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작동원리가 담긴 책을 읽어라"…"잘못된 지식을 얻으면 죄를 짓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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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잃은 내가 만난 운명의 Book
(16) 복거일 이영훈 정규재의'책 토크'…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16) 복거일 이영훈 정규재의'책 토크'…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소설가 복거일,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이 최근 한자리에 모였다. 책, 책, 책을 말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늘 궁금하다. 이 시대의 어른들은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는지. 늘 듣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 독서법이다. 정 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지성들의 책 토크’를 정리한다.
▷정규재=자유경제원이 ‘나를 깨우는 33한 책’을 출간했습니다. 33권의 책을 소개한 책입니다. 저도 여기에 조지 오웰의 ‘1984’를 소개했습니다.
▷복거일=자유주의 고전과 현대 한국 사회를 잘 진단한 책이 배열돼 있어요. 저는 두 권을 소개했어요. 책을 짧게 소개한 책이 ‘33한 책’이죠. 현대인들은 바쁩니다. 지식이 쏟아져 나오니 압축한 책의 의미는 있죠. 시의에 맞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훈=‘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를 소개했어요. 도메 다쿠오 오사카 경제학과 교수가 쓴 책입니다. 애덤 스미스 사상의 정수를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압축적으로 잘 정리한 책입니다. 일반 독자들도 핵심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돼 있죠. 이 책을 읽고 이득을 봤어요.
▷정규재=복 선생님은 어떤 책을 소개하셨나요.
▷복거일=리처드 파이프스의 ‘소유와 자유’입니다. 파이프스는 러시아 출신 역사학자입니다. 그는 의문을 가졌어요. ‘왜 러시아는 못 살고 서구는 잘 사는가.’ 그 이유를 소유권에서 찾은 책이죠. ‘소유가 없으면 자유도 없다’는 것이 책의 주제입니다. 자유가 없으면 경제성장이 없고, 경제성장이 없으면 빈곤해진다는 얘기지요.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래요. 러시아는 오랫동안 농노제도 아래에 있어서 소유권 개념이 생겨나지 못했어요. 서구는 반대였죠. 역사학자가 본 자유주의 재산권 이론이란 점에서 심도가 있습니다.
이 “후쿠야마의 ‘신뢰’가 나를 바꿔놔”
복 “아이슬리의 ‘광대한 여행’ 충격”
▷정규재=지적인 전환을 경험했다거나, 새로운 지평을 열 게 한 책이 있나요?
▷이영훈=후쿠야마의 ‘신뢰’라는 책이 저를 바꿔놨죠. 전혀 몰랐던 지적인 세계가 있다는 걸 가르쳐준 책입니다. 이 책을 계기로 애덤 스미스와 사회과학 고전을 읽기 시작했어요. 이 전에 읽었던 책들은 마르크스-레닌류였지요. 체제의 모순, 자본주의의 모순, 갈등과 투쟁에 초점을 맞춘 책을 탐독했어요. 후쿠야마를 읽고 그런 책들의 허구성을 깨닫게 됐지요.
▷복거일=미국 인류학자 로런 아이슬리가 쓴 ‘광대한 여행(The Immense Journey)’을 읽고 충격을 받았지요. 생물학 책이죠. 경제 현상 밑에 있는 생물적 현상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제가 얻은 경제학 지식이 생물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경제학은 생물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경제학은 심리학으로 수렴하고 심리학은 생물학으로 수렴하니까요.
▷정규재=젊었을 때부터 세계관이 자리잡았네요.
▷복거일=24세 때였으니, 어릴 때 느낀 게 지금까지 커진 것이지요. 제 사상이 굽이친 적은 없어요. 생물학, 심리학, 경제학 등으로 비교적 체계적으로 쌓아왔다고 할 수 있어요. 다행스럽게도 지적 방황은 없었어요. 저는 잘못된 지식을 얻으면 죄를 짓는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배운다라고 생각했어요.
이 “대학 때 잘못된 책 읽어 후회”
복 “책 읽으면 좋은 책 선택 가능”
▷이영훈=지금은 고인이 된 김근태 선배가 “너한테만 특별히 비밀스런 책을 준다”면서 준 게 모리스 돕의 ‘자본주의 발전연구’였죠. 일본어로 돼 있었는데 몇 번 읽고 외웠어요. 서클에 들어가서 운동권 선배들이 준 좌파 책을 읽었어요. 근대인의 소외, 역사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이행논쟁 등이죠. 운동권 학생들의 전형적인 지식 습득과정이었죠. 하지만 자료와 사료를 찾아보니 이런 책들은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았더군요. 회의가 깊어졌고 다행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규재=지식이 짧으면 자기가 알고 있는 가벼운 지식에 배운 것을 끼워 넣죠. 잘 빠져나오기 힘든데 빠져 나오셨어요.
▷이영훈=책만 가지고 지식을 축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인은 항상 현실의 다양한 움직임과 풍부한 사료를 읽어야 해요. 지식인은 여기서 떠나면 안 되요. 공부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망령됩니다. 현실의 굳건한 바탕 위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죠.
▷정규재=독자들은 원자료 즉 사료에 접근하기 힘듭니다. 일반인은 지식인들이 창조한 것을 보는 것이어서 책을 제대로 고르기가 쉽지 않아 고민입니다.
▷이영훈=좋은 책을 어떻게 고르느냐는 매우 중요해요. 피케티나 마이클 샌델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피케티 책을 읽다가 집어 치워버렸어요. 남이 좋다고 하니까 따라서 읽는 경우가 많아요. 독서를 할 땐 절실함이 있어야 해요.
이 “전자책 때문에 페이퍼 책 줄지않아”
정 “좌편향 책 너무 많아 큰 일”
▷정규재=좌편향적인 책이 출판계를 관철하고 있어요. 이런 풍토가 고쳐지리라고 봅니까?
▷복거일=고쳐지지 않아요. 샌델의 경우에는 드러내놓고 자유주의를 싫어해요. 경제 행위, 즉 돈 벌고 장사하는 것에 대해 혐오를 보입니다. 그 사람은 경제학을 읽지 않았어요. 시장에 대한 편향이 있죠.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시장, 돈에 대한 혐오가 있어요. 좌파 지식인들은 모순이 많아요. 노동조합이 임금을 조금 올리려고 파업하고, 협력업체를 압박하는 데 대해 박수를 치는 게 좌파 지식인이에요. 돈을 혐오한다면서 하는 행동은 돈을 밝혀요. 가치체계의 모순이죠.
▷정규재=전자화 시대가 되면서 지하철서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이 사라졌어요. 종이책이 사라지나요?
▷복거일=책 자체가 사라질 수 있어요. 지금은 서버에 저장하는데 서버 저장물은 어쨌든 없어지게 마련이죠. 기록물이 사라져요. 정보는 늘었지만 기록은 오래 못 가는 문제가 있어요. 하드 카피가 줄어드니까 영국에서는 하드카피를 남기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지요. 기록으로서의 책이 사라지는 게 우려스러워요.
▷이영훈=논문을 쓸 때는 전자화가 큰 도움이 돼요. 혁명을 느끼고 있어요. 정보의 다양성이 예전과는 다르게 풍부합니다. 키워드 하나를 치면 관련 자료가 쏟아져요. 예전 같으면 자료 하나를 찾는 것도 어려웠어요. 엄청난 정보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전자책 때문에 페이퍼 책이 줄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책만의 장점이 있는 것이죠.
▷정규재=책을 이렇게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한 말씀해주시죠. 왕도가 없을 겁니다만.
▷이영훈=책을 선별하는 눈을 갖는 게 중요해요. 인문 사회 역사 교양 등 세계적인 수준에 맞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인류진화 발전 과정에서 진화가 폐쇄된 지식들, 예를 들어 유교 이런 책은 문제예요. 실용서를 읽는 문화가 없어요. 죽은 지식을 얻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복거일=책은 저자와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저자가 일방적으로 얘기를 하잖아요. 읽는 사람은 저자의 주장을 의심하고 긍정하면서 대화를 합니다. 독서를 특별하게 보지 말고, 대화를 해가면 낫지 않을까요.
정리=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복거일=자유주의 고전과 현대 한국 사회를 잘 진단한 책이 배열돼 있어요. 저는 두 권을 소개했어요. 책을 짧게 소개한 책이 ‘33한 책’이죠. 현대인들은 바쁩니다. 지식이 쏟아져 나오니 압축한 책의 의미는 있죠. 시의에 맞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훈=‘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를 소개했어요. 도메 다쿠오 오사카 경제학과 교수가 쓴 책입니다. 애덤 스미스 사상의 정수를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압축적으로 잘 정리한 책입니다. 일반 독자들도 핵심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돼 있죠. 이 책을 읽고 이득을 봤어요.
▷정규재=복 선생님은 어떤 책을 소개하셨나요.
▷복거일=리처드 파이프스의 ‘소유와 자유’입니다. 파이프스는 러시아 출신 역사학자입니다. 그는 의문을 가졌어요. ‘왜 러시아는 못 살고 서구는 잘 사는가.’ 그 이유를 소유권에서 찾은 책이죠. ‘소유가 없으면 자유도 없다’는 것이 책의 주제입니다. 자유가 없으면 경제성장이 없고, 경제성장이 없으면 빈곤해진다는 얘기지요.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래요. 러시아는 오랫동안 농노제도 아래에 있어서 소유권 개념이 생겨나지 못했어요. 서구는 반대였죠. 역사학자가 본 자유주의 재산권 이론이란 점에서 심도가 있습니다.
이 “후쿠야마의 ‘신뢰’가 나를 바꿔놔”
복 “아이슬리의 ‘광대한 여행’ 충격”
▷정규재=지적인 전환을 경험했다거나, 새로운 지평을 열 게 한 책이 있나요?
▷이영훈=후쿠야마의 ‘신뢰’라는 책이 저를 바꿔놨죠. 전혀 몰랐던 지적인 세계가 있다는 걸 가르쳐준 책입니다. 이 책을 계기로 애덤 스미스와 사회과학 고전을 읽기 시작했어요. 이 전에 읽었던 책들은 마르크스-레닌류였지요. 체제의 모순, 자본주의의 모순, 갈등과 투쟁에 초점을 맞춘 책을 탐독했어요. 후쿠야마를 읽고 그런 책들의 허구성을 깨닫게 됐지요.
▷복거일=미국 인류학자 로런 아이슬리가 쓴 ‘광대한 여행(The Immense Journey)’을 읽고 충격을 받았지요. 생물학 책이죠. 경제 현상 밑에 있는 생물적 현상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제가 얻은 경제학 지식이 생물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경제학은 생물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경제학은 심리학으로 수렴하고 심리학은 생물학으로 수렴하니까요.
▷정규재=젊었을 때부터 세계관이 자리잡았네요.
▷복거일=24세 때였으니, 어릴 때 느낀 게 지금까지 커진 것이지요. 제 사상이 굽이친 적은 없어요. 생물학, 심리학, 경제학 등으로 비교적 체계적으로 쌓아왔다고 할 수 있어요. 다행스럽게도 지적 방황은 없었어요. 저는 잘못된 지식을 얻으면 죄를 짓는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배운다라고 생각했어요.
이 “대학 때 잘못된 책 읽어 후회”
복 “책 읽으면 좋은 책 선택 가능”
▷이영훈=지금은 고인이 된 김근태 선배가 “너한테만 특별히 비밀스런 책을 준다”면서 준 게 모리스 돕의 ‘자본주의 발전연구’였죠. 일본어로 돼 있었는데 몇 번 읽고 외웠어요. 서클에 들어가서 운동권 선배들이 준 좌파 책을 읽었어요. 근대인의 소외, 역사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이행논쟁 등이죠. 운동권 학생들의 전형적인 지식 습득과정이었죠. 하지만 자료와 사료를 찾아보니 이런 책들은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았더군요. 회의가 깊어졌고 다행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규재=지식이 짧으면 자기가 알고 있는 가벼운 지식에 배운 것을 끼워 넣죠. 잘 빠져나오기 힘든데 빠져 나오셨어요.
▷이영훈=책만 가지고 지식을 축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인은 항상 현실의 다양한 움직임과 풍부한 사료를 읽어야 해요. 지식인은 여기서 떠나면 안 되요. 공부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망령됩니다. 현실의 굳건한 바탕 위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죠.
▷정규재=독자들은 원자료 즉 사료에 접근하기 힘듭니다. 일반인은 지식인들이 창조한 것을 보는 것이어서 책을 제대로 고르기가 쉽지 않아 고민입니다.
▷이영훈=좋은 책을 어떻게 고르느냐는 매우 중요해요. 피케티나 마이클 샌델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피케티 책을 읽다가 집어 치워버렸어요. 남이 좋다고 하니까 따라서 읽는 경우가 많아요. 독서를 할 땐 절실함이 있어야 해요.
이 “전자책 때문에 페이퍼 책 줄지않아”
정 “좌편향 책 너무 많아 큰 일”
▷정규재=좌편향적인 책이 출판계를 관철하고 있어요. 이런 풍토가 고쳐지리라고 봅니까?
▷복거일=고쳐지지 않아요. 샌델의 경우에는 드러내놓고 자유주의를 싫어해요. 경제 행위, 즉 돈 벌고 장사하는 것에 대해 혐오를 보입니다. 그 사람은 경제학을 읽지 않았어요. 시장에 대한 편향이 있죠.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시장, 돈에 대한 혐오가 있어요. 좌파 지식인들은 모순이 많아요. 노동조합이 임금을 조금 올리려고 파업하고, 협력업체를 압박하는 데 대해 박수를 치는 게 좌파 지식인이에요. 돈을 혐오한다면서 하는 행동은 돈을 밝혀요. 가치체계의 모순이죠.
▷정규재=전자화 시대가 되면서 지하철서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이 사라졌어요. 종이책이 사라지나요?
▷복거일=책 자체가 사라질 수 있어요. 지금은 서버에 저장하는데 서버 저장물은 어쨌든 없어지게 마련이죠. 기록물이 사라져요. 정보는 늘었지만 기록은 오래 못 가는 문제가 있어요. 하드 카피가 줄어드니까 영국에서는 하드카피를 남기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지요. 기록으로서의 책이 사라지는 게 우려스러워요.
▷이영훈=논문을 쓸 때는 전자화가 큰 도움이 돼요. 혁명을 느끼고 있어요. 정보의 다양성이 예전과는 다르게 풍부합니다. 키워드 하나를 치면 관련 자료가 쏟아져요. 예전 같으면 자료 하나를 찾는 것도 어려웠어요. 엄청난 정보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전자책 때문에 페이퍼 책이 줄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책만의 장점이 있는 것이죠.
▷정규재=책을 이렇게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한 말씀해주시죠. 왕도가 없을 겁니다만.
▷이영훈=책을 선별하는 눈을 갖는 게 중요해요. 인문 사회 역사 교양 등 세계적인 수준에 맞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인류진화 발전 과정에서 진화가 폐쇄된 지식들, 예를 들어 유교 이런 책은 문제예요. 실용서를 읽는 문화가 없어요. 죽은 지식을 얻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복거일=책은 저자와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저자가 일방적으로 얘기를 하잖아요. 읽는 사람은 저자의 주장을 의심하고 긍정하면서 대화를 합니다. 독서를 특별하게 보지 말고, 대화를 해가면 낫지 않을까요.
정리=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