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무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양천갑 지역위원장)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시가총액 100대기업 최근 5년간 자사주 매입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해 자사주 취득 금액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김기준 의원에 따르면 지난 해 자사주 취득금액은 5조3569억원으로 2013년(1조4096억원) 대비 3.8배 급증했다.

자사주 매입이란 회사가 자기 돈으로 자기 회사 주식을 사는 것을 말한다. 현행법(상법 제369조)에 따르면 회사가 보유하는 자기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다만 자사주를 매입하면 실제로 사고팔 수 있는 유통주식 수가 줄어든다.

또한 매입 후 소각을 하게 되면 주당 순이익이 늘어나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배당이 주주에게 직접적으로 현금을 준다면, 자사주는 주가 상승을 통해 간접적으로 현금을 주는 간접배당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해 자사주 취득금액을 보면 삼성전자가 2조4459억원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시가총액 상위100위 기업 자사주 매입총액 5조3569억원의 46%에 달한다. 그 다음으로 SK(8533억원)와 현대차(4598억원)가 그 뒤를 이었다. 그룹별로 보면 삼성그룹이 6개 회사로 가장 많았고, 취득금액은 3조5840억원으로 전체의 67%에 달한다.

삼성그룹의 자사주 취득 현황을 살펴보면, 먼저 삼성생명이 1월부터 4월까지 자사주 200만주(2103억원)를 취득해 자사주 지분율이 4.5%에서 5.46%로 증가했다. 다음으로 삼성화재가 9월부터 12월까지 자사주 143만주(4155억원)를 사들여 지분율은 3%포인트 상승하여 12.43%까지 증가했다.

11월에는 전년대비 영업이익이 80% 급감한 삼성중공업이 자사주 1200만주(3152억원)를 매입했다. 자사주 지분율은 6%에서 11.2%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10월부터는 삼성증권이 220만주(1048억원)를 지난 1월20일까지 사들였다. 삼성증권의 자사주 지분율도 2.63%에서 5.51%로 두 배 늘어났다.

11월부터는 삼성전자가 2007년 이후 6년 만에 2조4459원의 자금을 들여 자사주 190만주를 매입했다. 지난 1월26일 종료된 자사주 매입 결과 자사주 지분율은 12.2%까지 늘어났다.

삼성그룹 6개 계열사는 모두 자기주식취득결정 보고서를 통해 "주가안정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이유로 밝혔다. 그러나 주주가치 제고라면 자사주를 소각해야 하지만 실제 자사주를 소각한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제일기획의 경우 지난 해 11월 자사주 10%를 처분했지만, 이는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150만주(2208억원)을 매각한 것이다.

김 의원은 지난 해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자사주 매입은 주주가치 제고라기보다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깊다고 판단했다.

현행법상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만약 회사가 분할이 되면 삼성전자의 자사주 12.2%의 의결권이 부활하게 된다. 자사주를 보유한 가칭 삼성전자지주회사가 삼성전자사업회사의 최대주주가 되는 셈이다. 이는 이건희 지분율(3.38%)의 3.6배, 이재용 지분율(0.57%)의 21.4배에 해당한다. 자사주를 통해 삼성전자사업회사에 대한 지배력만 강화되면, 그 다음 단계는 주식교환 방식의 유상증자나 합병을 통해 이재용은 삼성전자지주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자사주와 인적분할을 활용한 지주회사의 사업회사 지배력 강화(1단계), 주식맞교환을 통한 지주회사 지배력 강화(2단계)의 수순을 밟은 대표적인 그룹으로 ‘땅콩회항’ 문제가 된 대한항공을 꼽았다.

대한항공은 2013년 8월 인적분할, 지난 해 11월 주식맞교환을 통해 조양호 일가의 지분율이 9.87%에서 30%로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최근 자사주 매입에 적극적인 현대차나 SK도 취약한 지배구조 강화와 편법적 경영권 승계의 일환이란 설명이다. 더군다나 올해부터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시행돼 자사주 취득금액을 배당으로 인정해 세제상의 이득을 얻기 때문에 자사주 취득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기준 의원은 "지난 해 법인세는 전년대비 3% 감소했는데 자사주 매입은 4배가량 급증했다"면서 "최근 재벌그룹의 자사주 매입은 주주가치 제고 차원이 아니라, 재벌3세로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깊다"고 분석했다. 회사가 두 개로 분할할 경우 자사주 의결권에 대한 법적 규정이 미비하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김 의원은 "재벌3세들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회사 돈으로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많다"면서 "회사가 분할할 경우 자사주를 처분하도록 하거나,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을 금지하는 법안을 이날 발의할 것"이라고 했다.

한경닷컴 최성남 기자 sul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