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서울 세종대로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제33회 원자력안전위원회. 설계수명 30년을 넘겨 2012년부터 가동을 중단하고 있는 월성 1호기에 대한 계속 운전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원안위 출범 후 3년, 한국수력원자력이 월성 1호기 재가동 심사를 신청한 지 5년여 만에 열린 첫 회의였다. 하지만 이날 10시간 동안 열린 마라톤회의는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이틀 전에 자료 주고 원전 존폐 의견내라고?"
○도대체 그동안 뭘 준비했나

그 내막이 공개됐다. 지난 16일 원안위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회의 속기록을 통해서다. 총 222쪽에 달하는 속기록을 살펴보면 원안위의 사전 준비는 ‘총체적 부실과 졸속’이었다. 일부 위원들은 정부 측 검증단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과 지역주민·학계·시민단체로 별도 구성된 민간 검증단 사이의 ‘상호 쟁점’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빈축을 샀다.

회의는 원안위의 주먹구구식 자료 제공에 대한 항의로 시작됐다. 김혜정 위원은 “회의 개최 이틀 전에야 전문위원회 검증 보고서를 받아봤다”며 “‘원안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최소한 1주일 전에 자료를 제공하기로 돼 있는데 비전문가가 어떻게 하루 만에 이 전문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이은철 원안위원장은 “KINS와 민간 검증단의 조사 결과를 검토·평가해 종합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 전문위원회가 원안위 회의 1주일 전인 8일에서야 열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사과했다.

초보적인 질문과 답변도 많았다. 한 위원은 “지금 계속 운전 허가를 받으면 월성 1호기의 계속 운전 기간은 얼마나 되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원전 가동 기간은 발전소 임계 시점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2월에 수명 연장 허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월성 1호기의 남아있는 가동 기간은 10년이 아닌 7년9개월이다. 계속 운전 문제에 대한 핵심 쟁점인데도 이 사실을 몰랐다는 얘기다.

특히 애초 위원들 간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릴 것으로 예상됐던 ‘지진 발생시 원전 안전성 문제’에 대해서는 지엽적인 문제만 토의가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위원들은 “원전 근처 단층 지진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수 없으면 관련 자료를 소방방재청에서 얻어야 하나, 아니면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받아야 하느냐” 등의 문제를 놓고 1시간 이상 입씨름을 벌였다.

○오는 26일 3차 회의 열지만 …

중대사고 발생시 원자로 건물 내 압력이 지나치게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격납건물여과배기계통(CFVS)을 설치한 문제에 대해서도 핵심을 벗어난 토론이 이어졌다. 김무환 KINS 원장은 “지금 위원들이 걱정하는 건 중대사고가 안 났을 때도 CFVS가 열릴 수 있게 디자인된 것 같다는 점”이라고 문제 제기를 했다. 이에 양이원영 민간 검증단원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CFVS를 설치할 때 한수원 측의 태도는 이 설비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지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우선 달고 보자’는 식이었다”며 CFVS의 설치 여부 자체를 문제 삼았다. 논의가 길어지자 이 위원장은 “위원들이 심의하려면 (쟁점을) 이해해야 하는데 어디가 이슈가 되는지도 지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심의할 수 없다”며 난색을 보였다.

‘수박 겉핥기식’ 회의가 계속되자 김용환 사무처장은 “느낌은 월성 1호기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니라 30년간 일어난 국내 원전 전체 현안에 대해 얘기하는 기분”이라며 피로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결국 이날 회의의 결론은 “KINS와 민간 검증단이 각각의 의견을 표로 정리해오면 이후에 원안위 위원들끼리 회의를 다시 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원안위는 지난 12일 또다시 마라톤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마찬가지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세 번째 회의는 오는 26일로 예정돼 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