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中企대통령' 선거전
한국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은 500가지가 넘는다. 중소기업청이 대표적인 정책 100개만 모아서 책을 냈을 정도다. 중소기업들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법과 제도가 양산됐기 때문이다.

올해 중기청 예산은 7조9037억원이다. 예산 증가율은 12.6%로 정부 예산 증가율(5.5%)을 훨씬 웃돈다. 전문가들은 “법과 예산은 표와 직결된 것”이라고 말한다. 중소기업들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이들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자리가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다. 이 자리를 놓고 1년간 달려온 레이스가 28일 끝나고 새 회장이 탄생한다.

◆치열한 선거전

이번 선거전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예비 후보가 8명이나 출마했다. 역대 가장 많은 숫자다. 중간에 3명의 후보가 자진 사퇴해 28일 본선에서는 5명이 겨룬다. 서병문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박성택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 이재광 한국전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박주봉 한국철강구조물협동조합 이사장, 김용구 전 중기중앙회장이 그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2월28일 김기문 현 회장이 주재한 총회가 끝난 뒤부터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였다. 중간에 박성택 후보가 출마한 것을 제외하면 어떤 변수도 없었다.

하지만 11개월간 공개적 선거운동은 하지 않았다. 중앙회 선거규정에 따라 어떤 선거운동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개적 선거운동은 지난 11일 열린 합동연설회가 전부였다. 정책 대결은 고사하고 인물 간 비교도 힘든 ‘깜깜이 선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투표권을 갖고 있는 한 조합 이사장은 “정책도 인물도 비교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돈 선거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 한 번의 연설회와 선거 당일 유세만으로 300만 중소기업의 대표를 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다. 금권선거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20억원에서 30억원쯤 써야 당선될 수 있다”, “추천인 한 명당 500만원에서 1000만원쯤 든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한 후보 측 인사도 “다른 방법이 없으면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유권자 530여명 중 10%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정식 후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편 후보를 향한 비방도 난무했다. 각 후보 측은 “A후보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적발돼 조사받고 있다”, “B후보는 당선돼도 무효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흘리고 다녔다. 중앙회 관계자는 “선거 과열을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불법선거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욕적인 공약

정책과 인물을 알릴 수 없는 상황에서 후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유권자들의 눈길을 한번에 끌 수 있는 공약 제시다. 후보들의 공약을 들여다본 한 대기업 사장은 “중기중앙회장 선거가 아니라 대통령 선거인 줄 알았다”고 평했을 정도다. 대통령 직속 중소기업경쟁력강화위원회 설립(박성택 후보), 2006년 폐지된 단체수의계약제도 도입(서병문 후보), 대형마트 의무휴업 및 영업시간제한 강화(이재광 후보) 등이 선거공약으로 나왔다.

대형유통업체 매출의 0.1%를 동반성장기금으로 출연(박주봉 후보)하겠다는 공약도 현실성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단체수의계약제도가 많이 거론되는 것은 2006년 이 제도가 폐지된 것이 당시 현직으로 출마했던 김용구 회장에게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한 중소기업인은 “단체수의계약제도는 많은 부작용 때문에 폐지됐는데, 이를 부활시키겠다는 게 시대의 흐름에 맞는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협동조합 이사장만 중기중앙회장이 될 수 있게 만든 선거제도의 폐쇄성도 해결해야 할 숙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권자가 조합 이사장들이기 때문이다.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기업인은 간접선거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셈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