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나홀로 강세'…한은, 글로벌 통화전쟁 뛰어들까
환율은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이 ‘노코멘트’하는 대표적 영역이다. 한은을 처음 출입한 기자들은 관계자들에게 ‘환율 수준이 어떤가’ ‘환율이 어떻게 될까’ 물었다가 무안을 당하기도 한다. ‘환율과 관련해선 언급하지 않는다’는 일관된 답변 때문이다. 질문을 두세 차례 꼬아서 던져도 원칙적인 답변 이상은 듣기 어렵다.

한은이 환율에 무관심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한은은 기획재정부와 함께 외환시장을 담당한다. 이들 외환당국은 달러를 사거나 파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한다. 환율 움직임이 심할 때는 당국자들이 직접 경계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구두개입).

하지만 이 모든 것도 환율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환율 수준은 시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되 당국은 오르고 내리는 속도만 조절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도 환율은 변수가 될 수 없다.

일부에선 이 같은 불문율에 답답함을 호소하곤 한다. 최근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완화정책 행진을 보면 더욱 그렇다. 올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이 대규모 국채매입을 선언했고 루마니아 스위스 인도 페루 이집트 덴마크 터키 캐나다 러시아 등이 금리를 낮췄다. 이달 초 중국 인민은행은 2012년 5월 이후 처음으로 지급준비율을 인하했다.

임노중 아이엠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들 중앙은행의 완화정책은 겉으론 경기부양을 위한 것이지만 결국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국가의 금리가 내리면 그 국가의 주식, 채권에 투자하려는 외국인 자금이 줄어든다. 통화가치가 내리고(환율 상승) 수출 등에 도움이 된다. 중앙은행들의 속내는 사실 통화가치 하락에 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한은은 가계부채 급증 등을 우려하며 금리인하에 신중했다. 지난해 가팔랐던 엔저도 잠잠해져서 원화 강세에 대한 우려도 다소 던 듯했다. 하지만 다른 국가 통화와 비교하면 통화전쟁의 파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국이 가만히 있는 사이 주요국 통화가치가 일제히 뒷걸음질친 것이다. 다시 말해 원화만 ‘나홀로 강세’를 이어간 것이다.

원화 '나홀로 강세'…한은, 글로벌 통화전쟁 뛰어들까
한은이 집계하는 각국 통화 대비 원화 환율을 보면, 원화는 올 들어 지난 12일까지 21개국 가운데 19개국 통화에 대해 강세를 나타냈다. 최근 금리인하를 단행한 캐나다(8.1%) 스웨덴(7.1%) 덴마크(7.0%) 호주(5.8%) 등에 대해선 원화가치 상승률이 더 높았다.

다만 스위스 프랑에 대비하면 올 들어 원화가치가 6.3% 내렸다. 이는 스위스 중앙은행이 지난달 유로화 환율 하한제를 폐지한 영향이 크다. 안전자산인 스위스 프랑화의 가치는 미 달러화에 대해서도 고공행진 중이다. 같은 기간 태국에 대해서도 원화가치는 0.4% 내렸다.

한국도 금리를 내려 원화가치를 끌어내려야 할까. 의견이 엇갈리지만 원화강세를 막는 것이 가계부채 완화보다 단기적으로 훨씬 중요하다고 여기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저유가로 디플레 우려가 커졌고 수출도 최근 부진하다”며 “한은만 소극적으로 있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은도 부쩍 고심하는 듯하다. 통화정책국의 한 관계자는 “환율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중앙은행 불문율이 최근 싱가포르 등에서 깨졌다”며 이 점이 신경 쓰인다고 했다. 최근 만난 한 금융통화위원도 이 같은 흐름의 주요국 통화정책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칙과 현실의 딜레마 속에서 나름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는 분위기다.

“최근 중앙은행들의 금리인하에는 자금 유입을 막겠다는 일관된 목적이 보입니다. 자국 경기를 부양하려면 ‘아름답지 않은 방법’이라도 총동원해야 한다는 거겠죠.” 이 금통위원은 결론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노코멘트’라고 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