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깨지고 부딪쳐도 도전 또 도전"…청년들 해외서 JOB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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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ve the country(해외로 떠나라).”
2014년 11월26일 서울 당산동 그랜드컨벤션에서 열린 K무브 멘토-멘티 만남의 날. 글로벌 취업 컨설턴트이자 주한 캐나다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시몽 뷔로 벡티스(경영자문회사) 대표가 강연 마지막에 외친 한마디에 객석을 가득 메운 청년 200여명의 눈망울에 떨림이 느껴졌다. 작년 11월14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사회적 기업 월드포럼’은 기조강연자의 특별한 강연으로 화제가 됐다. 강연자는 세계적인 미래학자 조지 프리드먼 박사, 주최 측도 놀란 이날 강연의 메시지는 ‘해외 취업 독려’였다. “내가 20대 청년이라면 당장 미얀마 베트남 케냐 탄자니아 같은 나라로 갈 겁니다. 이들 나라는 말 그대로 ‘기회의 땅’입니다.”
미국의 대표적 민간정보연구소인 스트랫포를 운영하는 프리드먼 박사는 “미얀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케냐 캄보디아 멕시코 탄자니아 등 ‘포스트차이나 16’이 뜰 것”이라며 “저임금에 높은 생산성을 가진 이들 국가야말로 한국 청년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2005년 연세대를 졸업한 전성민 씨(35)는 모두가 비슷한 스펙을 가지고 대기업, 공무원 등 한정된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대신 해외 취업을 택했다. 졸업 후 한 달여의 유럽여행을 다녀온 전씨는 석사과정이 짧고 파트타임 일을 허용하는 영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비자 만료를 석 달 앞둔 시점에 우연히 들른 취업박람회에서 파소나유럽이라는 리크루팅회사의 면접을 보게 됐고 “이 회사에는 한국인 직원이 없다고 들었는데, 나를 채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도발적인 제안으로 입사에 성공했다.
전씨는 이 회사에서 7년간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 초 ‘K피플유럽’ 창업을 앞두고 있다.그는 “나를 포함한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규격상품처럼 교육을 받아왔다”며 “해외 취업은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확신이 섰을 때 도전해야 하며, 도전이 아닌 도피가 돼선 실패하기 쉽다”고 말했다.
호주에서 용접기사로 일하는 주혁 씨(33)는 4년제 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호주 취업을 위해 28세에 한국폴리텍대 건축설비자동화과를 들어갔다. 학교에서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국제영어능력시험(IELTS)에 대비, 매일 저녁 영어학원을 다녔다. 호주에서 인정하는 특수용접기술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지 업체 요구에 맞춰 국내 조선소에서 3개월간 실무도 익혔다. 2011년 3월 임시취업(402)비자를 받고 호주로 건너간 주씨는 브리즈번의 아틀라스중공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말 정규직이 된 주씨는 “일을 마치고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갈 때 형광색 작업복을 입고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주씨의 현재 연봉은 8000만원 수준이며 1년에 5주간의 휴가를 보장받는다.
“스펙 따윈 필요없다”
뉴질랜드 국세청 직원인 한성규 씨(32)의 취업 비결은 ‘괴짜’ 이력이다. 고교 졸업 후 연기자를 꿈꾸며 연기 공부를 하다가 포기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1학년을 마친 뒤 휴학하고 일본에서 1년을 보냈다. 이후에는 무림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중국 소림사에서 몇 달을 보냈다. 뉴질랜드를 1년간 여행하고, 2006년에는 월드컵이 열린 독일을 다녀왔다. 명상수행에 ‘필(feel)’이 꽂혀 인도에서도 몇 달을 지냈다. 는 그간의 경험을 되짚어보고 ‘뉴질랜드에서 살면 행복하겠다’는 생각만으로 비행기를 탔다. 이 이력을 갖고 세 곳에 입사를 타진했고, 두 곳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한씨는 국세청을 택했다.
서유영 씨(27)는 아프리카를 공략했다. 국내 4년제 대학 재학 중 교환학생으로 탄자니아에 갔던 게 계기가 됐다. 말라리아로 고통받는 현지인을 보며 바이오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귀국 후 폴리텍대 바이오캠퍼스에 입학했다. 지난해 6월 미국 뉴저지에 있는 액세스바이오에서 8주간의 인턴생활을 한 서씨에게 대학 전공과 아프리카 거주 경험은 큰 밑천이 됐다. 영남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폐쇄회로TV(CCTV) 제조 중견기업인 케비스전자에 근무하는 전은영 씨(35)는 한국이 아닌 중국법인에 입사한 경우다. 2005년 졸업 후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으로 방글라데시를 다녀온 전씨는 국내 취업 대신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첫 직장인 칭다오식품회사를 거쳐 2009년 케비스전자 중국법인에 입사했다. 2012년 본사 발령을 받고 서울에서 근무 중인 전씨는 “외국에 나가 보면 생각보다 한국인을 찾는 일자리가 많다”며 “해외에 나가서 부딪쳐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최근 항공 정보기술(IT) 교량 건축분야에서 디자인 인력 수요가 급증하는 인도네시아도 취업 전망이 밝다. 이연복 한국산업인력공단 글로벌일자리지원국장은 “최근 인도네시아 국영 통신기업인 텔콤과 한국인 인턴 채용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백승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argos@hankyung.com
2014년 11월26일 서울 당산동 그랜드컨벤션에서 열린 K무브 멘토-멘티 만남의 날. 글로벌 취업 컨설턴트이자 주한 캐나다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시몽 뷔로 벡티스(경영자문회사) 대표가 강연 마지막에 외친 한마디에 객석을 가득 메운 청년 200여명의 눈망울에 떨림이 느껴졌다. 작년 11월14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사회적 기업 월드포럼’은 기조강연자의 특별한 강연으로 화제가 됐다. 강연자는 세계적인 미래학자 조지 프리드먼 박사, 주최 측도 놀란 이날 강연의 메시지는 ‘해외 취업 독려’였다. “내가 20대 청년이라면 당장 미얀마 베트남 케냐 탄자니아 같은 나라로 갈 겁니다. 이들 나라는 말 그대로 ‘기회의 땅’입니다.”
미국의 대표적 민간정보연구소인 스트랫포를 운영하는 프리드먼 박사는 “미얀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케냐 캄보디아 멕시코 탄자니아 등 ‘포스트차이나 16’이 뜰 것”이라며 “저임금에 높은 생산성을 가진 이들 국가야말로 한국 청년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2005년 연세대를 졸업한 전성민 씨(35)는 모두가 비슷한 스펙을 가지고 대기업, 공무원 등 한정된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대신 해외 취업을 택했다. 졸업 후 한 달여의 유럽여행을 다녀온 전씨는 석사과정이 짧고 파트타임 일을 허용하는 영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비자 만료를 석 달 앞둔 시점에 우연히 들른 취업박람회에서 파소나유럽이라는 리크루팅회사의 면접을 보게 됐고 “이 회사에는 한국인 직원이 없다고 들었는데, 나를 채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도발적인 제안으로 입사에 성공했다.
전씨는 이 회사에서 7년간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 초 ‘K피플유럽’ 창업을 앞두고 있다.그는 “나를 포함한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규격상품처럼 교육을 받아왔다”며 “해외 취업은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확신이 섰을 때 도전해야 하며, 도전이 아닌 도피가 돼선 실패하기 쉽다”고 말했다.
호주에서 용접기사로 일하는 주혁 씨(33)는 4년제 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호주 취업을 위해 28세에 한국폴리텍대 건축설비자동화과를 들어갔다. 학교에서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국제영어능력시험(IELTS)에 대비, 매일 저녁 영어학원을 다녔다. 호주에서 인정하는 특수용접기술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지 업체 요구에 맞춰 국내 조선소에서 3개월간 실무도 익혔다. 2011년 3월 임시취업(402)비자를 받고 호주로 건너간 주씨는 브리즈번의 아틀라스중공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말 정규직이 된 주씨는 “일을 마치고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갈 때 형광색 작업복을 입고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주씨의 현재 연봉은 8000만원 수준이며 1년에 5주간의 휴가를 보장받는다.
“스펙 따윈 필요없다”
뉴질랜드 국세청 직원인 한성규 씨(32)의 취업 비결은 ‘괴짜’ 이력이다. 고교 졸업 후 연기자를 꿈꾸며 연기 공부를 하다가 포기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1학년을 마친 뒤 휴학하고 일본에서 1년을 보냈다. 이후에는 무림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중국 소림사에서 몇 달을 보냈다. 뉴질랜드를 1년간 여행하고, 2006년에는 월드컵이 열린 독일을 다녀왔다. 명상수행에 ‘필(feel)’이 꽂혀 인도에서도 몇 달을 지냈다. 는 그간의 경험을 되짚어보고 ‘뉴질랜드에서 살면 행복하겠다’는 생각만으로 비행기를 탔다. 이 이력을 갖고 세 곳에 입사를 타진했고, 두 곳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한씨는 국세청을 택했다.
서유영 씨(27)는 아프리카를 공략했다. 국내 4년제 대학 재학 중 교환학생으로 탄자니아에 갔던 게 계기가 됐다. 말라리아로 고통받는 현지인을 보며 바이오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귀국 후 폴리텍대 바이오캠퍼스에 입학했다. 지난해 6월 미국 뉴저지에 있는 액세스바이오에서 8주간의 인턴생활을 한 서씨에게 대학 전공과 아프리카 거주 경험은 큰 밑천이 됐다. 영남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폐쇄회로TV(CCTV) 제조 중견기업인 케비스전자에 근무하는 전은영 씨(35)는 한국이 아닌 중국법인에 입사한 경우다. 2005년 졸업 후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으로 방글라데시를 다녀온 전씨는 국내 취업 대신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첫 직장인 칭다오식품회사를 거쳐 2009년 케비스전자 중국법인에 입사했다. 2012년 본사 발령을 받고 서울에서 근무 중인 전씨는 “외국에 나가 보면 생각보다 한국인을 찾는 일자리가 많다”며 “해외에 나가서 부딪쳐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최근 항공 정보기술(IT) 교량 건축분야에서 디자인 인력 수요가 급증하는 인도네시아도 취업 전망이 밝다. 이연복 한국산업인력공단 글로벌일자리지원국장은 “최근 인도네시아 국영 통신기업인 텔콤과 한국인 인턴 채용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백승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