요건을 갖춘 기업인들을 가석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최태원 SK 회장은 다음달이면 만 2년을 복역한다. 대기업 회장 중 최장기 복역이다. 아프다는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반성하면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교도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사업 차질 측면에서도 가석방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SK그룹은 작년 초 최 회장 구속 후 STX에너지와 경비업체 ADT캡스 인수를 검토했다가 막판에 포기했다. SK에너지를 통해 호주 유나이티드페트롤리엄(UP) 지분을 인수하려던 계획도 접었다. 최 회장이 주도해 온 글로벌 사업이 ‘올스톱’된 상태다.

2011년 6조606억원이던 SK그룹 투자 규모는 지난해 4조928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도 “한국 대기업의 특성상 오너가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고, 빈칸을 전문경영인들이 메워야 하는데 한 축(오너)이 비어 있으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구속수감 중인 기업인 가운데 가석방 요건(법정 형기의 3분의 1을 채워야 함)을 충족한 기업인은 최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부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이다.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중병을 치료하면서 내년까지 재판을 받아야 한다.

CJ도 총수 부재로 적지 않은 사업 차질을 빚고 있다. 올 상반기 1조3700억원 투자계획 중 4800억원을 보류했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미국과 인도의 물류업체 인수 추진 중 협상 단계에서 중단했다.

이 밖에 이호진 전 태광 회장은 징역 4년6개월의 실형이 확정된 후 간암 진단을 받고 63일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나 간이식 수술 대기 중이다. 아직 가석방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수출 중심의 기간산업이 흔들리며 위기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새 경제팀의 정책 약발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며 “경기를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당정 핵심 인사들이 가석방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활성화에 일조하라는 취지에서 기업인을 가석방하면 해당 기업뿐 아니라 다른 기업인들의 의욕을 북돋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수진/박영태/강진규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