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토중래' 금융권 수장들…그들에겐 '소신'이 있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장,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겸 국민은행장, 조용병 신한은행장 내정자, 차문현 펀드온라인코리아 대표…. 이들은 요즘 화제를 몰고 다니며 금융권 이슈를 생산하는 리더들이다. 더 큰 공통점은 중도 탈락과 좌절을 이겨내고 화려하게 컴백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힘들어도 원칙을 지키며 타협하지 않은 소신’이 이들을 한직에서 중심으로 이끈 비기(秘技)라는 진단이 나온다.

◆“부하 직원이 내 라인”

지난달 말 차기 신한은행장 내정 소식을 접한 국민은행 직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조용병 행장 내정자가 윗사람의 눈치를 보며 이른바 ‘라인’을 타기보다 상하 간 소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윤종규 회장과 닮았다는 평가였다.

윤 회장은 2002년 당시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삼고초려 끝에 부행장으로 영입했다. 김 행장이 퇴진한 2004년 함께 퇴사했다가 2010년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지주 부사장으로 그를 다시 스카우트했다. 이후 2013년 국민은행장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신 뒤 지난해 회장으로 금의환향했다.

윤 회장이 두 번의 퇴출을 딛고 돌아온 데는 일선 직원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과거 그가 퇴출된 뒤에도 ‘윤종규 영입’을 주장한 이들은 대부분 행원 대리 과장 등 말단 직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임원이든 계약직 행원이든 똑같은 태도로 대하는 ‘소신’이 특히 부하 직원들과의 소통 길을 열었다”고 돌아봤다.

조 내정자도 휩쓸리지 않고 소신을 지킨 점이 은행장 선임의 배경이 됐다. 그는 2005년 라응찬 당시 신한금융지주 회장과의 갈등으로 경질된 최영휘 사장의 처조카 사위다. 일 잘하기로 이름난 그였지만 ‘최영휘 사태’ 이후 승진 가도가 예전만 못했다. 하지만 이 일은 전화위복이 됐다. ‘최영휘 사태’의 교훈에 따라 2010년 라응찬 회장과 신상훈 금융지주 사장이 극하게 대립한 이른바 ‘신한 사태’ 때 철저히 중립을 지킨 점이 은행장 선임전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요인이 됐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줄을 잡으려 하기보다 업무로 부하 직원과 소통하려 노력한 데 대한 평가가 후했다”고 말했다.

◆“포기는 없다”

황영기 회장과 차문현 대표는 ‘포기를 모르는 인물’들이다. 황 회장은 KB금융 회장이던 2009년 금융당국이 우리은행장 시절 파생상품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직무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내리자 회장직에서 중도 사퇴했다. 그는 중징계 결정에 불복, 행정소송을 내 3년을 싸운 끝에 2013년 대법원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뚝심으로 일궈낸 명예 회복은 지난 1월 한국금융투자협회장 선거전에서 압승하는 배경이 됐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개입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라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강한 리더를 찾다보니 황 회장이 점수를 얻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을 떠난 지 꽤 됐지만,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보고 업계 현안을 해결해줄 적임자라는 기대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진웅섭 원장은 ‘공무원 조직의 명(命)에 토를 달지 않는다’는 소신을 지킨 인물이다. 검정고시 출신으로 과거 재무부 내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로 불리던 진 원장은 우수한 근무 실적에 비해 한가한 자리를 맡을 때가 많았다. 특히 2012년 이명박 정부 말에는 아무도 가기 싫어했던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이른바 ‘순장조’에 들어갔다. 이어 2014년 2월엔 산업은행과의 통합을 앞둔 한국정책금융공사의 ‘시한부 사장’ 자리에 군말없이 앉았다. 지난해 11월 취임할 당시 한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 조직의 명에 묵묵히 따랐던 모습이 지금의 진 원장을 만들었다”는 관전평을 내놓기도 했다.

차문현 대표는 1998년 동화은행 지점장 시절 은행이 퇴출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부산에 기반을 둔 작은 회사인 제일투자신탁에서 ‘결국 진심은 통한다’는 소신으로 영업해 돌풍을 몰고 왔다. 그가 유리자산운용과 우리자산운용 사장을 거쳐 초대 펀드온라인코리아 대표로 발탁된 배경이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