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이정수 플리토 대표 "누구나 참여하는 번역 서비스…지구촌 언어장벽 무너뜨릴 것"
집단 지성을 활용한 번역 플랫폼 기업인 플리토를 2012년 창업한 이정수 대표(사진)는 쿠웨이트에서 태어났다. 해외 주재원이던 부친을 따라 쿠웨이트에서 4년 살고 미국(2년)과 영국(3년), 사우디아라비아(7년)를 거쳐 중학교 2학년 때 한국에 들어왔다.

영어에 능숙하다 보니 대학 다닐 때 친구 사귀기도 좋았다. 영어 관련 숙제나 프로젝트를 도와주고 점심이나 저녁을 얻어먹는 식이었다. 어느 날 ‘주변에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많고, 이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은데 잘 연결이 안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서버를 하나 만들었다. 일일이 만나서 번역을 의뢰하고 결과물을 받기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도 꾸몄다. A언어를 B언어로 번역해 달라고 하면 두 언어를 아는 친구를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고려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서비스하다가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번역 플랫폼으로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대학 졸업 후 SK텔레콤에 입사한 그는 2009년 9월 사내 벤처로 플리토의 전신인 플래닛B612라는 번역 플랫폼을 만들었다. 낮에는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는 일을 하다가 퇴근하면 사내 벤처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회사 사정으로 사내 벤처를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다니느냐, 회사를 나가 벤처기업을 창업하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퇴사를 망설이던 그는 2011년 10월 이스라엘에 출장 갔다가 결심을 굳혔다.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플리토! 꿈을 이루자’라고 쪽지도 남겼다. 다음에 이스라엘에 올 때는 벤처기업 대표가 돼서 오자는 각오를 다졌다.

SK텔레콤 인터넷사업부가 분사하면서 SK플래닛으로 자리를 옮긴 이 대표는 사표를 내고 2012년 9월 플리토를 설립했다. 그는 2013년 10월 정확히 2년 만에 예루살렘 통곡의 벽 앞에 다시 섰다.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플리토는 이용자끼리 자발적으로 번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번역하고 받은 포인트로는 상품을 구매하거나 구호단체에 기부할 수 있다. 영어로 보내야 할 이메일을 작문하는 데 플리토를 활용할 수도 있고,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자국어로 번역해 보고 싶을 때도 플리토를 쓸 수 있다. 플리토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도 동남아 팬들이 한류 스타들의 트위터를 플리터에서 번역하면서다. 지금은 세계 170여개국 400만 사용자가 17개 언어로 플리토를 이용하고 있다. 하루 평균 번역 요청 건수는 7만건에 이른다.

이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옛날 일기를 들여다보면 초심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다고 했다. 창업 후 낯선 나라에서 매 끼니를 샌드위치로 때우고 난방도 안 되는 방에서 잠자다 새벽 5시에 추위에 떨면서 깨고는 한 경험이 일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