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로 변한 수도권 규제] 수도권 떠난 기업 '37벨트'에 다닥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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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아산·당진에만 몰려…일그러진 '국토균형발전'
특정지역 몰아넣는 수도권 규제 명분 상실
특정지역 몰아넣는 수도권 규제 명분 상실
규제는 필연적으로 ‘절벽효과’를 가져온다. 중소기업 지원 확대, 대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가 중소기업 사이에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려는 ‘피터팬 신드롬’을 야기하듯이 수도권 규제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규제를 피해 북위 37도선을 중심으로 경기 남쪽 경계에만 다닥다닥 몰려드는, 이른바 ‘37벨트’의 출현이다.
경기 양평군에 있는 의료기기 업체 인성메디칼. 최근 일회용 의료기기 등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생산설비 확장이 시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공장 소재지는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자연보전권역으로 증설이 거의 불가능하다. 팔당호 수질보호 특별대책지역에도 속해 있다. 이 회사는 오는 3월 강원 원주시로 본사와 공장을 옮기기로 했다.
인천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세현정공, 경기 성남시의 반도체 장비업체 와이아이케이도 내년에 충남 아산시로 이전하기로 아산시와 양해각서를 맺었다.
이들이 원주와 아산으로 옮기는 가장 큰 이유는 수도권과 멀리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다. 원주의 위도는 북위 37.2도, 아산은 36.8도. 한 회사 관계자는 “증설을 하려면 자꾸 수도권에서 나가라고 하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처럼 보여도 수도권에서 누릴 수 있는 교통·물류 이점을 활용하려면 경계선에 최대한 붙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7벨트의 이 같은 과열은 수도권 규제의 명분인 국토 균형 발전, 지방분권 확대와 거리가 멀다. 기업 이전도 이만저만 성가신 일이 아니다.
' 37벨트' 충남에만 6년간 713개社 이전
‘37벨트’의 핵심 도시는 경기 이남의 충남 당진시 아산시, 충북 청주시 충주시 음성군, 강원 원주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이 수도권 기업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자리잡으면서 다른 광역자치단체는 수도권 규제의 ‘반사이익’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전 보조금 ‘극과 극’
한 국경제신문이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1년간 수도권 기업이 비수도권으로 옮기면서 받은 국가보조금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국가보조금을 주면 지자체가 해당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 보조금이 가장 많이 지급된 곳은 충남으로 총 138개 기업이 1646억원을 받았다. 국가보조금은 종업원 30인 이상이면서 수도권에서 3년 이상 사업을 영위한 기업을 대상으로 지급된다. 국가보조금 없이 비수도권으로 이전한 기업들까지 포함하면 부지기수다. 충남도청 관계자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총 713개의 수도권 기업을 유치했다”고 말했다. 거꾸로 수도권 시각에서 보면 이 기간에 엄청난 숫자의 기업 유출이 있었다는 얘기다.
보조금이 두 번째로 많이 지급된 지역은 충북이다. 67개 기업에 894억여원이었다. 화학 업체인 핸켈테크놀러지는 수도권 규제로 회사 규모를 키우는 데 제약을 받자 2011년 경기 이천시에서 충북 음성군으로 이전했다. 현대오토넷도 같은 이유로 2010년 이천 공장을 접고 충북 진천군에 공장을 새로 세웠다.
보조금 3위 지역은 109개 기업, 673억여원인 강원이 차지했다. 원주로 이전할 예정인 인성메디칼 관계자는 “수도권에 거주기반을 두고 있는 핵심 기술인력의 이탈을 최소화하려면 원주를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4위와 5위는 각각 636억여원과 437억여원을 기록한 전북과 전남이었다. 반면 부산, 경북, 경남으로의 기업 이전은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울산은 아예 ‘제로’였다.
◆제약사 “충청권이 마지노선”
수도권 규제를 피해 ‘37벨트’로 이동하고 있는 기업 가운데 유독 제약회사가 많다. 제약사는 일반적으로 생산 시설과 연구개발(R&D)센터를 함께 운용하기 때문에 공장 이전 시 전문인력 유출을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앞서 인성메디칼과 비슷한 여건이라는 얘기다.
제약사들의 충청권행은 2008년 이후 봇물을 이뤘다. 동화약품이 2008년 말 경기 안양에서 충북 충주로 옮겼고 같은 해 중외제약도 안양에서 충남 당진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2010년에 일양약품이 충북 음성에 새로 자리를 잡았고 녹십자와 유한양행은 충북 청주를 선택했다. 유유제약과 우리팜제약 등 중소 제약사도 충북 제천에 공장을 지었다. 보령제약은 올 하반기에 안산 생산 공장을 충남 보령으로 옮길 예정이다.
정부도 최근 이 같은 쏠림을 완화하기 위해 ‘37벨트’ 내 지자체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점차 줄여나가고 있다. 충남을 예로 들면 수도권에 인접한 천안과 아산 당진에는 전체 보조금의 45%만 지급한다. 나머지 55%는 해당 지자체가 부담한다. 반면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멀어 지원 우선 지역으로 분류된 충남 금산과 예산 등은 전체 보조금의 25%만 부담하고 나머지 75%는 중앙정부가 보조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획일적 규제와 보조금 지급 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김은경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특정 지역에만 기업들을 쓸어넣는 수도권 규제는 정책적 명분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며 “상대적으로 소외된 경북과 경남의 불만을 해소하려면 충청권 규제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정인설/김재후 기자 surisuri@hankyung.com
경기 양평군에 있는 의료기기 업체 인성메디칼. 최근 일회용 의료기기 등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생산설비 확장이 시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공장 소재지는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자연보전권역으로 증설이 거의 불가능하다. 팔당호 수질보호 특별대책지역에도 속해 있다. 이 회사는 오는 3월 강원 원주시로 본사와 공장을 옮기기로 했다.
인천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세현정공, 경기 성남시의 반도체 장비업체 와이아이케이도 내년에 충남 아산시로 이전하기로 아산시와 양해각서를 맺었다.
이들이 원주와 아산으로 옮기는 가장 큰 이유는 수도권과 멀리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다. 원주의 위도는 북위 37.2도, 아산은 36.8도. 한 회사 관계자는 “증설을 하려면 자꾸 수도권에서 나가라고 하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처럼 보여도 수도권에서 누릴 수 있는 교통·물류 이점을 활용하려면 경계선에 최대한 붙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7벨트의 이 같은 과열은 수도권 규제의 명분인 국토 균형 발전, 지방분권 확대와 거리가 멀다. 기업 이전도 이만저만 성가신 일이 아니다.
' 37벨트' 충남에만 6년간 713개社 이전
‘37벨트’의 핵심 도시는 경기 이남의 충남 당진시 아산시, 충북 청주시 충주시 음성군, 강원 원주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이 수도권 기업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자리잡으면서 다른 광역자치단체는 수도권 규제의 ‘반사이익’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전 보조금 ‘극과 극’
한 국경제신문이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1년간 수도권 기업이 비수도권으로 옮기면서 받은 국가보조금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국가보조금을 주면 지자체가 해당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 보조금이 가장 많이 지급된 곳은 충남으로 총 138개 기업이 1646억원을 받았다. 국가보조금은 종업원 30인 이상이면서 수도권에서 3년 이상 사업을 영위한 기업을 대상으로 지급된다. 국가보조금 없이 비수도권으로 이전한 기업들까지 포함하면 부지기수다. 충남도청 관계자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총 713개의 수도권 기업을 유치했다”고 말했다. 거꾸로 수도권 시각에서 보면 이 기간에 엄청난 숫자의 기업 유출이 있었다는 얘기다.
보조금이 두 번째로 많이 지급된 지역은 충북이다. 67개 기업에 894억여원이었다. 화학 업체인 핸켈테크놀러지는 수도권 규제로 회사 규모를 키우는 데 제약을 받자 2011년 경기 이천시에서 충북 음성군으로 이전했다. 현대오토넷도 같은 이유로 2010년 이천 공장을 접고 충북 진천군에 공장을 새로 세웠다.
보조금 3위 지역은 109개 기업, 673억여원인 강원이 차지했다. 원주로 이전할 예정인 인성메디칼 관계자는 “수도권에 거주기반을 두고 있는 핵심 기술인력의 이탈을 최소화하려면 원주를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4위와 5위는 각각 636억여원과 437억여원을 기록한 전북과 전남이었다. 반면 부산, 경북, 경남으로의 기업 이전은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울산은 아예 ‘제로’였다.
◆제약사 “충청권이 마지노선”
수도권 규제를 피해 ‘37벨트’로 이동하고 있는 기업 가운데 유독 제약회사가 많다. 제약사는 일반적으로 생산 시설과 연구개발(R&D)센터를 함께 운용하기 때문에 공장 이전 시 전문인력 유출을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앞서 인성메디칼과 비슷한 여건이라는 얘기다.
제약사들의 충청권행은 2008년 이후 봇물을 이뤘다. 동화약품이 2008년 말 경기 안양에서 충북 충주로 옮겼고 같은 해 중외제약도 안양에서 충남 당진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2010년에 일양약품이 충북 음성에 새로 자리를 잡았고 녹십자와 유한양행은 충북 청주를 선택했다. 유유제약과 우리팜제약 등 중소 제약사도 충북 제천에 공장을 지었다. 보령제약은 올 하반기에 안산 생산 공장을 충남 보령으로 옮길 예정이다.
정부도 최근 이 같은 쏠림을 완화하기 위해 ‘37벨트’ 내 지자체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점차 줄여나가고 있다. 충남을 예로 들면 수도권에 인접한 천안과 아산 당진에는 전체 보조금의 45%만 지급한다. 나머지 55%는 해당 지자체가 부담한다. 반면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멀어 지원 우선 지역으로 분류된 충남 금산과 예산 등은 전체 보조금의 25%만 부담하고 나머지 75%는 중앙정부가 보조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획일적 규제와 보조금 지급 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김은경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특정 지역에만 기업들을 쓸어넣는 수도권 규제는 정책적 명분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며 “상대적으로 소외된 경북과 경남의 불만을 해소하려면 충청권 규제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정인설/김재후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