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시인' 빌 비올라 "삶은 고통…그게 바로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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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디오 아트 거장…한때 백남준 조수
5월3일까지 국제갤러리 개인전…7점 선봬
5월3일까지 국제갤러리 개인전…7점 선봬
높이 5m에 이르는 스크린 위로 영상이 시작된다. 검은색 액체를 뒤집어쓴 채 어둠 속에 서 있는 남자, 이내 바닥에 고여 있던 검은 물방울이 하나둘 위로 올라간다. 물방울은 곧 폭우로 변한다. 그렇게 한동안 시커먼 폭우가 바닥에서 위로 거꾸로 치솟은 뒤 액체의 색깔이 바뀐다. 검은색에서 붉은색으로 다시 흰색으로 그리고 투명한 물로…. 마지막엔 남성의 머리 위로 부드러운 안개가 피어난다.
미국 비디오작가 빌 비올라의 8분22초짜리 영상작품 ‘도치된 탄생’(2014)은 흙, 피, 우유, 물, 공기를 통해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나 고통 안에 살다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삶….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제자인 빌 비올라(64·사진)의 대규모 개인전이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2~3관에서 5일 개막, 오는 5월3일까지 열린다. 2003년, 2008년에 이은 국내 세 번째 전시다. 뉴욕 출신으로 시러큐스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비올라는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작업 초기부터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정신적·심리적 의식의 흐름을 탐구해왔다. 1970년대에 시러큐스 에버슨미술관에서 비디오 테크니션으로 근무할 당시 백남준의 조수로 전시 설치를 도운 적이 있다.
최근 2년간 작업한 7개 영상 작품이 전시된다. 지난해 5월 영국 세인트폴 성당의 의뢰로 200만달러(약 22억원)를 들여 제작한 ‘순교자’ 시리즈 중 하나인 ‘물의 순교자’도 소개된다. 7분10초짜리 영상에선 발목이 밧줄에 묶인 채 고통스러워 하던 한 남성이 서서히 십자가 모양으로 매달린다. 거꾸로 들려진 남성에게 폭포수처럼 거대한 물줄기가 내리친다. 폭력적인 물줄기는 점점 굵어지지만 순교자는 굳건하다.
17분12초짜리 영상작품 ‘내적 통로’(2013)도 인상적이다. 한 남성이 사막을 배경으로 계속 걷고 있다. 화면에서 하얀 점으로 피어나 점점 카메라 렌즈를 향해 걷는다. 천천히 조금씩. 아주 지루할 만큼 느리게 걸어온다. 그러다 화면의 아주 가까운 곳에 도달하면 스크린은 갑자기 난데없이 도발적인 영상으로 도배된다. 개가 짖거나, 어린 시절의 기억,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질서없이 펼쳐진다. 다시 화면이 바뀌고 남자는 등을 보이며 멀리 걸어간다.
이날 전시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비올라는 “부처도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듯이 고통은 인간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세상을 보는 프레임은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성장하고 있다”며 “마지막 숨을 거둘 때는 그 프레임이 더 커져 있을 텐데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백남준에 대해서 “당시 비디오아트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배울 수 있도록 했다”며 “그는 내 인생 최고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02)733-4879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미국 비디오작가 빌 비올라의 8분22초짜리 영상작품 ‘도치된 탄생’(2014)은 흙, 피, 우유, 물, 공기를 통해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나 고통 안에 살다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삶….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제자인 빌 비올라(64·사진)의 대규모 개인전이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2~3관에서 5일 개막, 오는 5월3일까지 열린다. 2003년, 2008년에 이은 국내 세 번째 전시다. 뉴욕 출신으로 시러큐스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비올라는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작업 초기부터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정신적·심리적 의식의 흐름을 탐구해왔다. 1970년대에 시러큐스 에버슨미술관에서 비디오 테크니션으로 근무할 당시 백남준의 조수로 전시 설치를 도운 적이 있다.
최근 2년간 작업한 7개 영상 작품이 전시된다. 지난해 5월 영국 세인트폴 성당의 의뢰로 200만달러(약 22억원)를 들여 제작한 ‘순교자’ 시리즈 중 하나인 ‘물의 순교자’도 소개된다. 7분10초짜리 영상에선 발목이 밧줄에 묶인 채 고통스러워 하던 한 남성이 서서히 십자가 모양으로 매달린다. 거꾸로 들려진 남성에게 폭포수처럼 거대한 물줄기가 내리친다. 폭력적인 물줄기는 점점 굵어지지만 순교자는 굳건하다.
17분12초짜리 영상작품 ‘내적 통로’(2013)도 인상적이다. 한 남성이 사막을 배경으로 계속 걷고 있다. 화면에서 하얀 점으로 피어나 점점 카메라 렌즈를 향해 걷는다. 천천히 조금씩. 아주 지루할 만큼 느리게 걸어온다. 그러다 화면의 아주 가까운 곳에 도달하면 스크린은 갑자기 난데없이 도발적인 영상으로 도배된다. 개가 짖거나, 어린 시절의 기억,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질서없이 펼쳐진다. 다시 화면이 바뀌고 남자는 등을 보이며 멀리 걸어간다.
이날 전시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비올라는 “부처도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듯이 고통은 인간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세상을 보는 프레임은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성장하고 있다”며 “마지막 숨을 거둘 때는 그 프레임이 더 커져 있을 텐데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백남준에 대해서 “당시 비디오아트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배울 수 있도록 했다”며 “그는 내 인생 최고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02)733-4879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