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前 청와대 경제수석
박병원 前 청와대 경제수석
정부가 시장가격에 손을 대는 것은 경제주체들의 선택을 왜곡시킨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다. 그 점은 시장경제 원리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오래전부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 요즈음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경제하는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팔목이 비틀려서 하는 일이거니 이해를 하면서도 말이다.

우선 연초 정부가 건드린 부동산 중개수수료 문제다. 국토교통부는 오피스텔 중개수수료를 거래가의 0.9% 이하에서 (전용면적 85m²이하) 매매는 0.5%, 임대차는 0.4% 이하로 내렸다. 일반 주택에 대해서도 매매의 경우 6억원 이상은 0.9% 이내, 임대차는 3억원 이상은 0.8% 이내로 돼 있던 것을 6억~9억원, 3억~6억원의 구간별로 각각 0.5%, 0.4% 이내로 줄이도록 각 지방자치단체에 요청했다.

취지도 짐작이 가고 논리도 이해가 간다. “지금처럼 부동산 거래가 죽어 있고 중개업이 과당 경쟁에 빠진 상황에서 이렇게라도 해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 중개업자의 소득이 더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중개업자가 받는 수수료는 중개업자가 창출한 부가가치를 시장이 평가한 것인 동시에 중개업자의 소득이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수고’의 가치가 갑자기 줄어들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한순간에 중개수수료를 낮추기 전에 더 진지한 검토와 협의가 있어야 했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는 물건을 만들지 않는 수고, 즉 서비스에 대해 제값을 쳐주는 데 인색하다. 바로 이 때문에 서비스산업 발전이 지연되고 있지 않은가.

10여년째 “우리 경제의 활로는 서비스산업, 내수산업을 통한 고용창출밖에 없다”는 점을 주장해 온 필자로서는 서비스를 ‘비용’으로만 보고 ‘소득’으로 보지 않는 이런 접근 방식이 개탄스러울 수밖에 없다.
서비스시장의 팔목을 비틀지 말라
“의료수가·보육단가 규제하면 청년일자리 사라져
서비스시장 개입으로 경제발전 이룬 나라는 없다”

싼 서비스와 결별할 때
값 함부로 깎는 것은 삶의 질과 안전 위협…이웃의 소득까지 줄여

전기·통신요금 억제

정부 개입은 재정에도 악영향…세수확대·경제 활성화에 역행할 뿐


게다가 부동산 중개업은 진입장벽이 거의 없는 전형적 공급과잉 시장이다. 담합도 불가능한 시장에 무슨 가격 규제를 한다는 말인가.

경제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일부 국민의 소득을 깎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남의 소득을 깎는다? 그런 식으로 나만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 과연 지속가능한 것일까.

가격통제가 ‘어린이집 폭행사태’ 불렀다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어린이집 교사의 폭행 사태를 서비스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는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문제를 일으킨 어린이집을 즉각 폐쇄하겠다”는 당국의 대응방안에 이르러서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보육원 부족으로 부모가 자유롭게 좋은 보육원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질 낮은 보육원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의 근원인데 보육원을 늘릴 궁리는 안 하고 줄일 생각부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은 가격은 물론 어린이 몇 명당 보육교사 한 명을 둬야 한다는 규제를 받고 있다. 이런 규제 속에서 수지를 맞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좋은 교사를 쓰기는커녕 제대로 된 간식을 주고 있는지도 믿을 수 없는 지경이다.

보육교사 시험을 국가고시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하는데, 보육교사가 받는 보수가 얼마인지를 알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수 인력이 보육교사 국가고시에 응시할 수 있게끔 처우 개선을 병행하면서 추진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보육교사의 자격 요건만 강화하면 보육교사 공급이 부족해질 뿐만 아니라 양질의 교사를 확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자기가 들인 밑천과 수고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훌륭한’ 사람만 모으겠다는 발상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 근본적으로는 능력 범위를 뛰어넘어 무상복지를 쏟아낸 정부와 정치권의 탓이 크다.

전기요금 억제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독과점 상태에 있는 업종은 가격 규제가 합리화될 수 있다는 것 또한 경제 논리가 가르치는 바다. 그러나 그 경우라도 가격 규제 때문에 해당 기업 주가를 유지할 정도의 돈을 벌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역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진다.

대표적 예가 정부가 인상을 억제해온 전기료다. 한국전력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적자였고, 2013년에도 겨우 적자를 면할 정도의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정부가 요금을 억누르지 않고 적정

익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줬더라면 한전은 해마다 3조5000억여원의 이익을 냈을 것이고 매년 8000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수조원의 세금 수입을 날린 것이다. 또 한전의 주가 하락으로 수조원의 국부(國富)가 증발했을 것이고, 보유자산의 가치 하락에 놀란 주식 투자자들이 소비도 줄였을 것이다. 이처럼 광범위한 경제적 손실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최근 들어서는 국제유가 하락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지난 6년간 한전이 돈을 벌지 못한 기간에 원자력안전 투자나 전력 공급능력 확보를 위한 투자를 만족할 만큼 했는지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세월 정부 시책에 밀려 기대했던 배당수익 등을 놓친 외국인 투자자들도 배려해야 한다. 한국과 한국 기업에 투자해 다른 나라에 투자했을 때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투자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의 기본 요건이다.

푼돈으로 사라진 통신요금 인하

어떤 이유로든 이익이 좀 났다 하면 가격 인하를 강요당하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업종이 통신이다. 예컨대 휴대폰 요금을 월 1000원씩 깎아준 적이 있는데, 이는 통신 3사의 이익을 6000억원가량 감소시킨 조치였다. 경제는 푼돈을 모아 목돈을 만든 뒤 투자로 이끌어 발전하는 것인데, 목돈을 헐어 푼돈을 만드는 이런 조치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물가안정이 절박한 시기가 아니었고, 월 1000원의 혜택에 고마워하며 다음 선거 때까지 기억해줄 국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기왕 통신회사들의 팔목을 비틀 양이면 차라리 그 돈을 애플리케이션이나 콘텐츠를 개발하는 젊은이에게 투자하고 그들에게 좀 더 나은 보수를 주도록 종용했더라면 훨씬 더 경기활성화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모든 콘텐츠가 통신사를 통해 팔리는 요즈음 통신사는 소프트웨어나 게임, 드라마나 노래 같은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슈퍼갑(甲)’인데 이들이 받는 보수가 너무 보잘것없는 것이 통신요금을 끝없이 깎았기 때문이라고 하면 비약일까.

현 수가로는 의료산업 일자리 못 만든다

가격 규제 중 필자가 보기에 경제에 가장 해로운 것은 의료산업 규제다. 한국의 건강보험이 세계적으로 최상의 의료를 최저의 비용으로 국민에게 공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세계 최강 반열의 의료진과 시설을 갖추고 있는 의료산업에 건강보험수가 규제를 ‘보편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덕분이다.

그런데 이 수가 수준이 대형병원 대부분을 만성적인 적자로 몰아넣으면서 한국 의료산업의 질적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한국 의료산업의 경쟁력도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이미 건강보험이 인정하지 않는 고급 진료를 위해 미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보건당국은 얼마나 많은 돈이 의료 때문에 외국에 지출되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통계조차 없다.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이 중국 등의 도전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분야는 단연 의료산업이다. 1960~1970년대에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듯 지원해주지는 못할망정 들인 밑천과 노력에 상응하는 이익이나 소득을 얻을 수 없게 해서야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대형병원은 모두 비영리법인이라서 수가를 계속 눌러도 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돈(기부)만으로 병원을 더 지을 돈을 마련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이것이 병원 시설의 낙후와 부족을 초래할 수 있고, 실력 있는 의사들의 해외 유출을 부추길지도 모른다.

규제로 발전하는 나라는 없다

서비스시장의 팔목을 비틀지 말라
이제 ‘싼 서비스’와 결별할 때가 됐다. 많은 인명피해를 낸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고나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도 안전하고 질 높은 서비스 대신 싼 것만을 채택하고 요구해온 기업과 소비자들의 선택이 초래한 결과일 수 있다.

그리고 값(가격)을 함부로 깎는 것은 우리 삶의 질과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이웃의 소득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한다. 이웃이 돈을 더 벌어서 더 많이 써야 내 장사가 더 잘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수요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어떤 경우라도 일방의 소득이 줄어들도록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소득이 늘어나게 해주는 일만 해야 한다.

경쟁이 충분한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하자. 경쟁이 부족한 시장은 경쟁을 촉진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가격 규제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자. “규제 중에서도 가장 질 나쁜 규제는 가격에 직접 손을 대는 것”이라는 합의를 잊지 말자. 가격을 규제해서 경제가 잘되게 할 수 있다면 경제 발전을 이루지 못할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경제 발등 찍는 금리·수수료 규제
은행규제, 채용 줄고 세수부족 ‘부메랑’


금융업은 출혈경쟁 수준의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면허에 의해 신규 진입을 제한하고 있다는 형식논리에 입각해 규제를 많이 받고 있는 업종이다. 원칙을 얘기하자면 금융업에서 가장 중요한 가격인 금리와 수수료는 이미 오래전에 자율화돼 당국이 규제할 권한이 없다(오히려 당국이 이를 획일적으로 규제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이라고 처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수료를 깎아라’ ‘대출금리를 내려라’ ‘중소기업과 서민을 위해 좀 손해 나는 일이라도 해라’ ‘사회공헌을 더 많이 하라’ 등의 요청을 받으면 현실적으로 광범위한 규제를 받아야 하는 금융회사들은 거부하기가 어렵다. 현금자동입출금기는 은행들에 대당 연간 166만원의 손실을 초래한다는 연구도 있는데, 다름 아닌 수수료 깎기의 결과물이다(물론 수수료 깎기의 상당 부분은 은행들이 자초한 과당경쟁의 측면도 있다).

국민에게 몇 푼의 부담을 덜어줬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 실제로 국민은 그 혜택을 느끼지도 못하는 가격 규제를 심심찮게 하고 있지만 사전에 그 득실을 제대로 따져보고 하는 일인지 의문이다. 요즈음 금융산업은 들인 밑천에 부응하는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수수료 등의 인하로 해당 금융사들의 이익이 줄고 그로 인해 감소한 세입만이라도 따져봤으면 좋겠다. 은행들이 15조원가량의 이익을 낸 2007년에 비해 4조원의 이익도 내지 못한 2013년 은행이 낸 법인세는 2조원 이상 줄어들었을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줄어든 세금을 어디선가 벌충할 수밖에 없다. 요즈음 나라를 시끄럽게 한 연말정산은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거둬야 하는 정부의 눈물겨운 노력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각종 요금이나 수수료를 내리라고 압박한 뒤 나중에 세수 부족 때문에 또 다른 무리수를 두는 정부의 행태는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 박병원 객원大기자는

△1952년 부산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행정고시 합격(17회)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제1차관 △우리금융그룹 회장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서비스산업총연합회 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