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뛰어난 개인의 야심과 집단 간 경쟁이 불평등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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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창조
켄트 플래너리, 조이스 마커스 지음 / 하윤숙 옮김 / 미지북스 / 1004쪽 / 3만8000원
켄트 플래너리, 조이스 마커스 지음 / 하윤숙 옮김 / 미지북스 / 1004쪽 / 3만8000원
1753년 가을, 프랑스 디종 아카데미에서 상금을 걸고 논문 공모를 실시했다. 주제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였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제출한 논문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지금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00쪽 남짓한 이 논문에서 루소는 불평등이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사회 발전 과정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불평등의 창조》는 기원전 1만5000년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여러 부족에 대한 인류학적 조사 자료 및 고고학적 유적과 유물 자료 등을 토대로 루소의 주장을 입증하고 있다. 인간 불평등의 기원과 진화 논리를 파헤친다. 미국의 저명한 고고학자들인 켄트 플레너리와 조이스 마커스는 “루소의 시도는 인류학이나 사회학 자료를 전혀 이용할 수 없던 시대에 나온 것”이라며 “루소의 논문을 바탕으로 삼으면서 최근의 자료를 활용하는 편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불평등은 인간 사회에 내재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며, 농경의 등장 같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도 아니다. 불평등은 모든 인간 집단의 핵심에 있는 고유한 사회 논리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결과물이다.
루소는 불평등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선 오래전 인간이 필요한 모든 것을 자연에서 얻을 수 있고, 각 개인은 오로지 힘과 민첩성, 지능의 측면에서만 차이를 보이던 시기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들은 루소의 조언에 따라 ‘대가족보다 큰 집단을 형성하지 않은 수렵채집 사회’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기원전 1만5000년 무렵 인류의 조상들은 작은 소규모 집단을 이뤄 먹이를 찾아다니며 살았다.
이때 불평등의 원천은 개인의 능력이다. 하지만 잉여 식량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사회는 개인이 재산을 축적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억제했다. 가령 남아프리카의 수렵채집 집단인 쿵족은 사냥꾼들끼리 자기가 만든 화살을 교환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유능한 사냥꾼이 계속해서 사냥감을 차지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농경이나 풍부한 수렵 채집 자원이 불평등이 생겨날 수 있는 조건인 셈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인구 성장과 집약 농업, 기후 개선 등이 불평등을 낳기에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는 해도 이런 요인 자체의 필연적인 결과로 불평등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고 분석한다. 책은 불평등 기원의 핵심 요인으로 집단 간 경쟁, 뛰어난 개인의 야심, 명망을 축적할 수 있는 조건 등을 꼽고 있다. 특히 지위를 세습하기 위해선 서열 조작이 필요했다. 평등 사회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나 조상 등 초자연적 존재가 서열 윗부분을 차지했다. 역사상 최초로 지위를 후손에게 세습하려고 했던 지도자들은 자신의 가계와 조상들의 영혼, 나아가 신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음을 다른 구성원들에게 납득시키려고 했다.
그 결과 상류층 세습이 일어났고 지도자 가계가 탄생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썼다. 폴리네시아에서 족장 권력은 종교적 개념인 ‘마나(생명력)’와 ‘토훙가(전문 지식)’, ‘토아(군사력)’에서 비롯됐다.
세습 지위 사회가 계층 사회로 나아가면서 ‘왕국’을 탄생시켰다. 저자들은 “세계 각지에서 건설된 최초의 왕국은 족장 가계 간의 치열한 권력 찬탈의 결과물”이라며 “어느 지역도 단순히 지위 사회의 규모가 커져서 왕국으로 변화한 곳은 없다”고 말한다.
물론 불평등에 반대하는 세력도 있었다. “인간 행위자 중 일부 집단이 더 큰 특권을 얻기 위해 싸운 반면 다른 이들은 가능한 한 모든 힘을 모아 특권에 저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결국 실패했다. “인간은 자유로운 상태로 태어났지만 곳곳에서 속박당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루소는 선언했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 조상들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불평등에 저항할 수 있는 수십 가지 가능성이 있었지만 항상 단호한 의지를 보이지는 않았다. 덕, 사업적 역량, 용맹을 높이 평가한 점에 대해서는 그들을 용납할 수 있다. 다만 그런 특성이 세습된다는 견해만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도 불평등은 만연한다. 저자들은 “자연법에서는 힘, 민첩성, 지능에서만 불평등을 허용했다”며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저항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어 “문명 사회의 수동적인 다수는 이따금 적극적인 소수의 특권을 도로 거둬들였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불평등의 창조》는 기원전 1만5000년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여러 부족에 대한 인류학적 조사 자료 및 고고학적 유적과 유물 자료 등을 토대로 루소의 주장을 입증하고 있다. 인간 불평등의 기원과 진화 논리를 파헤친다. 미국의 저명한 고고학자들인 켄트 플레너리와 조이스 마커스는 “루소의 시도는 인류학이나 사회학 자료를 전혀 이용할 수 없던 시대에 나온 것”이라며 “루소의 논문을 바탕으로 삼으면서 최근의 자료를 활용하는 편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불평등은 인간 사회에 내재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며, 농경의 등장 같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도 아니다. 불평등은 모든 인간 집단의 핵심에 있는 고유한 사회 논리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결과물이다.
루소는 불평등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선 오래전 인간이 필요한 모든 것을 자연에서 얻을 수 있고, 각 개인은 오로지 힘과 민첩성, 지능의 측면에서만 차이를 보이던 시기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들은 루소의 조언에 따라 ‘대가족보다 큰 집단을 형성하지 않은 수렵채집 사회’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기원전 1만5000년 무렵 인류의 조상들은 작은 소규모 집단을 이뤄 먹이를 찾아다니며 살았다.
이때 불평등의 원천은 개인의 능력이다. 하지만 잉여 식량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사회는 개인이 재산을 축적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억제했다. 가령 남아프리카의 수렵채집 집단인 쿵족은 사냥꾼들끼리 자기가 만든 화살을 교환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유능한 사냥꾼이 계속해서 사냥감을 차지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농경이나 풍부한 수렵 채집 자원이 불평등이 생겨날 수 있는 조건인 셈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인구 성장과 집약 농업, 기후 개선 등이 불평등을 낳기에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는 해도 이런 요인 자체의 필연적인 결과로 불평등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고 분석한다. 책은 불평등 기원의 핵심 요인으로 집단 간 경쟁, 뛰어난 개인의 야심, 명망을 축적할 수 있는 조건 등을 꼽고 있다. 특히 지위를 세습하기 위해선 서열 조작이 필요했다. 평등 사회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나 조상 등 초자연적 존재가 서열 윗부분을 차지했다. 역사상 최초로 지위를 후손에게 세습하려고 했던 지도자들은 자신의 가계와 조상들의 영혼, 나아가 신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음을 다른 구성원들에게 납득시키려고 했다.
그 결과 상류층 세습이 일어났고 지도자 가계가 탄생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썼다. 폴리네시아에서 족장 권력은 종교적 개념인 ‘마나(생명력)’와 ‘토훙가(전문 지식)’, ‘토아(군사력)’에서 비롯됐다.
세습 지위 사회가 계층 사회로 나아가면서 ‘왕국’을 탄생시켰다. 저자들은 “세계 각지에서 건설된 최초의 왕국은 족장 가계 간의 치열한 권력 찬탈의 결과물”이라며 “어느 지역도 단순히 지위 사회의 규모가 커져서 왕국으로 변화한 곳은 없다”고 말한다.
물론 불평등에 반대하는 세력도 있었다. “인간 행위자 중 일부 집단이 더 큰 특권을 얻기 위해 싸운 반면 다른 이들은 가능한 한 모든 힘을 모아 특권에 저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결국 실패했다. “인간은 자유로운 상태로 태어났지만 곳곳에서 속박당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루소는 선언했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 조상들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불평등에 저항할 수 있는 수십 가지 가능성이 있었지만 항상 단호한 의지를 보이지는 않았다. 덕, 사업적 역량, 용맹을 높이 평가한 점에 대해서는 그들을 용납할 수 있다. 다만 그런 특성이 세습된다는 견해만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도 불평등은 만연한다. 저자들은 “자연법에서는 힘, 민첩성, 지능에서만 불평등을 허용했다”며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저항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어 “문명 사회의 수동적인 다수는 이따금 적극적인 소수의 특권을 도로 거둬들였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