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박문호 ETRI 책임연구원 "자연과학 알아야 기업 글로벌 경영도 감 잡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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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과학화 운동' 앞장…박문호 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1분 만에 세계지도 '뚝딱'
유럽·아시아 등 그리다 보면 기후·토양·산맥 관심 커져
무역항로·블록 경제 한눈에
7년전 '박자세' 설립
우주의 진화·뇌과학 등 강의…총 수강생 5000명 훌쩍 넘어
바다·불교 그리고 깨달음
6살 때 바다 보고 경외 느껴…대학 와선 전국의 암자 찾아
1분 만에 세계지도 '뚝딱'
유럽·아시아 등 그리다 보면 기후·토양·산맥 관심 커져
무역항로·블록 경제 한눈에
7년전 '박자세' 설립
우주의 진화·뇌과학 등 강의…총 수강생 5000명 훌쩍 넘어
바다·불교 그리고 깨달음
6살 때 바다 보고 경외 느껴…대학 와선 전국의 암자 찾아
압둘라 2세 이븐 알후세인 요르단 국왕(53)은 지난달 5일 자국의 공군 조종사를 불에 태워 죽이는 영상을 공개한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공습을 감행했다. 한때 압둘라 국왕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IS를 공습할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결국 압둘라 국왕은 전투복을 입고 전투기에 오르는 군인들을 독려하는 선에서 출전을 대신했다. 그가 세계인에게 보여준 모습은 단지 자국 군인이 살해당한 분노에 취한 쇼맨십이었을까.
“아닙니다. 시리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 이슬람 국가들은 지리적인 터전에 따라 계파가 복잡하고 교리 해석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릅니다. 압둘라 국왕의 ‘직접 출전’ 제스처도 이런 뿌리깊은 다른 계파에 대한 적대감과 무관치 않습니다. 지리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줍니다. 세계지도를 머릿속에 넣고 있으면 최근 벌어지는 일들을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업인들도 기후나 토양, 산맥, 강 등 자연과학의 기본 요소를 알아야 글로벌 경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박문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55)은 세계지도를 1분 만에 그려낸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아시아를 거쳐 다시 유럽에서 끝낸다. 그는 세계지도를 그릴 줄 알아야만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경제 현상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지도를 그리다 보면 지역과 국가의 기본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유럽을 그리면 유럽연합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이치지요. 모든 경제 현상도 결국 자연과학에서 출발합니다. 석유가 매장된 곳을 찾으려면 지질이나 토양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기업인들이 틈틈이 세계지도를 그리는 연습을 한다면 과거 무역항로에서 현재 블록화된 경제권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과학의 실상과 위력을 대중에게 쉽게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는 박 연구원을 만났다.
세 번의 깨달음, 무한(無限)에 경외
그는 1959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울진군 후포읍으로 이사해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이사 갈 때 동해안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바다를 처음 봤습니다. 그때 무한이라는 단어는 몰랐지만 끝없이 대지를 향해 휘몰아치는 바다를 보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 그때 그 기억이 저장돼 현재 제가 매주 일요일 4시간씩 강의하는 ‘137억년 우주의 진화’에 녹아 있을 것입니다.”
고교 졸업 후 경북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이런 경외감의 근원을 찾으려 틈틈이 물리학을 공부했다. 동아리 활동은 대구 구도회에서 했다. 그는 여기서 두 번째 바다를 보았다. 첫 바다가 동해안이었다면 두 번째 바다는 동아리에서 수련회를 간 전남 순천 송광사였다. 법회에서 법정 스님의 독서에 대한 찬탄(讚歎)이 지금까지 책을 가까이 하게 된 인연이라고 했다.
“새벽 예불이 마치 어릴 적 본 바다처럼 제 감성을 깨웠습니다. 범종 소리와 함께 사물이 깨어나는 송광사 주변의 모든 자연을 온몸으로 느꼈죠. 그때부터 불교에 심취해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 서른네 살까지 14년 정도 시간만 나면 영천 은해사, 대구 팔공산 묘봉암, 경주 단석산 신선암 등의 암자를 찾아 불교 공부를 했습니다. 불교서적 1000여권을 읽었을 때쯤 가장 추상적 학문인 입자물리학을 탐닉했고 뇌 공부를 하는 데 단초가 됐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다 1987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으로 옮겼다. 1991~1997년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전자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생활 중 전공 외에 천문학과 뇌과학에 심취했다. 귀국할 때 그의 짐 보따리엔 뇌과학 서적만 100권이 있었다. 그는 귀국길 비행기에서 세 번째 바다를 봤다. 비행기가 태평양 상공을 날 때 어둠 속에서 성층권을 넘어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여섯 살, 스무 살에 이어 마흔 살에 다시 본 자연의 위대함이었다. 자연과학으로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뇌의 유희를 즐기겠다고 결심한 계기였다.
매년 ‘박자세’ 회원들과 해외 탐사 떠나
귀국 후 그는 2002년 1년 동안에 100권의 책을 읽자고 시작한 ‘백북스 학습 독서공동체’에 들어갔다. 공동체인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과학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회원들에게 5년간 천문학과 생물학 강의를 했다. 2008년 베스트셀러가 된 ‘뇌 생각의 출현’이란 책도 펴냈다. 그가 읽은 자연과학 전문서는 3000권에 달한다.
어떻게 시간을 쪼개 자연과학을 공부하는지 궁금했다. “공부는 가르치는 것이 가르침을 받는 것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그만큼 많이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의 강의를 시작한 10여년 전부터 밤 9시에 자고 새벽 3~4시께 일어납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2시간가량 공부한 뒤 운동하고 출근합니다. 공부는 일상 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속에 일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자연과학 문화운동을 주창, 2007년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박자세)’을 설립해 4500여명의 회원을 이끌고 있다. 강의 프로그램은 137억년 우주의 진화, 뇌과학 등이다. 올해로 7년째 강의 중인 ‘137억년 우주의 진화’는 연 수강생이 5000명에 달한다.
그는 박자세에서 회원들에게 암기와 반복을 강조한다. 지구라는 행성의 인간이 5억년 전 물고기에서 출발한 것도 자연이 암기와 반복을 통해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자세 회원들과 해마다 해외 탐사를 떠난다. 2007년 서호주부터 시작해 몽골 고비사막, 미국 남서부 지역 등을 많게는 세 번씩 다녀왔다. 탐사대원들은 탐사 기간에 종종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무한한 자연의 위대함에 동화돼서다. 대자연 앞에서는 뇌 속 활동인 철학·인문학 등이 자연 앞에 그저 용해되고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탐사를 다녀오면 그 결과를 정리해 책으로 출간한다. 앞으로 실크로드, 아프리카, 남미까지 지구 진화와 인류의 이동 경로를 탐사해 20권 정도 학술서적을 낼 계획이다.
‘자연과학 문화운동’ 지속할 것
그는 문과 이과의 장벽이 사라지는 3년 후가 걱정된다고 했다. 2018년부터 정치, 경제, 물리, 화학 등 세세하게 나뉜 사회와 과학 과목이 통합 과목 형태로 합쳐지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분야가 합쳐지면 각자의 영역에서 진리를 탐구할 기반이 사라진다고 그는 주장했다.
“지금 자연과학 발전의 걸림돌 중 하나가 비전문가들이 과학 정책을 생산하거나 방송 등 과학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입니다. 특정 과 선호 현상으로 볼 때 앞으로 문과와 이과가 통합되면 자연과학은 설 자리를 잃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연과학적 깨달음은 철학이나 종교와 마찬가지로 감동을 주고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어렵지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들을 선정해 공부의 영역을 확장하는 자연과학 문화운동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그는 가끔 사람들이 “박자세는 마치 ‘신흥종교’ 같다”고 한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는 “박자세는 시공의 사유, 기원의 추적, 위대한 패턴의 발견 등 과학적 시선에서 지구에서 일어나는 생명 현상과 자연 현상을 대학 과정 교과 수준에서 공부하는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ETRI 연구원의 ‘주말 일탈’
바이크·경비행기·댄스…스트레스 한 방에 보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근무하는 연구원은 전체 직원 2500명 중 2300명(92%)에 달한다. 연구원 수는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나머지 24개 정부출연연구원 중 가장 많다. 인원이 많다 보니 각양각색의 취미를 가진 연구원이 눈에 띈다. 정길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홍보팀장은 “하루종일 연구에만 매달려서인지 상대적으로 몸을 많이 움직이는 취미를 가진 연구원이 많다”고 소개했다.
주소정보연구팀에서 근무하는 윤대섭 선임연구원(42)의 취미는 바이크 라이딩이다. 10여년 경력의 그는 휴일이면 1인용 텐트 하나를 할리 데이비슨에 싣고 시동을 건다. 그는 “바이크는 내게 풍요로운 삶을 위한 비타민”이라고 말했다.
주말마다 하늘을 나는 연구원도 있다. 태양광기술연구실에서 일하는 주무정 책임연구원(57)은 20여년 전부터 초경량 비행기를 타고 있다. 미국에서 중고 비행기를 구입할 정도로 초경량 비행기의 매력에 빠져 있다. 주 책임연구원은 “아무나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비행 면허는 의외로 까다롭지 않다”며 “은퇴 후 비행장 옆에 창고가 딸린 작은 집을 얻어 비행기를 조립하고 싶다”고 말했다. 업무 스트레스를 방송댄스로 날려버리는 자율주행시스템연구실의 김진우 선임연구원(35)은 입사 6년차로 조직 내 젊은 피에 속한다. 김 선임연구원은 “연구처럼 춤사위도 늘 똑같지 않다”며 “늙어서도 내 좌우명은 ‘춤생춤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20여년간 즐겨 한 골프를 뒤로하고 목공예를 시작한 연구원도 있다. 데이터관리연구실의 원종호 책임연구원(51)은 주말이면 대패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알싸한 나무 향이 좋다는 그는 “톱질, 대패질에 따른 운동량도 많지만 무엇보다 집중이 필요해 잡다한 생각이 다 날아간다”고 강조했다.
대전=임호범 기자 lhb@hankyung.com
“아닙니다. 시리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 이슬람 국가들은 지리적인 터전에 따라 계파가 복잡하고 교리 해석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릅니다. 압둘라 국왕의 ‘직접 출전’ 제스처도 이런 뿌리깊은 다른 계파에 대한 적대감과 무관치 않습니다. 지리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줍니다. 세계지도를 머릿속에 넣고 있으면 최근 벌어지는 일들을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업인들도 기후나 토양, 산맥, 강 등 자연과학의 기본 요소를 알아야 글로벌 경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박문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55)은 세계지도를 1분 만에 그려낸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아시아를 거쳐 다시 유럽에서 끝낸다. 그는 세계지도를 그릴 줄 알아야만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경제 현상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지도를 그리다 보면 지역과 국가의 기본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유럽을 그리면 유럽연합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이치지요. 모든 경제 현상도 결국 자연과학에서 출발합니다. 석유가 매장된 곳을 찾으려면 지질이나 토양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기업인들이 틈틈이 세계지도를 그리는 연습을 한다면 과거 무역항로에서 현재 블록화된 경제권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과학의 실상과 위력을 대중에게 쉽게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는 박 연구원을 만났다.
세 번의 깨달음, 무한(無限)에 경외
그는 1959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울진군 후포읍으로 이사해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이사 갈 때 동해안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바다를 처음 봤습니다. 그때 무한이라는 단어는 몰랐지만 끝없이 대지를 향해 휘몰아치는 바다를 보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 그때 그 기억이 저장돼 현재 제가 매주 일요일 4시간씩 강의하는 ‘137억년 우주의 진화’에 녹아 있을 것입니다.”
고교 졸업 후 경북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이런 경외감의 근원을 찾으려 틈틈이 물리학을 공부했다. 동아리 활동은 대구 구도회에서 했다. 그는 여기서 두 번째 바다를 보았다. 첫 바다가 동해안이었다면 두 번째 바다는 동아리에서 수련회를 간 전남 순천 송광사였다. 법회에서 법정 스님의 독서에 대한 찬탄(讚歎)이 지금까지 책을 가까이 하게 된 인연이라고 했다.
“새벽 예불이 마치 어릴 적 본 바다처럼 제 감성을 깨웠습니다. 범종 소리와 함께 사물이 깨어나는 송광사 주변의 모든 자연을 온몸으로 느꼈죠. 그때부터 불교에 심취해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 서른네 살까지 14년 정도 시간만 나면 영천 은해사, 대구 팔공산 묘봉암, 경주 단석산 신선암 등의 암자를 찾아 불교 공부를 했습니다. 불교서적 1000여권을 읽었을 때쯤 가장 추상적 학문인 입자물리학을 탐닉했고 뇌 공부를 하는 데 단초가 됐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다 1987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으로 옮겼다. 1991~1997년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전자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생활 중 전공 외에 천문학과 뇌과학에 심취했다. 귀국할 때 그의 짐 보따리엔 뇌과학 서적만 100권이 있었다. 그는 귀국길 비행기에서 세 번째 바다를 봤다. 비행기가 태평양 상공을 날 때 어둠 속에서 성층권을 넘어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여섯 살, 스무 살에 이어 마흔 살에 다시 본 자연의 위대함이었다. 자연과학으로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뇌의 유희를 즐기겠다고 결심한 계기였다.
매년 ‘박자세’ 회원들과 해외 탐사 떠나
귀국 후 그는 2002년 1년 동안에 100권의 책을 읽자고 시작한 ‘백북스 학습 독서공동체’에 들어갔다. 공동체인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과학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회원들에게 5년간 천문학과 생물학 강의를 했다. 2008년 베스트셀러가 된 ‘뇌 생각의 출현’이란 책도 펴냈다. 그가 읽은 자연과학 전문서는 3000권에 달한다.
어떻게 시간을 쪼개 자연과학을 공부하는지 궁금했다. “공부는 가르치는 것이 가르침을 받는 것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그만큼 많이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의 강의를 시작한 10여년 전부터 밤 9시에 자고 새벽 3~4시께 일어납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2시간가량 공부한 뒤 운동하고 출근합니다. 공부는 일상 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속에 일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자연과학 문화운동을 주창, 2007년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박자세)’을 설립해 4500여명의 회원을 이끌고 있다. 강의 프로그램은 137억년 우주의 진화, 뇌과학 등이다. 올해로 7년째 강의 중인 ‘137억년 우주의 진화’는 연 수강생이 5000명에 달한다.
그는 박자세에서 회원들에게 암기와 반복을 강조한다. 지구라는 행성의 인간이 5억년 전 물고기에서 출발한 것도 자연이 암기와 반복을 통해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자세 회원들과 해마다 해외 탐사를 떠난다. 2007년 서호주부터 시작해 몽골 고비사막, 미국 남서부 지역 등을 많게는 세 번씩 다녀왔다. 탐사대원들은 탐사 기간에 종종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무한한 자연의 위대함에 동화돼서다. 대자연 앞에서는 뇌 속 활동인 철학·인문학 등이 자연 앞에 그저 용해되고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탐사를 다녀오면 그 결과를 정리해 책으로 출간한다. 앞으로 실크로드, 아프리카, 남미까지 지구 진화와 인류의 이동 경로를 탐사해 20권 정도 학술서적을 낼 계획이다.
‘자연과학 문화운동’ 지속할 것
그는 문과 이과의 장벽이 사라지는 3년 후가 걱정된다고 했다. 2018년부터 정치, 경제, 물리, 화학 등 세세하게 나뉜 사회와 과학 과목이 통합 과목 형태로 합쳐지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분야가 합쳐지면 각자의 영역에서 진리를 탐구할 기반이 사라진다고 그는 주장했다.
“지금 자연과학 발전의 걸림돌 중 하나가 비전문가들이 과학 정책을 생산하거나 방송 등 과학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입니다. 특정 과 선호 현상으로 볼 때 앞으로 문과와 이과가 통합되면 자연과학은 설 자리를 잃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연과학적 깨달음은 철학이나 종교와 마찬가지로 감동을 주고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어렵지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들을 선정해 공부의 영역을 확장하는 자연과학 문화운동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그는 가끔 사람들이 “박자세는 마치 ‘신흥종교’ 같다”고 한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는 “박자세는 시공의 사유, 기원의 추적, 위대한 패턴의 발견 등 과학적 시선에서 지구에서 일어나는 생명 현상과 자연 현상을 대학 과정 교과 수준에서 공부하는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ETRI 연구원의 ‘주말 일탈’
바이크·경비행기·댄스…스트레스 한 방에 보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근무하는 연구원은 전체 직원 2500명 중 2300명(92%)에 달한다. 연구원 수는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나머지 24개 정부출연연구원 중 가장 많다. 인원이 많다 보니 각양각색의 취미를 가진 연구원이 눈에 띈다. 정길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홍보팀장은 “하루종일 연구에만 매달려서인지 상대적으로 몸을 많이 움직이는 취미를 가진 연구원이 많다”고 소개했다.
주소정보연구팀에서 근무하는 윤대섭 선임연구원(42)의 취미는 바이크 라이딩이다. 10여년 경력의 그는 휴일이면 1인용 텐트 하나를 할리 데이비슨에 싣고 시동을 건다. 그는 “바이크는 내게 풍요로운 삶을 위한 비타민”이라고 말했다.
주말마다 하늘을 나는 연구원도 있다. 태양광기술연구실에서 일하는 주무정 책임연구원(57)은 20여년 전부터 초경량 비행기를 타고 있다. 미국에서 중고 비행기를 구입할 정도로 초경량 비행기의 매력에 빠져 있다. 주 책임연구원은 “아무나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비행 면허는 의외로 까다롭지 않다”며 “은퇴 후 비행장 옆에 창고가 딸린 작은 집을 얻어 비행기를 조립하고 싶다”고 말했다. 업무 스트레스를 방송댄스로 날려버리는 자율주행시스템연구실의 김진우 선임연구원(35)은 입사 6년차로 조직 내 젊은 피에 속한다. 김 선임연구원은 “연구처럼 춤사위도 늘 똑같지 않다”며 “늙어서도 내 좌우명은 ‘춤생춤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20여년간 즐겨 한 골프를 뒤로하고 목공예를 시작한 연구원도 있다. 데이터관리연구실의 원종호 책임연구원(51)은 주말이면 대패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알싸한 나무 향이 좋다는 그는 “톱질, 대패질에 따른 운동량도 많지만 무엇보다 집중이 필요해 잡다한 생각이 다 날아간다”고 강조했다.
대전=임호범 기자 lhb@hankyung.com