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품격 있는 사회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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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정직하고 남을 존중하며
자신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여야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
자신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여야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 역시 생물학적으로 보면 동물이다. 그래서 본능의 지배를 받고 충동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이성의 영역이 있다. 이성을 통해 욕망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여기에 인간의 위대함과 존엄성이 있다.
우리 사회는 이런 존엄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따라서 인간 사회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이치를 깨닫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윤리도덕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어느 한 행동이 도덕적이려면 그것이 보편화할 수 있어야 하고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 행동이어야 한다”고 했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 역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이런 도덕법칙이 행해지는 사회가 인격적 사회, 즉 품격 있는 사회다.
품격 있는 사회는 두 가지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하나는 개인들이 도덕을 깨닫고 행동하는 일이다. 둘째는 올바른 사회적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에서 우선시되는 덕목은 정직이다. 사기, 횡령, 조작 등과 같은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 비도덕적인 이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작년에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직성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다. 그러나 정직하지 못함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나쁘다. 왜냐하면 거짓 행동은 자기 자신의 인격을 해쳐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덕목은 남을 존중하는 일이다. 남을 멸시하는 것은 인격을 훼손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깎아내리기 때문에 비도덕적이다. 지난 연말에 벌어진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은 이런 비도덕성을 드러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경멸한 전형적인 사례다.
세 번째 덕목은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이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육성해 사회에 쓸모 있는 일원이 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은 자신이 스스로 꾸려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도덕적이다. 그렇지 않고 타인에 의지해 살아가겠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타인에 의지해 사는 것은 자신의 독립성을 상실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종의 자기 자신에 대한 경멸이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노력이 아닌 정부의 복지프로그램에 의존해 생활하겠다는 것은 도덕적이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와 내 가족의 삶은 내가 책임진다는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복지제도가 모두 필요 없고 도덕적이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의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우리 모두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와 같이 ‘가난한 사람’의 범주를 넘어서는 복지제도는 불필요하고 도덕적이지 못하다.
이런 논의는 자연스럽게 어떤 사회적 제도가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되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있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일수록 도덕적인 사회가 된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부가 자원을 배분하는 체제에서는 자기 자신이 열심히 일해 보상받기보다는 정치적 활동을 통해 정부로부터 보조금이나 특권을 얻어 이익을 보려고 한다. 자연히 구성원 간에 갈등이 생기고 남을 나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욕망이 충돌하는 ‘동물’의 세계로 치닫는다. 부정부패, 시민의식 결여, 이전투구 등이 만연해진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 품격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이 도덕심 향상을 위한 수양에 노력해야 한다. 이에 더해 정부 개입을 줄이고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지는 체제로 가야 한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
우리 사회는 이런 존엄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따라서 인간 사회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이치를 깨닫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윤리도덕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어느 한 행동이 도덕적이려면 그것이 보편화할 수 있어야 하고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 행동이어야 한다”고 했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 역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이런 도덕법칙이 행해지는 사회가 인격적 사회, 즉 품격 있는 사회다.
품격 있는 사회는 두 가지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하나는 개인들이 도덕을 깨닫고 행동하는 일이다. 둘째는 올바른 사회적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에서 우선시되는 덕목은 정직이다. 사기, 횡령, 조작 등과 같은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 비도덕적인 이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작년에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직성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다. 그러나 정직하지 못함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나쁘다. 왜냐하면 거짓 행동은 자기 자신의 인격을 해쳐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덕목은 남을 존중하는 일이다. 남을 멸시하는 것은 인격을 훼손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깎아내리기 때문에 비도덕적이다. 지난 연말에 벌어진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은 이런 비도덕성을 드러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경멸한 전형적인 사례다.
세 번째 덕목은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이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육성해 사회에 쓸모 있는 일원이 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은 자신이 스스로 꾸려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도덕적이다. 그렇지 않고 타인에 의지해 살아가겠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타인에 의지해 사는 것은 자신의 독립성을 상실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종의 자기 자신에 대한 경멸이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노력이 아닌 정부의 복지프로그램에 의존해 생활하겠다는 것은 도덕적이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와 내 가족의 삶은 내가 책임진다는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복지제도가 모두 필요 없고 도덕적이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의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우리 모두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와 같이 ‘가난한 사람’의 범주를 넘어서는 복지제도는 불필요하고 도덕적이지 못하다.
이런 논의는 자연스럽게 어떤 사회적 제도가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되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있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일수록 도덕적인 사회가 된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부가 자원을 배분하는 체제에서는 자기 자신이 열심히 일해 보상받기보다는 정치적 활동을 통해 정부로부터 보조금이나 특권을 얻어 이익을 보려고 한다. 자연히 구성원 간에 갈등이 생기고 남을 나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욕망이 충돌하는 ‘동물’의 세계로 치닫는다. 부정부패, 시민의식 결여, 이전투구 등이 만연해진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 품격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이 도덕심 향상을 위한 수양에 노력해야 한다. 이에 더해 정부 개입을 줄이고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지는 체제로 가야 한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