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돌파] 김영기 휴롬 회장, 10년간 수천번의 실패가 '세상에 없는 원액기' 만든 힘
“영기야, 영기야.”

어머니는 시시때때로 초등학생(당시 국민학생)인 영기를 찾았다. 무언가 고장 났거나 칼이 잘 들지 않을 때였다. 어머니 말을 들은 소년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어김없이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들려 있었다. 영기의 손을 거치면 부러진 손잡이가 새것처럼 바뀌었고, 버려진 물건은 유용한 물품으로 변했다. 어른들은 영기에게 ‘뚝딱대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로부터 45년 뒤. 그는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었다. 매출 3000억원을 내는 휴롬 원액기(주서기)다. 김영기 휴롬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며 “(신제품) 개발은 취미이자 일이고 특기였다”고 말했다.

“남들 따라해봐야…”

연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1974년 창업했다. 당시는 국내 전자업체들이 일본에서 거의 모든 부품을 들여다 TV를 조립해 팔던 때였다. 그는 ‘일본 사람들이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국산 부품을 만들었다. 그 제품을 금성사(현 LG전자) 등에 납품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노력을 좋게 봐주지 않았다. 엔지니어 김영기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남들이 만든 것을 따라해봐야 별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서양인이 만들지 않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이때부터 그는 새로운 제품을 궁리했다. 당시 그는 건강에 관심이 많았다. 폭음하는 술 문화 때문에 힘들어하는 직장인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일부 주부는 케일 등을 갈아 남편에게 먹이고 있었다. 그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음식을 자연 그대로 섭취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를 만들면 건강에도 좋고 잘 팔리겠다.”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먹으려면 찧거나 짜서 먹는 기계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녹즙기 애써 개발했지만…

그는 제품 개발에 대해 “7전8기가 아니라 수천 번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구상한 것을 도면으로 그리고, 선반으로 깎고, 가공해서 만들고 또 만들었다. 10년간 그렇게 반복했다. 그는 “수천 번 만들고 부수면서 조금씩 개선되는 것을 느꼈다. 그 쾌감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 개발에 중독된 사람 같았다.

1990년대 중반 녹즙기 개발에 마침내 성공했다. 반응도 좋았다. 녹즙기로 채소나 과일을 즙을 내 마셨더니 불치병이 나았다며 자료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짝퉁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저가 저질 제품이 넘쳐나며 시장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녹즙기에서 중금속이 나온다는 내용이 방송을 타기도 했다. 쇠끼리 부딪치면서 나오는 쇳물이 문제였다. 소비자의 반응이 급속히 싸늘해졌다. 김 회장이 만든 제품은 기어가 하나여서 이런 문제가 없었지만, 분노한 소비자에게 기어가 몇 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녹즙기 시장은 사실상 끝이었다.

“글로벌 시장으로 간다”

그는 제품 개발에 다시 몰두했다. 2000년 ‘오스카 만능 녹즙기’를 세상에 내놨다. 양념도 갈고, 국수도 뺄 수 있는 다용도 제품이었다. 한 홈쇼핑 방송이 2000년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선정했을 정도로 잘 팔렸다. 하지만 영업소장을 하던 한 직원이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홈쇼핑에 직접 나와 팔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소송으로 맞섰다. 몇 년간 소송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사이 수요는 급속히 줄었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세계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작은 국내 시장에서 치고받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 채소보다 과일을 갈아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서양인의 식습관을 감안해 과일에 최적화한 스크루(압축기)를 개발했다. 회전을 천천히 해 지그시 짜는 듯한 효과를 내게 했다. 과일이나 채소의 영양소를 덜 파괴하고, 재료 특유의 색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서였다.

김 회장은 “대포처럼 생긴 녹즙기가 아닌 디자인 감각을 담아 만든 것이 지금의 휴롬”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일이다.

“소형 주방가전 대표 되겠다”

이후 휴롬은 웰빙 바람을 타고 쑥쑥 성장했다. 지난해 주서기 한 품목으로 매출 3000억원을 기록했다. 김 회장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보겠다고 녹즙기를 개발한 뒤 수십년을 투자한 결과”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여러 경험을 통해 ‘브랜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유사 제품에 밀리지 않으려면 ‘브랜드 파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5년 안에 휴롬이라는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지 못하면 회사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이나 설탕을 일절 쓰지 않고 채소와 과일 원액만으로 만든 주스를 파는 ‘휴롬팜’이란 카페를 최근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올해부터는 주스를 용기에 담아 판매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훗날 휴롬 때문에 인류의 평균수명이 몇 년 늘어났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쌍둥이칼로 유명한 독일 헹켈처럼 소형 주방가전의 대표적 브랜드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공장을 더 큰 부지로 옮겨 협력업체들을 다 불러들이고 유치원과 탁아소 등을 짓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기존 건물은 요양원으로 만들 계획이다. “평생 회사를 위해 일한 사람들이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도록 좋은 요양시설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하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데 평생을 걸면 뭔가 해낼 수 있다”며 “쉽게 하려고 하거나 남이 잘 된다고 따라가다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휴롬은…
원액기 하나로 매출 3000억
中시장 넘어 해외진출 본격화


[한계돌파] 김영기 휴롬 회장, 10년간 수천번의 실패가 '세상에 없는 원액기' 만든 힘
휴롬은 채소와 과일을 갈아 마시는 믹서와 달리 스크루를 통해 재료를 지그시 눌러 짜내는 ‘저속 착즙 방식’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렇게 짜서 주스를 마시면 재료의 영양소 파괴가 최소화되고 색과 향도 잘 유지되기 때문이다. 찌꺼기가 거의 없어 목 넘김이 좋고 과일의 씨나 껍질이 걸러져 맛도 믹서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장점으로 2010년 591억원이던 휴롬 매출은 지난해 3000억원을 넘길 정도로 급성장했다. 올해는 5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에서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중국에서는 국내보다 제품 판매가격을 높게 책정해 파는데도 올해 2500억원 매출을 기대할 만큼 반응이 좋다. ‘주서기라는 단일 제품을 통해 중견기업에 오른 휴롬은 제품군을 늘리지 않는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제품 수를 늘리기보다는 ‘휴롬을 모르는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토를 넓혀가겠다’는 구상이다.

■ 김영기 회장은…

△1949년 경남 김해 출생 △1974년 연세대 전기공학과 졸업 △1974년 TV 부품 제조업체 개성공업사 설립 △1979년 전자부품 및 주방기구 제조업체 판정정밀 설립 △1996년 전기녹즙기 발명특허 등록 △1999년 산업부 장관 표창 △2002년 신지식특허인 선정 △2004년 스위스 제네바 국제발명품전 전기녹즙기 금상 수상 △2008년 휴롬 원액기 개발 △2010년 세계 일류상품 선정 △2012년 주스카페 ‘휴롬팜’ 시작 △2013년 납세자의날 기획재정부 장관상

안재광/김용준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