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 기자의 교육라운지] 정규수업 안되고 보충수업 되는 '이상한' 선행학습
교육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관심사입니다. 조기교육, 영재교육부터 초·중·고교, 대학, 평생교육까지 교육은 '보편적 복지' 문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계층과 지역간 교육 인프라와 정보의 격차가 존재합니다. 한경닷컴은 다양한 교육 문제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김봉구 기자의 교육라운지'를 연재합니다. 입시를 비롯한 교육 전반의 이슈를 다룹니다. 교육 관련 칼럼과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Q&A 등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교육부가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공교육정상화법) 일부개정안을 18일부터 다음달 27일까지 입법예고 했다. 핵심은 학교의 ‘방과후학교’ 과정에 한해 선행학습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공교육정상화법은 ‘선행학습금지법’이란 약칭으로도 불린다. 작년 하반기 시행된 이 법은 학교 교육과정에서의 선행학습을 전면 금지했다. 학생들의 과도한 공부 부담을 덜자는 취지였지만 이번 개정안은 보충수업에선 선행학습을 할 수 있도록 빗장을 풀었다. 교육부는 “방과후학교에서까지 다양한 교육 수요를 막으면 사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어 규제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학교 정규수업 시간엔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보충수업 시간엔 선행학습을 장려하는 꼴이 된다. 현장에선 벌써부터 “그렇게 무 자르듯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칼 같이 법을 지킨다고 치자. 보충수업 시간에 방정식을 가르친 뒤 정규수업 시간엔 덧셈 뺄셈을 가르치는 모양새는 우습지 않을까.

설익고 애매모호한 대책이다. 기준을 공교육 대 사교육 구도로만 설정했기 때문이다. 근본적 프레임은 선행학습 허용 여부다. 법의 기본 취지가 그렇다. 이런 본질적 문제를 놔두고 ‘선행학습을 공교육으로 받느냐, 사교육으로 받느냐’는 부차적 문제에 매달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교육의 본질이 뭔가. 내 아이를 다른 아이보다 경쟁구조의 우위에 서게 하고 싶은 욕망이다. 그 욕망을 실현하는 손쉬운 방편이 선행학습이다. 선행학습, 과도한 학습량, 암기 위주 교육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런 현실에서 학생들이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건 먼 나라 얘기다. 애써 선행학습 금지와 공교육 정상화를 강조한 법이 뒷걸음질 친 것 아닌가 싶다.

당초 이 법은 공교육에서만 시행되면서 반쪽짜리 법이란 비판을 받았다. 위헌 논란으로 인해 학원 등 사교육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법을 공교육에 한정하면서 사실상 선행학습 수요를 사교육으로 내모는 ‘풍선효과’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런 우려를 반영한 개정안이란 게 교육부의 설명이지만, 핀트가 어긋났다는 반응이 많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18일 “현행 대입의 시기적 문제와 학부모 요구로 인해 사실상 학교에서 선행학습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이상만 좇아 신설한 법으로 인해 학생과 학부모, 학교가 폐해를 겪고 있다”며 “방과후학교의 선행학습 허용이란 땜질식 법 개정에 머물지 말고 사교육에 대한 실질적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보수 성향인 교총마저 “선행학습의 출발지인 사교육을 놔두고 학교만을 규제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는 상황. 사교육 선행학습 대책을 내놓지 않은 개정안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야심차게 공교육정상화법을 시행한 게 불과 반년 전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법의 골자인 선행학습 금지가 번복·퇴색됐다고 꼬집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예상치 못한 문제점에 발 빠르게 대응한 게 아니라 애초에 정책 시뮬레이션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오락가락 교육 정책에 교사는 피곤하고 학생은 혼란스럽고 학부모는 어리둥절하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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