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대기업 공채에 합격한 박모씨(27)는 대학 재학 시절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창업한 적이 있다. 창업 경력이 있으면 취업 때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선배들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친구에게 의뢰해 ‘맛집 소개’ 사이트를 만들었고, 여름방학 때만 잠시 운영하다가 사업을 접었다. 그런데도 이 경험은 ‘인생에서 맛본 가장 큰 실패’로 그럴듯하게 각색돼 그의 자기소개서에 포함됐다. 박씨는 “단기간에 인상적인 이력을 만들기 위해 창업했는데 취업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고 고백했다.

취업용 2개월짜리 창업…'유령 스타트업' 기승
취업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겨났다가 곧 사라지는 스펙용 ‘유령’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기업들이 인재 채용 시 창업 경력에 일정한 가산점을 주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는 허점을 활용한 것이다.

취업 준비생인 이모씨(28)는 지난해 7월 대학생이 창업한 스타트업의 마케팅 인턴으로 활동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한 경력이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서 월급 5만원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이씨는 하숙집을 돌아다닌 뒤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일을 했다.

그런데 정작 창업자는 회사 운영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영어학원을 다니며 취업 준비에만 몰두했다. 창업자는 결국 한 대기업에 입사했고, 스타트업은 5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이씨는 “하숙집을 연결하는 앱 등을 개발한다고 했지만 아무 성과가 없어 이상하게 생각했다”며 “결국 유령 스타트업에 속아 시간만 낭비한 셈”이라고 말했다.

유명 포털사이트 취업 커뮤니티 등에선 스타트업을 함께할 팀원을 구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타트업은 좋은 취업 경력이 된다’ ‘창업에 관심이 없더라도 취업 스펙을 위해 참여해도 좋다’는 글이 적지 않다. 단기 스타트업 창업으로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경험을 소개하기도 한다.

‘가짜’ 스타트업의 출현은 기업 채용 방식과 연관돼 있다. SK 이랜드 등 일부 대기업이 창업 경험을 서류전형 양식에 포함하자 이에 맞는 경력을 갖추기 위해 취업용 스타트업 창업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연세대 창업지원센터 관계자는 “최근 스타트업 관련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스펙용으로 양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템의 발전 가능성 등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성 취업컨설턴트는 “허위 스타트업 경험은 취업 면접에서 면접관 역량이나 지원자의 운에 따라 들키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다”며 “기업이 지원자가 내세우는 창업 경험에 대해 증빙자료를 요구하는 등 철저하게 검증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태호 선한결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